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지배구조 기준, 획일화할 수 없어” 밸류업 가이드라인 앞둔 산업계
정부가 다음 달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가운데 산업계가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라는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과도한 공시 부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어서다. 재계는 “제도적 지원으로 기업들이 밸류업에 동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3일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정책개선과제’ 17건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기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배당제도 합리적 개선 및 자사주 활용 주주환원 확대 ▶인수합병(M&A) 활성화 및 금융기업 가치 제고 ▶밸류업 가이드라인 불확실성 해소 등에 관한 내용이다.
우선 대한상의는 배당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문제 해소를 건의했다. 기업이 법인세를 내고 남은 이익의 일부를 배당하면 주주는 소득세를 추가로 납부한다. 이를 개선해 배당의 주주환원 효과를 높이자는 주장이다. 상의는 금융소득 2000만원 이하 개인주주 배당에 세액공제제도를 신설하고,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개별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세액공제 비율을 다르게 적용하자고 건의했다.
아울러 기업 이익 중 투자·임금 증가·상생지출 등이 일정 비율에 미달하면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현행 제도는 기업이 남은 이익으로 배당을 늘리면 오히려 법인세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어서다.
M&A 절차 간소화도 건의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과정에서 M&A 관련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는데, M&A로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면 주가와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대한상의는 “현행 상법상 M&A 공고 후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변제·담보제공 등 채권자 보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합병에선 이런 절차를 간소화해달라”고 제안했다.
기업들은 한국거래소가 다음 달 초 발표할 밸류업 가이드라인에 ‘기업 자율성’을 확보해 달라고도 요구했다. 정부는 공시 여부와 내용을 기업 자율로 정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기업들은 해외 투기자본 등이 공시를 요구하거나 특정 지배구조를 강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정부의 방침대로 기업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허위 공시가 될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상의는 공시 여부와 내용을 기업 자율로 정하고, 기존에 공시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사유가 되지 않도록 명시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업 비밀 사항은 공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가이드라인에 명확히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밸류업 인센티브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을 선정해 일정 기간 ‘감사인 주기적 지정 면제’를 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부 대기업들이 주주보다 총수 이익을 우선하는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고수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정부 대책이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기업 상황이 모두 다른 만큼 획일적인 기준으로 우수 지배구조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부적으로는 무엇이 우수한 지배구조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재계에서는 지배주주가 주식을 많이 소유할수록, 완전모자회사(자회사의 의결권 주식 100% 소유)가 많은 그룹일수록, 특수관계인의 비상장 개인회사가 없을수록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같은 기준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로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강조된 기준이다.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15일 개최한 좌담회에서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현재 소위 좋은 지배구조라고 제시되는 기준들은 일감 몰아주기 방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회사 소유구조에 따라 적합한 지배구조가 다를 수 있으며, 우수함 기준을 획일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완전모자회사가 모범이라면 기업들이 자본조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고, 신산업 진출 등 사업 확장이 크게 제한될 수 있다”며 “특수관계인이 개인회사를 보유하면 안된다는 기준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제한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또 다른 규제가 돼서 기업을 옥죄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발표할 구체적 가이드라인에 기업 부담 최소화를 위한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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