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소통카페] 경청과 소통은 국민을 위한 의무

2024. 4. 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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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불통’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삼킨 선거였다. 후보자의 정책·자질·가치 검증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모든 게 정권심판론에 빨려들어 가버렸다. 총선의 지배자는 불통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여당 참패, 야당 압승의 결과에 대해 언론, 전문가, 보통 사람들 모두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불통과 오만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는 데에 만장일치였다.

「 불통의 저주, 정치생태계 파괴
불통의 특징은 오만·독선·독주
인간은 소통하며 자유를 확인
피드백 인정이 소통의 첫걸음

김지윤 기자

불통은 사실 한국 정치권이 오래도록 앓고 있는 지병이다. 오만가지 형상으로 변장술을 부리며 권력의 주위를 배회했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는 ‘상대편은 악’, ‘자기편은 선’으로 절대시하며 ‘내로남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좀 지키라는 국민의 요구와 끈질기게 불통하였다. 거대 야당의 무리한 입법 폭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불통을 오히려 강화했다.

불통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대화의 출발점이 되는 경청은 상대의 말을 단순히 듣는 것(hearing)에 그치지 않고, 말에 주목(attending)하고,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listening) 행위이다(『Listening』, Wolvin & Coakley). 경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화는 기대할 수 없고 토론과 공감은 당연히 존재할 수 없다. 상대의 처지가 되어 보는 ‘역지사지’ 소통은 언감생심이다.

불통의 증세는 상대의 반응에 개의치 않을 때 악화한다. 소통이 주요 분야인 커뮤니케이션 연구도 초기에는 발신자가 메시지를 잘 만들어 목표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상대의 반응에는 소홀하였다. 그러나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불일치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혼란이 발생한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상대의 반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피드백’의 발견은 그 깨달음의 수확이다(『Theories of mass communication』, DeFleur). ‘피드백’은 발신자의 메시지에 대한 수신자의 반응이다. 피드백의 존재와 의견을 무시하면 좋은 소통을 이룰 수 없다. 피드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수록 발신자는 자신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수신자를 제멋대로 정의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시지만을 만들고, 자신의 관점만을 대변하는 ‘일방향(one-way)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의 생각이나 의견을 공유하고 공통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도대로 변화시키는 데에 목적을 둔다. 어떤 말, 어떤 메시지가 자신들의 목적 달성에 좋은가에만 몰두하는 일방적인 관점으로 일관한다. 불통의 전형적인 특징인 오만, 독선, 독주, 권위주의, 일방통행이 나타나는 것이다.

불통과 마이동풍 국정 운영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권 교체로, 이번 총선에서는 야당이 국회 운영과 입법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대통령 탄핵을 시도할 수 있는 압도적인 야당 의석수로 나타났다. 불통의 저주가 정치생태계의 균형추를 파괴한 것이다. 다행히 압승한 민주당 대표가 ‘대화, 협치, 상생’을 강조하고,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와 영수 회동을 제안하여 동의를 얻은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이런 소통의 자세를 유지하며 좋은 결과물을 수확하는 ‘타협의 지혜’를 축적해 가야 한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편싸움꾼 의원들의 ‘선명 경쟁’과 비례대표들만으로 제3당이 된 정당의 대표가 입에 달고 사는 사적 보복 수준의 언행이 가져올 국회의 파행과 국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민주당 175석, 범야권 192석은 국회의 정상적 작동은 물론이고 국정운영에 야당도 책임감을 공유해야 하는 숫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소통을 통해 공유하는 만큼 이해하고 존재하는 동물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행정부도, 국회도 국민과 소통을 통해 공유하는 만큼 존재한다. 정치·경제적 요인만으로 대한민국 국민과 공동체가 행복할 수 있는 수준은 지났다. 국민의 희로애락을 보듬는 소통이 없다면 공동체의 행복감과 유대감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못해서 피 흘리며 자유를 쟁취했고, 자유로운 인간은 불통이 아니라 소통에서 존재를 확인한다. 시대는 ‘불통의 밀실’이 아니라 ‘소통의 광장’을 원한다. 국민을 위하는 경청과 소통은 정당과 정권의 선거 승패를 넘어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의 의무이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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