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위험한 말

문병주 2024. 4. 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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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논설위원

4ㆍ10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의 기세가 대단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을 약간 수정한 개정안을 지난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표결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여당 의원들은 없었다. 다음 달 30일 22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에 그동안 단독으로 추진한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과 이태원참사특별법도 관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국회 활동을 통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대한 압박뿐 아니다. 사법부를 향해 정치적 경고도 날리고 있다. 김동아 당선인(서울 서대문갑)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1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4ㆍ10 총선 전날 이(재명) 대표를 굳이 재판에 불러 세워 놓은 것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장동 변호사’로 불리는 당선인 5명에 속한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김동아 당시 후보와 함께 서울 아현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김 당선인이 말한 ‘민주적 통제’는 어떤 의미일까.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 국회의원이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헌법이 규정한 법관 탄핵소추가 대표적이다.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조건이 있지만, 이유를 잘 포장하면 재적 과반수가 넘는 민주당이 이를 활용하는 건 어렵지 않다. 경우는 다르지만,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대법원 무죄 확정)는 2021년 2월 국회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탄핵소추됐지만 그해 10월 헌법재판소에서 각하 결정을 받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해 말 인사청문회 때 “법관에 대한 무분별한 탄핵 논의는 자칫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약화할 우려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 대장동 변호사 출신 의원 당선인
이재명 재판부 대해 정치적 경고
삼권분립 수호 의지 있는지 궁금

사법부 견제는 법관 증원, 법원 조직개편을 해야 하는 법안 심사와 의결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재 대법원은 재판지연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최근 각 법원장까지 투입돼 장기미제사건과 같은 재판을 맡아 판결을 내고 있지만, 3200여 명 수준인 법관 수를 늘리지 않고는 풀리지 않을 문제다. 조 대법원장도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법관 증원이 절실하다”며 “국회에서 논의만 하고 있고 통과는 안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법무부는 2022년 12월 정부입법으로 각급 법원 판사의 수를 향후 5개년간 순차적으로 370명 증원하는 판사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다음 달 29일 21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 자동 폐기되고, 이후 새로 법을 제출해야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그 전이든 이후든 거대 야당이 응답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대법관 구성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8월 퇴임하는 김선수ㆍ이동원ㆍ노정희 대법관의 후임 추천 작업을 진행 중이다. 12월에는 김상환 대법관도 바뀐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천거 대상자를 심사한 뒤 3배수 이상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법원장은 이들 가운데 3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대법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아야 취임할 수 있어 거대 야당의 입장이 중요하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권 인사들의 재판이 수년 사이 모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게 돼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 구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 역시 국회의 결정에 달렸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전혀 권한이 없기 때문에 자꾸 정치권에 부탁하게 되고, 그 부탁을 하게 되면 역으로 정치권에서 자기들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법원 예산 편성의 자율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했다.

이래저래 거대 야당이 사법부를 흔들려 한다면 방법은 꽤 많아 보인다. 김동아 당선인의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저의는 분명해 보인다. ‘대장동ㆍ백현동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판사들을 중심으로 사법부를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위 재판보다 신속한 판결이 예상되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위증교사 혐의 재판 지연이나 유리한 결과도 기대할지 모른다. 그는 “헌정 질서에 사법부가 도전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물었지만, 삼권분립 원칙이라는 헌정 질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를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사법적 통제도 절실하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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