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두배"…일본어 제친 한국어 열풍, 베트남선 영어와 동급

서지원 2024. 4.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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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멜 멜로사 아르댜푸스타 학생이 19일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어 교재를 보여주는 학생의 모습(왼쪽)과 '좋아하는 가수는 블랙핑크'라며 직접 쓴 손글씨(오른쪽). 서지원 기자

" 인도네시아에도 노래방이 있는데 갈 때마다 항상 블랙핑크의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를 불러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 아이돌을 보고 한국어를 정말 배우고 싶었어요. "
19일 화상 인터뷰에서 만난 카르멜 멜로사 아르댜푸스타 학생(15)은 차분한 말투로 완결된 한국어 문장을 말했다. 블랙핑크 팬인 그는 중학교에 입학한 2020년부터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다닌 인도네시아 중학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한국어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루 2시간씩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자체가 기쁨이었다”고 한다. 심리학자를 꿈꾼다는 그는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방과 후 또는 정규 수업시간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채택교’는 2014년 26개국에서 지난해 47개국으로 늘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20만 2745명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어 교육 열풍’이 세계 곳곳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어 ‘붐’…대입 과목 선택서 일본어 추월


지난 1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30회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많은 국가에서 한국어 교육의 인기는 일본어 등 다른 외국어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2일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국가는 2014년 11개국에서 지난해 23개국까지 꾸준히 늘었다. 올해부터는 파라과이 중·고등학교서도 한국어를 제2외국어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다.

대학 입시에서 한국어 과목을 채택한 국가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4년에는 4개국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일본·프랑스·말레이시아 등 10개국으로 많아졌다. 특히 태국은 2023년 대입 시험에서 제2외국어 과목을 응시한 2만 309명 중 4009명(19.8%)이 한국어를 선택했다. 중국어(39%)에 이어 2위에 자리했다. 일본어(18.9%)를 2022년 처음 추월한 후 격차를 벌렸다.

김영희 디자이너

베트남은 ‘한국어 학구열’이 가장 뜨거운 나라 중 하나다. 한국어가 대입 과목일 뿐 아니라, 2021년 제1외국어로 지정됐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와 같은 위상이다. 베트남 현지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28)은 “가족 전체가 움직여서라도 학비를 댈 만큼 베트남도 교육열이 세다”며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어 실력은 고도화돼 있는데, 수요가 많다는 수준을 넘어 이미 ‘붐’이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류 넘어 취업까지…“베트남서 한국어 배우면 월급 두 배”


파라과이 한국어 채택교 중등 문화 활동. 사진 교육부
한국어 열풍에 불을 지핀 건 한류의 인기다. 튀르키예 국적인 아흐멧 코파르씨는 “어릴 땐 한국과 서로 ‘형제의 나라’로 부른다는 것밖에 몰랐는데 드라마 ‘주몽’을 보고 한국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대학에서 한국어 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에 유학 온 한 인도네시아인(27)도 “자막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 한국어 학원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어로 일자리를 찾으려는 외국인도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학창 시절에 한국의 문화 콘텐트로 한국어를 접한 학생들이, 성인이 되면 더 수준 높은 한국어를 배워 ‘스펙’을 만든다는 얘기다.

정종권 세종학당 경영기획본부장은 “베트남에서 한국어에 능통하면 대졸 초임이 2배 이상 높아진다. 한국어를 잘하는 인력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큰데, 아직 영어보다는 비교적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종학당이 2023년 수강생의 학습 목적을 조사한 결과 ‘한국 및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32.1%)이 가장 많았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23.5%)→‘한국 유학’(20.6%)→‘한국 기업 근무·취업’(12.9%)이 뒤를 이었다.

한국어를 아예 진로로 정한 외국인도 있다. 일본인 사쿠라(가명·22)씨는 올해 서강대 대학원에 입학해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중학생 때부터 한국 노래와 영상으로 한국어를 독학한 그의 실력은 한국인도 놀랄 정도다. “한국어는 자유롭고 재미있다. ‘꿀잼(꿀+재미)’, ‘알쓰(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 같은 신조어를 친구들한테 쓰고 있다”며 웃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한국어 교육 질 높여야 ‘지한파’ 전문가 성장”


한국어 인기는 교육을 넘어 국가간 교류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지 학생과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개설하고 싶다’는 요구를 바텀업(상향식)으로 정부에 올리면, 한국과의 교류·협력 의제로 한국어교육을 논의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희정 대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는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외국에 있는 교민들의 위상도 높아진다”고 했다.
김영옥 기자


한국어 교육의 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은 과제로 꼽힌다. 이희영 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는 “한국어 교육 수요는 커지는데 원어민 강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해외 대학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재 집필에 참여한 강승혜 연세대 특수대학원장은 “초·중등 교재에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의사소통 위주로 구성해야 한다”며 “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대학에서도 한국 관련 전공을 선택하는 등 ‘지한파’ 전문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서지원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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