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잡힌 세계관은 옛말...청량미로 무장한 남돌의 반격이 시작됐다

황지영 2024. 4. 2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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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디스가 세븐틴 이후 9년만에 내놓은 보이그룹 투어스. 사진 플레디스


청량 콘셉트로 무장한 보이그룹이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걸그룹 강세 속에 부진했던 보이그룹이 비로소 대중성을 입기 시작했다.
19일 멜론 일간차트 기준으로 투어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는 3위를 차지, 차트 상위권에서 롱런 중이다. 라이즈 ‘러브 119’,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데자 뷔’도 차트에 안착했다. 이에 대해 윤광은 대중음악평론가는 “팬덤 산업에서 자진해 고립됐던 보이그룹이 최근 들어 밝은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간 보이그룹은 치밀한 세계관, 칼 군무로 대표되는 강한 퍼포먼스 등 코어(핵심) 팬에 초점을 맞춰 성장해왔다. 그러다 보니 대중적인 이미지와 노래를 앞세운 걸그룹에 비해 존재감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체성에 청량 한 스푼


요즘 각광받는 보이그룹의 공통점은 라이트 팬덤을 겨냥한 ‘청량함’이다. 하이브 소속 투어스는 데뷔곡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로 청량 보이그룹의 대표 주자로 등극했다. 데뷔곡으로 차트 1위까지 거머쥐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고, 노래는 발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인기가 뜨겁다. 금영 노래방 차트에서 3월 보이그룹 인기곡 정상에도 올랐다.
한성수 총괄프로듀서는 ‘자연스러움’을 투어스의 매력으로 내세웠다. “화려한 치장보다는 이 친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 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룹 투어스는 데뷔 한 달 만인 지난 2월 23일 지상파 음악방송 1위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 플레디스

그렇게 탄생한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는 새 학기의 낯설고 어색하지만 잘 해내고 싶은 여러 감정을 녹인 가사와 중독성 강한 멜로디, 따라하기 쉬운 퍼포먼스의 삼박자를 2분 30초의 러닝타임에 담은 곡이다.

하이브의 또 다른 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도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달 초 발매한 미니 6집 ‘미니소드 쓰리: 투모로우’에 수록된 9개 트랙이 발매 당일 차트에 랭크했다. 특히 타이틀곡 ‘데자 뷔’ 인기가 심상치 않다. 멜론 톱100 차트에서 최고 10위까지 올랐고, 뮤직비디오는 일본 유튜브 인기 급상승 음악 1위에 등극했다.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데자 뷔'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뮤직

‘데자 뷔’는 2010년대를 장식했던 2세대 K팝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다. 뮤직비디오에선 고립됐던 멤버들이 하나 둘 모여 다같이 푸른 하늘을 향해 달려나간다. 기존의 ‘구원’ 세계관 위에 청량한 이미지를 추가했다. 멤버 범규는 앨범 쇼케이스에서 “애절함과 벅차오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수록곡인 ‘내일에서 기다릴게’도 청량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흰 셔츠에 청바지 의상, 밝고 경쾌한 비트, “여기서 기다린다”는 가사에 충실한 안무 등이 포인트다.

2019년 데뷔한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사진 빅히트뮤직

SM엔터테인먼트 신인그룹 라이즈는 첫사랑의 감정을 소환한 그룹이다. 발매 3개월째 멜론 차트 상위권 붙박이로 있는 노래 ‘러브 119’는 라이즈의 청량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노래방 히트곡인 이지의 ‘응급실’을 대중적인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이들의 데뷔곡 ‘겟 어 기타’도 차트에서 롱런 중이다. 기타 소리에 멤버들이 모이고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의 팀이 돼간다는 노랫말에는 청춘의 꿈이 담겨 있다. 김형국 SM엔터테인먼트 디렉터는 “라이즈의 콘셉트와 음악에는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내재돼 있다”고 밝혔다.
그룹 라이즈는 멤버들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독자적 음악 장르인 '이모셔널 팝'을 추구한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연애예능까지 나간 트레저


청량함의 연장선에서 솔직함을 전면에 내세운 그룹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신인그룹 NCT 위시는 지난 3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데뷔 한 달 기념 미디어데이를 열고 캐스팅 과정부터 데뷔 이후의 일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으로선 유례가 없는 홍보 방식이다.
행사에선 멤버들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목포 출신인 시온은 “SM에서 DM 캐스팅을 받았지만 상경이 무서웠고 학교도 빠져야 하고, 서울에서 지하철 타는 것도 무서워서 거절했다. 결국 SM 담당자가 목포로 내려와 오디션을 보고 데뷔할 수 있었다. 서울 오자마자 지하철 앱부터 설치해 지금은 괜찮다”고 털어놓았다.
그룹 NCT WISH가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라운드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24.04.03.


YG엔터테인먼트의 트레저는 연애 프로그램인 SBS ‘빛나는 솔로’에 출연 중이다. 아이돌은 연애해선 안된다는 금기를 과감히 깬 행보여서 눈길을 끈다. YG 관계자는 "포장된 아이돌의 이미지가 아닌, 평범한 남자의 친근한 매력을 꾸밈없이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이브·SM·YG 등 대형기획사가 청량 공식의 대중 친화 전략을 앞세우면서, 보이그룹 시장은 비슷한 콘셉트로 재편되고 있다. 첫 정규 ‘소화(韶華) 1장 : 청춘 시절’로 청량미를 앞세운 이펙스, “편안한 음악으로 10~20대를 넘어 부모님 세대까지 사로잡겠다”는 엔카이브는 지난 9일 나란히 쇼케이스를 열었다. 14일 컴백한 DKZ도 청량 콘셉트의 노래 ‘라이크 어 무비’를 공개했다. 유니아트는 다음달 1일 누구나 볼 수 있는 반포 한강공원 수변무대에서 미니 6집 ‘어나더 ’ 컴백 쇼케이스를 연다.

그룹 트레저의 연애 예능 '빛나는 SOLO'는 여성들에게 가장 많은 보석을 받아 '최고의 보석남'에 등극하는 콘셉트다. 사진 SBS '빛나는 SOLO'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다양한 콘텐트를 갈구하는 요즘 시대엔 아이돌 그룹이 정제된 모습으로만 활동을 이어가기엔 한계가 있다.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을 내세우면서 과거의 신비감이 친근감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어 "대형기획사들이 내건 남성 아이돌의 청량 콘셉트가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중소기획사로까지 이런 유행이 번지며 하나의 흥행공식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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