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빛과 그림자의 진실한 공간, 토로네 수도원

2024. 4. 22. 0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삼은 이후, 역설적으로 교회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세속화를 거부하고 영성을 회복하기 위한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고, 6세기에는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성 베네딕트의 규칙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수도원 역시 세속화하여 끊임없는 갱신 운동이 벌어졌고, 12세기 프랑스에는 시토회 수도원들이 세워졌다.

1176년에 건설된 토로네 수도원은 실바칸·세낭크와 함께 ‘프로방스의 3자매’라는 시토회 수도원이다. 당시 ‘유럽의 양심’으로 불렀던 클레이보의 베르나르는 ‘세속으로부터 봉쇄한 일하는 수도공동체’ 운동을 벌였고, 1800여 시토 수도원 가운데 토로네 수도원이 그 정신을 건축적으로 가장 잘 구현한 곳으로 알려졌다.

공간과 공감

수도원은 예배당과 도서관, 기숙사와 생활 시설 등 다양한 기능의 복합체다. 각 건물은 사각형·삼각형·원통형 등 단순한 형상들이고, 청빈의 정신을 따라 일절 장식이 없고, 세속과 단절하려는 듯 육중한 돌벽을 쌓았다. 이 복합체의 중심에 사각 마당을 감싸는 열주 회랑, 클로이스터가 자리한다. 회랑의 건물 쪽은 어둡고 거친 돌벽이지만, 마당 쪽은 아치형 열주들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지형에 따라 경사진 회랑 바닥에 묘한 리듬의 빛과 그림자가 반복된다. 침묵의 서약을 한 수도사들은 이 복도를 따라 천천히 찬양하며 묵상하고 순회한다. 긴 울림의 공간은 침묵 속의 음악과 같고, 어두움 속 한 줄기 빛은 영성을 깨우는 신의 존재와 같다.

이 수도원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다. 후대 고딕 양식의 화려한 장식성에 비해 형태의 단순함과 재료의 솔직함이 돋보인다. 단순한 삶과 진실한 신앙을 추구한 시토 수도원에 더없이 어울리는 건축양식이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는 대표작 라투레트 수도원을 설계할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 그는 건축적 본질을 간직한 이 수도원에 감동해 ‘진실의 건축’이라 불렀다. 토로네와 라투레트는 시간을 뛰어넘는 ‘진실의 자매’가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