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1회용 액상 전자담배 규제로 청소년·환경 지키자”

민태원 2024. 4. 2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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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없는 세상] 거세지는 지구촌 ‘금연정책’
쓰고 버려진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의 기기 장치와 배터리 등이 쓰레기장에 수북이 쌓여 있다. 미국 액상 전자담배금지운동단체 웹페이지

작은 크기에 달콤한 향기 등 유혹
청소년·여성도 무방비 노출
무분별 폐기 생태계·동물까지 위협

英, 2027년부터 흡연 연령 1살씩 ↑
18세 이하 합법적 금연법 통과
세계 최초로 내년 4월부터 적용

美·佛·호주, 판매·수입금지 가세
WHO·유엔도 규제 논의 잰걸음

한국, 지속 출시에도 동향파악 안돼
담배 정의서 빠져 '사각지대' 방치
전문가들 "강력한 규제 필요" 목소리

전 세계적으로 금연 정책이 강화되면서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규제에 나서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청소년 보호와 환경 파괴 위협이 주요 명분이다. 영국이 그 선봉에 섰다. 영국 하원은 2009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현 15세)에게 궐련과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이른바 '담배 없는 세대(Tobacco Free Generation)법'을 최근 통과시켰다.

2009년생이 현재 담배 구입 연령인 18세가 되는 2027년부터 매년 흡연 가능 연령을 한 살씩 올려, 그 이후 세대들은 평생 합법적으로 담배를 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상원 통과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영국의 이같이 강력한 금연 법안 추진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뉴질랜드가 비슷한 법안을 채택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22일 “영국 구성국 중 스코틀랜드는 의회 절차 등이 마무리돼 담배 없는 세대법이 내년 4월 1일부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행된다. 잉글랜드나 웨일스, 북아일랜드도 뒤따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스코틀랜드 내년 4월 일회용 제품 금지

특별히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특이하게 액상 전자담배를 궐련의 금연 보조제로 활용하는 국가다. 그런데 일회용 판매 금지에 나선 이유는 해당 제품을 통한 청소년의 흡연 시작(gateway)을 차단하려는 정책적 판단에서다.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는 날렵한 외형과 매력적인 색상, 과일 맛·향이 가미된 액상으로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기기와 액상이 일체형으로 돼 있어 액상을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값도 싸서 온라인 등에서 1만~2만원이면 구입 가능하다.

김희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몰래 사용하기에 좋다. 달콤한 향으로 담배 티가 안 나니까 10대나 여성들의 흡연 입문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액상 맛의 다양성은 청소년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이어져 의존도를 높이고 전자담배 시도 증가, 유해성에 대한 인식 감소 등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 영국은 최근 몇 년새 청소년의 액상 전자담배 사용이 급증해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 컨슈머 인사이츠’가 2022년 4월~2023년 3월에 18~64세 영국인 4032명을 조사한 결과, 18~19세의 액상 전자담배 사용률이 27%로 가장 높았다. 이어 20~24세(19%), 30~34세(17%), 25~29세(16%), 35~39세(15%) 순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 10대 가운데 지난 30일 동안 액상 전자담배를 사용했다고 답한 비율이 2013년 5% 미만에서 지난해 21%로 4배 급상승했다.

액상 전자담배의 니코틴 중독 외 건강 위해성 관련 새로운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흡연으로 발생하는 ‘에어로졸(기체)’에서 유해한 유기화학물질 및 금속 성분이 확인됐으며 노출로 인한 호흡기 암 유발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텍사스대와 인디애나대 연구팀이 2022년 국제 학술지 환경 연구·공중 보건(Environmental research & Public health)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인기 있는 두 가지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로 실험한 결과 에어로졸에서 크롬과 니켈 성분이 검출됐다. 또 일일 및 평생 노출량 평가에서 호흡기계 암 발생 위험이 관례적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액상 전자담배의 독성을 보여주는 명확한 근거”라고 밝혔다.

WHO, 유엔도 대응 논의


근래 들어 액상 전자담배의 환경 오염 이슈도 급부상했다. 일회용 전자담배는 기기와 액상이 일체형으로 돼 있어 액상 소진 시 기기 전체를 폐기한다. 특히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액상과 기기 장치를 동시에 버리다보니 거리나 배수로에 마구 버려지기 십상이다. 기기 장치와 카트리지(액상 담는 곳), 배터리 등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미국의 비영리 담배규제기구(Truth initiative)에 따르면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는 잔류 니코틴, 중금속, 리튬 배터리, 플라스틱, 포장재 등의 폐기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독성 화학물질이 환경으로 유입될 경우 생태계, 야생 동물을 위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등도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선 대부분의 일회용 제품은 상업적 판매가 금지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허가받지 않고 판매한 일회용 전자담배 업체들에 경고 서한을 발송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 금지 법안을 상원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호주는 올해 1월부터 일회용 전자담배의 수입을 금지했다. 뉴질랜드는 지난 3월 18세 미만에게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 차원의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규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 세계 쓰레기의 2위를 차지하는 궐련 필터와 함께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올해 2월 WHO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 10차 당사국 총회에서 제기됐다. 또 유엔이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국제 협약(UN treaty to End Plastic Pollution)에 담배 관련 플라스틱(궐련 필터, 액상 전자담배 기기 장치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국내에도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가 지속해서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액상 전자담배의 유통 규모는 분기별로 발표되는 기획재정부의 담배 시장 동향조사에서 빠져 있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청소년건강행태 조사 등에서 액상 전자담배 사용 현황은 공개되고 있으나 일회용 제품 사용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파악되지 않는다. 또 합성 니코틴 제품 등 대부분의 액상 전자담배는 담배 사업상 담배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아 모든 규제에서 제외돼 있다. 이성규 센터장은 “액상 전자담배, 특히 일회용 제품은 맛과 향, 몰래 사용에 쉬운 점 등으로 10대와 20대 젊은 연령층의 니코틴 중독을 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 사용했거나 쓰다 남아 분리수거 없이 그냥 버려지는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는 사람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의 건강까지 파괴할 수 있는 만큼, 환경 보호 차원에서라도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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