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외화벌이 하다하다 美애니 재하청까지"…中업체서 받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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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서버서 무더기 파일 발견"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 산하 북한전문매체인 38노스는 22일(현지시간) 마틴 윌리엄스 선임연구원의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말 북한 IP를 쓰는 한 클라우드 저장 서버가 발견됐다"며 "해당 서버는 더 이상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설계 오류로 인해 비밀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서버에 드나드는 파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북한 내부에선 IT 노동자가 인터넷에 직접 접속할 수 없다 보니 이런 종류의 서버를 운영하곤 한다"는 설명이다.
38노스는 이어 "해당 서버에는 지난 1월 한 달 간 매일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지시 사항과 결과물을 포함한 새로운 무더기의 파일이 등장했다"고 전했다. "누가 업로드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올라온 파일 중에는 중국어 지시와 함께 이를 한국어로 번역한 대목도 포함됐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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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빈시블 등 유명 애니 연루
38노스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북한 업체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유명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 '인빈시블'을 비롯해 '이야누', '마도구사 달리아는 고개 숙이지 않아' 등 공개를 앞둔 미국과 일본의 작품이 다수였다. 38노스는 "기업으로선 아웃소싱한 업무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제재를 위반해 평양에 있는 컴퓨터로 흘러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윌리엄스 선임연구원은 이날 미국의소리(VOA)에 "미국 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제작 과정의 일부를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기업에 외주를 맡겼고, 그 기업들이 다시 중국 내 북한 회사에 외주를 맡기면서 실제 작업은 평양에서 이뤄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간 과정에서 한국 업체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CNN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서버에서 발견된) 애니메이션 '이야누'를 제작한 라이온 포지 엔터테인먼트가 당초 한국의 애니메이션 회사와 계약을 했는데, 지난해 말 해당 한국 회사가 허가 없이 다른 한국 업체에 재하청을 줬다는 사실을 파악해 지난 1월 계약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北 만화' 산실 배후 추정
이번에 발견된 북한 서버에 파일을 올린 주체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 만화 영화 제작을 도맡고 있는 '조선 4·26 만화영화촬영소'가 유력하게 지목된다. 조선 4·26 만화영화촬영소는 1957년 설립됐고, 1960년 북한의 첫 아동영화 '신기한 복숭아'를 제작했다. 이밖에도 '소년장수', '고주몽', '영리한 너구리' 등을 북한 만화를 다수 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4년 11월 집권 후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만화영화 대국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북한에서 만화 산업은 주요 선전 수단이자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한 외화벌이 돈줄이다. 2021년 12월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후 첫 독자 제재 대상에 4·26 만화영화촬영소를 올렸다. 이곳에서 일하는 애니메이션 노동자들이 중국에 불법 취업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2022년 바이든 행정부는 국무부·재무부·연방수사국(FBI) 공동 주의보를 내고 "북한 IT 노동자를 부주의하게 고용하다가 대북 제재를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당시에도 애니메이션 업계를 주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북한이 각종 암호화폐 탈취와 해킹 등 사이버 범죄에 이어 미국과 일본 발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몰래 수주해 돈벌이에 나선 가운데 한국 기업의 각별한 주의도 필요하다. 제재 위반 행위임을 몰랐다 하더라도 부지불식간에 연루되는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자 제재는 '제재 대상과 연루되기만 해도 처벌 받는다'는 '주의 의무(Due diligence)'와 '거래 상대가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네트워크에 있는지 각별히 살피라'는 'KYC(Know Your Customer·네 고객을 알라)' 등을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미·일의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북한이 연루된 정황과 관련해 "정부는 대북 제재가 충실히 이행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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