내가 사랑한 박재범

이재희 2024. 4. 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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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롭게 죽고 다시 태어나는 박재범, 그 다채로운 삶을 대하는 아주 유쾌하고 정중한 방식.

화보 촬영이 아닌 공연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노래하고 고함치고 오늘도 어김없이 프리즈 동작도 했죠

이래봬도 요청하면 뭐든 열심히 하는 타입입니다. 일단 뭐든 잘 나오면 좋고, 별로면 안 쓰면 되니까. 서로 좋은 걸 남기려고 하는 일이잖아요.

화이트 리본 트리밍 디테일의 재킷과 팬츠, 셔츠, 펜던트가 달린 네크리스와 링, 이어 피스는 모두 Gucci.

최근 행보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61043 물품 보관 10구역’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메고 서울마라톤에 깜짝 출전한 일이었어요. 러닝 고수라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 달리는 기분은 달랐겠죠

고등학교 때부터 러닝을 해왔어요. 마인드 컨트롤도 되고, 자연과 하나 되는 듯한 평화로운 느낌이 좋거든요. 1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씩 5~6km 정도 뛰는데 10km 마라톤이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기로 했죠(웃음). 그런데 당일 그 규모를 보고 ‘이곳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나 일찍, 이렇게나 추운데 모여 진심으로 달린다고?’라는 생각에 깜짝 놀랐어요. 저희 집 근처였거든요. 터널을 통과할 때는 같이 기합 소리도 냈다가 끝으로 갈수록 다들 말수가 적어지는 게…. 어떤 분들은 돗자리 깔고 막걸리와 보쌈도 드시던데요. ‘아, 이런 맛이구나’ 싶었습니다. 발뒤꿈치에 염증이 생겨 제대로 연습도 못 했는데 기록이 잘 나와서 36년 운동한 보람도 느꼈습니다.

인터로킹 G 버클 벨트와 팬츠는 모두 Gucci.

대만이든, 전주든 비보잉 대회에 예고 없이 참가해 사람들을 놀래킨 적도 있어요. 늘 대중에게 이름이 불리는 당신이 아무도 부르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는 동력은 뭔가요

브레이킹 대회는 어릴 때부터 즐겨왔고, 제 정체성을 찾게 된 문화라 아직까지 사랑과 열정을 갖고 있어요. 요즘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이거든요. 딱히 뭘 얻으려는 건 아니고, 배경이나 환경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느끼는 자극이 있어요.

요즘은 무슨 일을 궁리 중인가요? 박재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무언가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만

끊임없이 움직이고요. 해야 하는 일도 끊임없고요(웃음). 지난해에는 방송이나 공연, 광고 스케줄이 많아 음악 만들 여유가 없었어요. 마지막 정규 앨범이 2016년에 나왔는데 ‘내년, 내년’ 하다가 벌써 8년 됐잖아요. 제대로 마음먹고 하지 않으면 절대 못 내겠다 싶어서 작업에 집중했고, 거의 완성됐어요. 5년 전 1절을 썼던 데모곡의 2절 부분을 엊그제 완성했는데, 한 곡에 5년의 시간차라니!

플라워 그래픽 프린트 셔츠와 팬츠, 펜던트가 달린 네크리스와 트레이드마크 링, 슬림한 디자인의 홀스빗 로퍼와 삭스는 모두 Gucci.

R&B로만 눌러 담은 정규 4집 〈Everything You Wanted〉가 나온 지 벌써 8년이라니, 놀랐어요. ‘All I wanna do (k) (feat. hoody, loco)’나 ‘Drive (feat. gray)’ 같은 곡은 지금도 릴스, 차트, 카페에서 매일 들리니까요

아직도 차트 순위를 지키고 있는 게 신기해요. 오래 찾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박재범식 R&B를 기다리다 못해 ‘집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죠. 그 이유를 생각해 봤나요

미국에서 18년, 한국에서 18년 살았어요. 딱 반반이죠. 그런 배경에서 형성된 저만의 음악 스타일이나 가사 표현, 톱라인이 제 춤과 잘 어우러지니까 R&B를 기대하시는 게 아닐까요. 그간 제가 애정하는 힙합과 랩에 주로 몰두했다면, 그건 어느 정도 보여줬고 또 이뤄냈다고 생각해요. 이제 팬들과 좀 더 소통하고 싶어요.

