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대화’를 금기하는 문화부터 반성을

2024. 4.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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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은 80세 생일에 지인들을 모아 유언을 남겼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의 가장 흔한 증상은 식욕 저하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다가오면 식욕을 잃게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평온한 죽음을 망치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죽음의 권리를 외치기 전에 죽음에 대한 대화를 금기하는 문화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법도, 병원도 비로소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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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
⑧ 질질 끈 죽음은 의학의 실패


미국 경제학자 스콧 니어링은 80세 생일에 지인들을 모아 유언을 남겼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눈을 감고 싶으니 일체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또한 기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생동안 시골에서 스스로 농사를 짓는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고, 무탈하게 100세를 맞이했다. 노쇠해 더 이상 집필이나 강연 활동이 힘들어지자 스스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그는 100세 생일 이후 조금씩 식사를 줄여나갔다. 별다른 배고픔을 느끼지 않자 고형식을 중단하고 음료만 마셨고, 마지막엔 물만 조금씩 마시면서 평온히 잠들 듯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의 가장 흔한 증상은 식욕 저하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다가오면 식욕을 잃게 된다. 반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생존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을 의미하기에 공포가 된다. 많은 가족이 음식을 거부하는 환자를 보면 안절부절못하고 응급실로 달려온다. 철저히 살리는 공간인 병원에 온 순간부터 환자 의지와 상관없이 몸엔 주삿바늘이 꽂히고 영양제, 항생제, 식욕 촉진제 등이 투여된다. 연명의료 거부를 법으로 정한 연명의료결정법 19조 2항은 인공영양은 거부할 수 없고 강제적으로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말기 환자에 대한 배려 없이 생존 의지를 가진 일반인의 관점에서 정한 법문이다. 이제 질질 끄는 죽음이 시작된다.

1996년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에서 노모가 쓰러지자 서울에 살던 차남 준식은 급하게 고향에 내려온다. 기력이 쇠한 어머니를 보며 준식은 식구들에게 뭔가 보양식이라도 먹여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자 큰 며느리가 크게 놀라며 “보약은 무슨 보약! 가실 때 힘만 드시제”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그날 밤 평온하게 영면에 든다. 이는 전통 사회에서 우리가 늘 맞던 고통 없는 평온한 죽음이었다.

독일의 응급의학과 의사 미하엘 데 리더는 저서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에서 ‘환자가 의사 보호를 받으면서도 고통스럽게 죽거나, 질질 끄는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의학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평온한 죽음을 망치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죽음의 권리를 외치기 전에 죽음에 대한 대화를 금기하는 문화에 대한 반성이 선행돼야 법도, 병원도 비로소 바뀌게 될 것이다.

가톨릭의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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