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나 뭘 신은거야?" 검색 4000% 급증…대박난 이 등산화
■ b.멘터리
「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
"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운동화 브랜드 " 지난해 초 미국 재판매 플랫폼 ‘스톡 X(stock X)’가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살로몬을 두고 한 평이다. 당시 살로몬은 스톡X에서 전년 대비 거래량이 2227% 증가하면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살로몬이 다시 주목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2월에 열린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등장한 가수 리한나가 불을 지폈다. 활동 중단 후 약 5년 만에 등장하는 그는 이날 로에베의 대담한 붉은색 캣슈트에 붉은색 살로몬 운동화를 매치했다. 메종 마르지엘라와의 협업 제품으로 신발 입구를 조일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패션 매거진 보그 프랑스에 따르면 슈퍼볼 방영 후 살로몬의 온라인 검색량은 4000% 급증했다.
스키 장비 브랜드가 길거리로
살로몬은 1947년에 설립된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다. 등산객이나 스키 주자들을 위한 전문 트레일화, 스키 부츠 및 장비 등을 주력으로 판매해왔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15년. 프랑스의 디자이너 편집숍 ‘브로큰 암(broken Arm)’과의 협업 제품을 발매하며 전문 트레일화의 패션시장 진입을 본격 예고했다.
이듬해에는 아예 패션의 중앙 무대로 나섰다. 파리에서 열린 디자이너 보리스 비잔 사베리(Boris Bidjan Saberi)의 패션쇼에 모습을 드러낸 것. 이후 뉴욕의 도버스트리트마켓, 키스(Kith) 등 유명 패션 편집숍을 통해 힙한 스트리트 패션으로 확장하더니, 2019년에는 패션 매거진 GQ가 뽑은 ‘올해의 스니커즈(살로몬 XT-6)’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이엔드 패션 업계에서나 세를 넓혀가던 살로몬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계기는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언택트’ 여가를 위해 산을 찾는 20~30대가 늘면서 기능에 충실한 아웃도어 용품이 일상에도 녹아들었다. 전문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절묘하게 소화하는 이른바 ‘고프코어(gorpcore)’ 트렌드다. 기능성 아노락(바람막이)에 나일론 팬츠, 등산화를 신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했다.
매출 88% 상승, 영업익 4배 급등
국내에서도 고프코어 트렌드는 숫자로 입증된다. 19일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3~4월 스포츠·아웃도어 신장률은 52.7%에 이른다(강남점 기준). 특히 살로몬을 비롯해 아크테릭스·파타고니아 등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가 고프코어 트렌드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기성 브랜드가 아닌 차별화한 기능과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전문 등산·캠핑 브랜드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레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서 살로몬을 전개하고 있는 아머스포츠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672억원으로 전년 356억원 대비 88.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15억원으로 전년 29억 대비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아크테릭스를 전개하는 넬슨스포츠는 지난해 115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5년 전 300억 원대 매출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근본템’ 찾는다...‘하드코어’ 패션의 일상화
신(新) 아웃도어 브랜드의 공통점은 각 분야에서 선수급도 사용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췄다는 데 있다. 이른바 ‘퍼포먼스’를 극대화한 브랜드다. 일상에서는 필요 없는 수준의 압도적 기능을 갖춘 것일수록 환영받는다. 알프스 산기슭에서 탄생한 전문 트레일화에 히말라야의 바람도 막아줄 법한 방풍 재킷을 걸친 채 도심을 활보하고, 한강 둔치를 달릴 때도 이왕이면 마라토너가 신을 법한 전문 러닝화를 선택하는 식이다.
이 과한 듯한 소비 트렌드에는 ‘00코어’라는 패션계 용어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2010년대 중반, 극도의 평범함을 추구하는 ‘놈코어(normal+hardcore)’에서 시작해, 특정 카테고리를 깊게 파는 발레코어·바비코어·고프코어 등으로 변주되는 것. 일상복에 발레슈즈를 더하거나 영화 ‘바비’의 캐릭터처럼 핑크 일색으로 꾸미고, 견과류(gorp)를 휴대해야 할 것만 같은 본격적인 등산복이 일상으로 들어온 이유다.
프랫대학교 패션과 조교수이자 전 휠라 디자인 디렉터 프레야 타마요(Freya Tamayo)는 ‘아웃사이드’ 매거진에서 “아웃사이더 같은 스타일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룩이 유행하고 있다”며 “이들은 매우 이상한데, 그게 바로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분야에 깊게 파고들어 이상해 보이지만, 오히려 더 눈길이 가고 더 패셔너블해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화려함은 덜고 기능은 더한 조용한 아웃도어, 테크니컬 아웃도어의 부상과도 맞물린다.
실제로 최근 스니커즈 시장에서는 기능성·편안함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전문 러닝화를 일상에서 신는 이들이 늘면서 프랑스 러닝화 브랜드 ‘호카’나 스위스의 ‘온’, 미국의 ‘브룩스’ 등을 신은 이들을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살로몬은 올해 트레일 러닝 대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패션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보다 전문적 아웃도어 활동을 강화하는 마케팅에 집중할 계획이다. 조정인 아머스포츠 마케팅 디렉터는 “올해 트레일 러닝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리더십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산에서 시작돼 아웃도어 하이킹 신발을 만들어 온 브랜드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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