재킷과 셔츠, 검지에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디테일의 스털링 실버 링, 중지에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신 링은 모두 Gucci.

묘하게 ‘맛있는’ 발음도 한몫하는 것 같은데, 8년 사이 R&B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특유의 발음도 달라졌을까요

확실히 다르죠! 어휘력도 늘었고요. 그래서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박재범의 드라이브〉 MC까지 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어설펐지만요(웃음). 그래도 어떤 발음은 여전히 연구가 필요해요. 제가 추구하는 밴딩이나 스타일과 발음이 부딪칠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했지’가 자꾸 ‘해찌’라고 발음돼요. ‘찌’가 좀 가벼워 보인달까.

또 변화한 부분을 꼽아보면

아무래도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졌겠죠.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래미상 받은 믹싱 엔지니어도 만나고 음악적 네트워크가 넓어졌거든요. 스스로 기대감도 커져서 더 웅장하게, ‘더더더’ 화려하게 가려다 보니 끝도 없더군요. 분명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음악이 있을 테고, 그게 아무래도 박재범다운 R&B일 거잖아요. 물론 더 발전해야겠지만 요즘 음악시장 흐름만 의식하면 저답지 않은 음악이 나올 것 같았어요. 좋든 나쁘든, 리스너의 취향이든 말든 제 음악은 저밖에 못하는 거니까.

형광 블루 컬러가 포인트인 GG 모티프와 웹 스트라이프 디자인의 구찌 사보이 더플백, 니트 톱, 데님 팬츠, 검지에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디테일의 스털링 실버 링, 중지에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신 링, 더블 G 키 링, 선글라스는 모두 Gucci.

여전히 변함없는 가치를 추구하는군요

‘레거시’가 가장 중요하죠. 돈이나 유명세는 오가는 것이지만, 가치는 영원하잖아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고, 어떤 추억과 어떤 감동을 안겼는지… 그런 건 오래 남는 거니까. 제 음악은 나오자마자 크게 반향이 있진 않아요. 등장하자마자 감탄을 받으며 차트 1위를 차지하지도 않고요. ‘좋아(Joah)’ ‘몸매(Mommae) (Feat. Ugly Duck)’ 같은 곡 모두 뒤늦게, 하지만 오래 사랑받는 곡이었어요. 히트곡보다 타임리스한 음악을 추구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음악 위주가 아닐까 싶어요.

박재범의 음악에서 장르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주로 힙합 아티스트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아이돌 음악으로 이름을 알렸고, 최근 〈더 시즌즈〉 무대에서는 ‘소주 한 잔’을 절절하게 불렀죠

장르 베이스는 굉장히 중요하죠. 그게 랩이든 춤이든 기초를 몸에 익혀야 결국 자기 색깔을 낼 수 있잖아요. 토대 없이 앞서나가면 꼭 탈이 나요.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제 것으로 만든 뒤에 뭐든 열어볼 수 있어요. 저는 이제 제가 누군지 알아요. 춤과 랩, 노래와 프로듀싱 등 장르나 영역은 물론 연령이나 국적, 언어 그 어떤 범주에서든 제 정체성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어딜 가도 두렵지 않아요. 래퍼라 불리든, 사업가라 불리든, 싱어송라이터라 불리든 그 꼬리표들은 사람들이 박재범을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니트 톱과 데님 팬츠, 더블 G 키 링, 선글라스, 검지에 착용한 구찌 트레이드마크 디테일의 스털링 실버 링, 펜던트가 달린 네크리스는 모두 Gucci.

사람들이 원하는 박재범의 여러 얼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좋아’ 같은 곡은 누구든 좋아하고, 40~50대는 제 음악은 몰라도 〈SNL 코리아 시즌2〉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면모를 좋아해서 신기했어요. 어렵게 구축해 온 음악적 성취를 잘 아는 친구들은 저를 우상처럼 여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저를 몰라도 제 소주는 좋아하죠. 어떤 것을 취향으로 삼느냐에 따라 저를 다르게 보는데, 재밌어요.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변치 않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도전하는 영역마다 트렌디하고 ‘힙’하다는 반응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정착하려는 순간마다 새로운 판을 벌이고 도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룹이었다가, 솔로였다가, AOMG나 하이어 뮤직을 차렸다가, 락 네이션에 합류했다가 이제 K팝 그룹과 소주를 만드니까…. 그래서 일종의 ‘환상’이 생기지 않았을까요(웃음).

