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타임오프제 악용 이참에 뿌리 뽑아야 [데스크 칼럼]

지봉철 2024. 4. 2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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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34명 타임오프제 위반 무더기 해고…현대제철도 악용한 前충남지부장 해고
고용부, 타임오프제 위반율 높은 자동차·조선·철강업종에 사업장 근로감독 확대 계획
현행법 상 타임오프제 위반은 사측만 책임… 노조도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타임오프제 악용하는 노조와 방관하는 사측 모두 변신 필요…정부가 방아쇠 역할을 할 때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해 근로시간 면제제도 등 기획감독 중간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뉴시스

2400여년 전 중국 전국시대 때의 이야기다. 초(楚)나라 정벌을 계획하던 위(魏)나라 안리왕에게 계량이 궁에 들어오면서 목격한 일을 전해 줬다. 그는 왕에게 "어떤 남자가 남쪽에 있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나라로 가려면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왜 북쪽으로 가십니까'라고 묻자, '상관없어요. 나에게는 좋은 말이 있고 많은 여비가 있고 좋은 마부도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는 방향이 틀렸으니 설사 훌륭한 말과 많은 여비, 좋은 마부가 있더라도 갈수록 초나라와 멀어질 것이오'라고 충고했지만, 이 사람은 이를 듣지 않고 마차를 계속 북쪽으로 몰았습니다"고 말했다.

북원적초(北轅適楚)라는 말의 유래다. 목적과 수단이 모순되거나 일의 결과가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을 일컬을 때 쓰인다. 최근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 북원적초 고사를 생각나게 한다.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위해 시작된 타임오프제가 본래의 취지를 잃고 무단결근과 근무지 이탈의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1일부로 시행된 근로시간면제제도, 일명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사교섭‧산업안전‧고충처리 등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에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같이 좋은 취지의 제도가 대형노조의 불성실한 근태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타임오프제 위법 사례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수가 1000명 이상인 대형노조 중 13.1%가 타임오프제를 악용하며 제도의 취지를 훼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엔 타임오프제를 악용한 서울교통공사 노조 간부 34명(파면 20명, 해임 14명)이 해고됐다. 사규상 타임오프 전임자는 연간 단위로 사전지정을 해야 하지만 노조가 이를 어기고 파트타임 전임자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300명이 넘는 인원을 노조 전임자로 지정해 왔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대 151일을 무단결근하거나 지정된 근무지를 상습적으로 이탈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민간 기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현대제철에서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악용한 前충남지부장 A씨를 해고했다. A씨는 노조활동을 위한 관례적인 결근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노조 전임자의 신분이 아니면서도 무려 55일간이나 무단결근한 것이 해고의 사유였다. A씨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난 2월 충남지노위에서는 A씨의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현대제철이 내린 해고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타임오프제의 악용을 둘러싼 논쟁은 이러한 노사(勞使) 갈등뿐 아니라 노노(勞勞) 갈등도 일으키고 있다. MZ노조는 다른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하는 타임오프제 악용을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 노조의 관행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실제 서울교통공사 내 MZ세대가 주축인 올바른노동조합 송시영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근로를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인력 부족 문제로 직원들이 휴가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도 노조의 타임오프제에 대한 불법적인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나섰다. 불법적인 관행을 방관한 사측에도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지난 1월 "근로시간면제 기획 감독을 통해 지적사항에 대해 시정이 완료된 사업장은 재점검을 통해 위법사항이 재적발 될 경우 즉시 형사 처벌할 계획"이라며 "향후 규모와 업종을 고려해 근로감독을 확대·지속하는 등 상시 점검·감독 체계를 구축해 근로시간면제 관련 불법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용부는 일종의 2차 정비 작업으로 올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대형노조가 있는 업종과 근로자 100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을 추가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재점검을 통해 위법 사항이 또 적발되면 형사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타임오프제 위반율이 높은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 현대중공업지부, 포스코·현대제철 등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노조는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함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노(勞)가 됐던 사(社)가 됐던 엄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교 이정 교수는 "노조가 기업을 압박해 타임오프제 위반이 일어났을 때도 현행법은 사용자를 처벌하게 돼 있다. 미국은 처벌 대상에 노조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노사 공동의 책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명지대 경제학과 조동근 교수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조활동 지원을 위한 타임오프제 악용은 정당한 노조 활동을 방해할 뿐 아니라 조합원이 아닌 근로자에게도 피해를 준다. 이로 인한 피해에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편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되는 타임오프제는 이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위법을 저지르지 않고 합리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싸잡아서 욕먹는 상황이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행이라는 그늘아래서 당연하게 생각하며 속이고 눈감아줬던 관계를 이참에 끊어내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선의의 일반 직원에게 전가된다. 더욱이 사측이 강성노조와의 갈등을 피하려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편의와 특혜를 제공한다면 정부가 악역을 맡아야 함은 당연하다. 정부의 기획 감독이 타임오프제를 둘러 싼 노사 관계의 오해를 해소하는 변화의 방아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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