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웨스트엔드 갑니다…K뮤지컬 스토리의 힘이죠

나원정 2024. 4. 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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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 제작자 강병원 라이브 대표는 “공연 소재 찾는 과정이 즐겁다. 잘 놀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몸을 내던져 다 부서지게/저 높은 산도 잡념까지도~!”

한국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에서 주인공 마리 퀴리(1867~1934)의 솔로곡 ‘두드려’다. 100여년 전 라듐 연구로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두 차례 수상한 마리 퀴리의 생애를 폭발적 넘버에 담았다.

이 뮤지컬의 영어판이 뮤지컬 1번지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른다. 6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런던 채링크로스 시어터에서 영어 버전 초연을 올린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은 이번이 최초다. 영국 공연도 한국 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46)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를 맡았다. 영국 창작진·배우와 함께 오리지널 각본(작가 천세은)·음악(작곡 최종윤)의 현지화를 진두지휘했다.

‘마리 퀴리’ 3번째 시즌 공연 장면. [사진 라이브]

“작품이 흥미로우면 전 세계에 통한다”는 철학으로 매 작품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온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2011년 라이브를 설립한 그는 ‘총각네 야채가게’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2013)을 시작으로, ‘마이 버킷 리스트’ ‘팬레터’ ‘랭보’ ‘마리 퀴리’ 등을 아시아 시장에 안착시킨 뒤 영미권 진출을 꾀해왔다. 지난해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은 창작 뮤지컬 ‘광주’의 뉴욕 쇼케이스 공연도 치렀다.

“웨스트엔드 작품 예매 사이트에 ‘마리 퀴리’가 있는 게 신기해요. 265석 정도의 소극장이지만, 웨스트엔드 중심부죠. 두 달 간 ‘리미티드 런’ 이후 사이즈를 더 키워 ‘오픈런’(무기한) 공연까지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웨스트엔드 공연은 2002년 ‘명성왕후’가 처음이다. 한국 배우들이 열흘간 영어로 공연했다. 그리고 한국 창작 뮤지컬의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까지 22년이 걸렸다. 세계적인 과학자 소재를 시대 화두인 여성·이민자·노동자 인권 문제로 풀어낸 작품의 힘이 ‘마리 퀴리’의 장기 공연 성사 비결로 꼽힌다.

뮤지컬에선 마리 퀴리의 라듐 연구 과정과 라듐시계 공장 여직공 안느가 동료 직공들의 잇따른 의문사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맞물린다. 1917년 미국 ‘라듐 걸스’(라듐 공장 피폭 노동자) 실화를 천세은 작가가 동시대로 옮겨왔다. 이런 팩션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라듐의 유해성을 직면하는 마리 퀴리의 고뇌, 여성 연대를 강조했다. 채링크로스 시어터 측은 이 작품을 택한 이유로 “굉장히 똑똑한 공연”이라고 밝혔다.

2022년 ‘마리 퀴리’가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 황금물뿌리개상을 받은 모습이다. [사진 라이브]

강 대표는 2017년 창작 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에서 천 작가의 극본을 눈여겨봤다. 라이브는 8년째 이 공모전을 주관해오고 있다.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한 강 대표는 뮤지컬에서 스토리의 매력을 가장 중시한다. 그는 “요즘 좋은 작품은 여성 서사가 많은데, ‘마리 퀴리’는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조연(안느)까지 여성이다. 위인 전기식 서사를 넘어서 라듐 걸스 등 팩션을 가미한 부분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라이브가 제작진을 꾸려 2018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렸고, 2020년 국내 초·재연을 통해 작품을 재정비하며 한국뮤지컬어워즈(2021) 대상 등 5관왕을 휩쓸었다. 올 2월까지 세번째 시즌을 공연하면서 김소향·옥주연·리사·김히어라 등 스타 뮤지컬 배우들이 거쳐갔다.

‘마리 퀴리’가 해외 무대에서 검증받은 건 2022년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격인 ‘황금물뿌리개상’을 수상하면서다. 마리 퀴리 생가 박물관에서 콘서트·토크쇼도 열었다. 마리 퀴리의 후손 한나 카레제프스카가 공연 영상을 관람한 뒤 “아름답고, 놀랍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연”이라고 극찬했다.

한국 뮤지컬의 급성장에 발맞춰 활발해진 정부 지원의 덕도 봤다. ‘마리 퀴리’는 2022·2023년 웨스트엔드에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각각 하이라이트 및 전막 쇼케이스를 열며 진출 기반을 닦았다. 요즘 한국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대부분 일본·중국·대만 등에 수출된다. ‘마리 퀴리’도 지난해 일본 도쿄·오사카에서 라이선스 초연을 가졌다. 뮤지컬 IP로 영화·드라마·웹툰·소설을 제작하는 2차 부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3년 간 제작한 작품 15편 중 흥행 성공작은 ‘팬레터’ ‘랭보’ ‘마이 버킷 리스트’ 세 작품 정도입니다. ‘마리 퀴리’도 아직 투자 과정의 작품이고, 향후 공동 제작에 참여할 글로벌 프로듀서도 찾으려 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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