재킷과 셔츠, 검지에 착용한 구찌 트레이드마크 링과 중지에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신 링은 모두 Gucci.

그럼에도 자신이 ‘꼰대’가 된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다면

곱게 나이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꼰대보다 어른이 되고 싶은데, 그런 노력 중 하나는 모든 판단을 냉정하고 공정하게 하려는 거예요. 사람마다 자신의 입장과 역할이 있는데 그걸 존중해 주는 게 첫 번째죠.

실버 GG 더플백과 펜던트 네크리스, 티셔츠와 셔츠, 팬츠, 홀스빗 로퍼는 모두 Gucci.니트 톱과 카디건, 인터로킹 G 버클 벨트, 데님 팬츠, 펜던트 네크리스, 검지에 나란히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헥사곤 링과 다이애그널 인터로킹 G 링, 이어 피스는 모두 Gucci.

성취를 내려놓는 일에는 두려움이나 거리낌이 없어 보여요. 580만 팔로어를 지녔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단숨에 폭파시키는 것처럼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에 익숙해졌나요

뭐든 될 때까지 하는 편이지만 가끔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자극과 부담 앞에 스스로를 세워두는 거죠.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노력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것이 많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나요? 늘 자신을 내몰았는지

스스로 힘들게 만드는 타입이긴 했어요. 자신에게 엄격하달지. 어릴 때도 운동을 제대로 하면 하루에 시리얼 한 그릇만 먹고 운동장을 30바퀴씩 뛰었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이뤄낼 때까지 좀 집착하는 것 같아요.

버건디 컬러 수트와 인터로킹 G 버클 벨트, 슬림한 디자인의 홀스빗 로퍼는 모두 Gucci.

늘 유쾌한 얼굴이라 뭐든 여유롭고 쉽게 해낼 것처럼 보이는데요

‘징징대는’ 타입이 아니라 그런가 봐요. 하지만 모든 과정은 제게도 힘들고, 어렵고,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크고, 행동과 결과에 수많은 시선과 평가가 따르는 일에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굳이 남들에게 알릴 필요 없는 것을 얘기해서 걱정시키기보다 혼자 힘들고 말자는 주의예요. 자연스럽게 넘어갈 감정을 괜히 언급해서 시끄러워지고, 말에 말이 붙는 게 싫거든요.

그래도 감정을 속으로만 삼키는 건 힘들잖아요

그럴 땐 단순한 것에서 감사함을 찾으려 하죠. 아직 건강하고, 걸을 수 있고, 밥 먹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면 힘든 과정도 견딜 만해요. 너무 욕심부리거나 억지로 뭘 하면 탈이 나요. 해볼 때까지 해보고 안 되면 바로 포기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늘 즐거워 보이고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뭐든 해보는 것 같지만, 의외로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니트 톱과 카디건, 인터로킹 G 버클 벨트, 데님 팬츠, 펜던트 네크리스, 검지에 나란히 착용한 트레이드마크 헥사곤 링과 다이애그널 인터로킹 G 링, 이어 피스는 모두 Gucci.

음악이든 소주든 늘 하고 싶은 것을 형태와 관계없이 세상에 꺼내왔죠. 그럼에도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나요

그보다 제가 이뤄낸 것, 제게 주어진 능력, 벌여놓은 판을 잘 활용해서 다음 세대에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개인적인 꿈은 거의 다 이뤘거든요. 이제 그냥 ‘폼’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고요(웃음). 저는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점도 많고, 살면서 잘못과 실수도 많이 했는데요.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계속했어요. 그게 제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해주기도 하니까. 인간다운 모습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비보잉 팀에 입단하던 소년 박재범과 지금 박재범, 누가 더 뜨거운가요

어릴 때는 무모하게도 모든 게 가능하다고 믿었어요. 지금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알죠. 하지만 마음을 얼마나 할애하느냐에 따라 안 되는 건 세상에 거의 없다는 것도 알아요. 뭔가를 얻으려면 가족과의 시간이든, 사생활이든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 균형을 조금은 찾을 줄 아는 어른이 됐어요. 그러니 지금 박재범은 좀, 따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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