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올림픽' 베니스비엔날레, 원주민의 삶에 주목하다
호주 원주민 작가·마오리족 여성작가 그룹 수상
129년 역사의 세계 최대 규모 현대미술축제,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 영예 ‘황금사자상’을 남반구 원주민 작가들이 휩쓸었다.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공식 개막식을 겸한 시상식을 열고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호주 원주민 출신의 작가 아치 무어(54)가 이끈 호주관에, 최고 작가 황금사자상은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로 구성된 ‘마타호 컬렉티브’에게 각각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두 수상 작가는 남반구 원주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역사·정치적으로 소외됐던 이들이 식민 지배국, 서구 주류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에 대응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정체성을 작품 주제로 했다는 점도 닮은 부분이다.
호주관을 대표한 호주 원주민 출신 작가 아치 무어는 우승작 '가족과 친척(kith and kin)'에서 자신의 가족사이자 저평가된 원주민의 역사를 4년 넘게 역추적해 가계도를 만들었다. 검은 칠판으로 만든 벽과 천장에 작가는 무려 6만5000년, 2400세대에 걸친 3484명의 원주민 가계도를 기록해냈다. 그중에는 공백으로 남긴 부분도 있는데, 이들은 질병으로 사망했거나 살해되거나 공개 기록에서 지워진 경우다. 또한, 작가는 원주민의 사망에 대한 호주 정부의 검시관 조사기록이 담긴 보고서와 국가기록물을 전시관 중앙에 쌓아 놓기도 했다.
최고 작가 황금사자상을 받은 마타호 컬렉티브는 뉴질랜드 마오리족 여성 작가 4명(브리짓 레웨티, 에레나 베이커, 사라 허드슨, 테리 테 타우)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이들은 아르세날레 전시장 입구에 격자무늬의 형광 대형 섬유 설치 작품 '타카파우(Takapau)'를 선보였다. 마오리족 여성들이 출산 또는 의식 때 사용하는 전통 직조물인 타카파우를 대형으로 제작해 천장을 감싼 작품을 통해 이들은 모계 전통으로 이어지는 노동 집약적인 여성의 삶을 다각적으로 대변하는 동시에 조명을 통해 천장과 바닥으로 드리운 그림자 패턴의 효과를 선사했다. 심사위원단은 "우주적이고도 안식처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평가했다.
유망한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은사자상은 성별과 이주를 주제로 탐구한 비디오 '머신 보이즈(Machine Boys)'와 조각품 '화환(Wreath)'을 제작한 나이지리아 출신 영국 작가 카리마 아샤두에게 돌아갔다.
한국은 구정아 작가를 필두로 김윤신, 이강승 등 거장의 참여로 역대급 규모를 자랑했지만 아쉽게도 수상의 영예는 안지 못했다. 하지만 비엔날레 기간 병행 전시와 위성 전시가 베니스 곳곳에서 진행돼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내년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앞두고 열린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는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자리에서 조명한 의미 깊은 기획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올해 비엔날레 본전시는 서구 강대국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삶을 빼앗긴 원주민과 고향을 빼앗긴 채 타향을 떠도는 이민자와 망명자, 주류 서사에서 배제돼 기록에도 남지 않은 퀴어와 여성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누구나 이방인(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88개국 331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에는 어디를 가든 이방인을 만날 것이며, 우리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선 이방인임을 뜻하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총감독은 "외국인, 이민자, 실향민, 망명자, 난민 예술가들의 작업, 나아가 이방인의 의미를 확장하고자 했다"며 "성 정체성으로 박해받고 소외되는 퀴어 예술가, 독학으로 작업을 시작한 예술가, 민속 예술가 등 미술계의 변방에서 겉도는 인물들, 모국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토착 예술가 등의 실천을 조명하는데 전시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황금사자상 평생공로상은 칼라브리아 스칼레아 출신 브라질 예술가 안나 마리아 마이올리노와 이집트에서 태어나 파리에 사는 터키 예술가 닐 얄터에게 돌아갔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는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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