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점과 선으로 표현한 도시의 낭만 속으로

한은정 2024. 4.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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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보고 있는데 리듬이 느껴지는 경험을 한 적 있나요.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윤협의 작품은 그림 그 이상의 경험을 안겨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는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포착한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를 오로지 ‘점’과 ‘선’으로만 그립니다. 2004년 라이브 페인팅을 하며 즉흥적으로 ‘점’과 ‘선’의 표현을 선보인 이후 구상한 이미지를 밑그림 없이 점과 선으로 채워나가는 게 작가 특유의 작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죠.

‘굿 나이트 맨해튼’은 작가의 초기 작업 중 하나로 도시 야경 시리즈의 시작을 연 작품이다. 작가는 페인트 마커를 사용하여 검은색의 배경 위로 파랑·빨강·노랑·하얀색의 자유롭게 흘러가는 선들을 교차시키며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표현했다.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스케이트보드, 힙합, 펑크 등 서브컬처에서 영향을 받은 작업을 시작했어요. 스케이트보드를 기반으로 한 벽화, 라이브 페이팅, 그래픽 디자인, 음악 앨범 커버 작업 등을 시작하며 다양한 스트리트 브랜드와 협업한 그는 나이키 코리아 등 다수의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며 아티스트로서 입지를 굳혀 나갑니다.

2010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2014년 패션브랜드 랙앤본(rag & bone)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뉴욕 예술계와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으며 활발히 전시·협업·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윤협 작가의 개인전 ‘녹턴시티(Nocturne City)’는 그의 예술적 궤적을 돌아보는 자리로 초기작부터 신작·회화·조각·영상·드로잉 등 총 23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죠.

윤협 작가는 구상한 이미지를 밑그림 없이 점과 선을 여러 방식으로 배합하고 색을 더해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도시’. 작가는 도시 안팎에서의 경험과 도시 속 인간의 내면, 주관적인 감정을 도시 시리즈에 담아냈습니다. ‘Seoul City’(2023)는 고향인 서울에 대한 감정을, ‘Walking by the River’(2023)는 런던에서 개인전 개최 후 방문한 파리의 기억을 표현했죠. 지난 13년간 뉴욕에 살면서 작가는 “도시가 희로애락의 공간처럼 느껴진다"며 “나에게 도시는 다양한 에너지로 가득 찬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 도시를 표현하는 것은 도시 속의 개성과 문화를 통해 직접 느낀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밝혔죠. 녹턴은 ‘밤’이라는 시간에 영감 받은 예술을 의미하는데요. 밤은 기억의 조각들을 상기시키며, 낮에는 보이지 않던 여러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매력적인 시간이라고 덧붙였어요.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16m의 대형 파노라마 작품 ‘Night in New York’은 맨해튼에서 뉴저지까지 연결되는 스카이라인을 묘사한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비행기 창문 모양의 프레임에서 나오는 짧은 영상이 눈에 띄죠. 작가가 처음 뉴욕으로 떠났을 때,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 창문으로 내다본 뉴욕의 도시 불빛을 촬영한 건데요. 비행기 안내방송도 같이 흘러나와 꿈을 가지고 낯선 도시로 떠난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볼 수 있죠. 맨해튼의 야경을 그린 16m의 대형 파노라마 작품 ‘Night in New York’(2023)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입니다. 작가는 자전거로 브루클린에서 베어마운틴까지 왕복 200km를 달리며, 허드슨 강에서 바라본 야경이 마치 대기권 밖에서 지구를 보는 듯했다고 회상했죠. 허드슨강 수면 위에 반사되는 도시 불빛을 보며, 모네(Claude Monet)의 ‘수련’ 연작을 떠올리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해요.

서울의 풍경을 담은 작품도 있죠. 롯데뮤지엄이 있는 롯데월드타워의 전망대에서 본 서울의 야경을 담은 ‘서울 시티’와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멀리 보이는 롯데월드타워의 모습을 담은 ‘기사의 관점’ 같은 작품을 보면 익숙한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 들 거예요. 이밖에 회화에서 조각으로 탄생한 ‘저글러(Juggler)’와 새롭게 발전시킨 ‘리틀 타이탄(Little Titan)’ 시리즈를 최초로 공개합니다. 작가 특유의 회화 작업 방식인 ‘점’과 ‘선’이 조각으로 발전한 작품이죠. 누구나 유년 시절 찰흙으로 한번 만들어 봤을 익살스러운 모습의 ‘저글러’와 SF 로봇 같은 ‘리틀 타이탄’은 문구점을 사랑한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투영되어 신비로우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구점에서 장난감과 프라모델을 수집한 윤협 작가는 자신만의 캐릭터 ‘저글러’를 만들었다.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다채로운 도시의 색감과 점, 선으로부터 탄생했으며, 이 구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도 가능하다. ⓒ Yoon Hyup.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이번 전시에서는 1990년대부터 수집·사용한 스케이트보드·카세트테이프를 비롯해 작품 영감의 원천이 된 사진·영상, 2000년대 초반 폐종이박스를 활용해 제작한 마리오네트 ‘벌도’(2003), 당시 함께 활동하던 아티스트들과 만든 ‘캐러멜 보이’(2003)도 볼 수 있죠. 스케이트보드와 DIY(Do It Yourself)문화는 윤협의 작품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1995년 중학생 윤협은 이태원 스케이트보드샵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해외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의 로고나 페이지를 콜라주하고 드로잉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전문시설이 없어 벽돌이나 사물들을 모아 스케이트보드 기물을 창작했는데, 이러한 DIY 방식으로 버려진 물건을 소재로 작업하면서 음악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박스 마스크도 디자인했죠.

윤 작가는 점과 선을 여러 방식으로 배합하고 색을 더해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 풍경을 만들어내죠. 전시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점은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배웠을 때 악보에서 본 스타카토 음표다. 현악기를 연주할 때에는 음계를 유연하게 변경하는데, 그런 느낌이 제 붓의 움직임에 많은 영감을 줬다. 9살 때 시작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느낌도 캔버스 위에서 곡선을 그리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선의 리듬과 색상의 화음은 관람자로 하여금 청각적 경험을 부여함과 동시에 21세기 시각 미술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죠.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고요한 ‘밤’, 윤협 작가가 들려주는 녹턴은 진정한 ‘도시 낭만’을 느낄 기회가 될 거예요.

■ ‘윤협: 녹턴시티(Nocturne City)’

「 기간 5월 26일(일)까지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에비뉴엘 6층 롯데뮤지엄
관람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30분)
관람료 성인 1만8000원, 청소년 1만5000원, 어린이 1만2000원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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