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ㅠㅠ, 연애 얘기' 금지… 여대 '에타'에만 있는 색다른 규칙

안지혜 2024. 4. 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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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자대학교의 에브리타임(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아래 '에타')에 올라온 이 글은 학생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런 규칙들에 대해 커뮤니티 이용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은 커뮤니티 사용이 제한되는데, 이러한 압박이 불쾌하고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퇴행어 금지, 화장·헤어스타일·이성 연애 관련 글 금지 등의 규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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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여대 3곳, 에타 규칙 살펴봤더니..."'자신이 비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 고립 가능성 키워"

[안지혜 기자]

"OO 수업 오늘 출석 체크했나요? 실수로 다른 분반에 갔다가 늦게 알아서 다시 가보았더니 수업이 이미 끝나있네요ㅠㅠ" 

서울여자대학교의 에브리타임(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아래 '에타')에 올라온 이 글은 학생들의 지탄을 받았다. 눈물 표시 'ㅠㅠ'는 성인이 어리광을 부리는 식의 말투인 '퇴행어'로 분류돼 에타 내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성신여대에 재학 중인 A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신입생 때 이런 규칙이 있는 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에타에서) 퇴행어를 사용했는데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뭐라고 하는데 너무 무서웠었어요." 

서울여대, 성신여대 뿐 아니라 숙명여대 에타 규칙을 살펴보았다. 공통으로 존재하는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 소재 모 여대 에브리타임 게시물을 재구성한 이미지. 에브리타임은 내부의 공지를 캡처해서 외부로 유출할 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어서 게시물을 재구성했다.
ⓒ 안지혜
 
- 퇴행어 (혀 짧은 소리, 애교 말투, ㅠㅠ) 사용 금지
- 화장품, 헤어스타일, 이성 연애 관련 이야기 금지
- 외부에 내용이 공개되는 자유게시판 사용 금지, 비밀게시판 사용 권장

규칙은 학교에 따라서 조금씩 추가되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실제 숙명여자대학교에는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플리마켓 게시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규칙이 있다. 이 같은 규칙이 외부의 압력이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 내에서 하나둘 생겨난 '지양해야 할 언어'들이 '지켜야 할 것'들로 굳어진 경우다. 그렇다면, 이런 규칙들에 대해 커뮤니티 이용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여성 외모에 대한 압박, 가부장제 등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런 규칙들은 그게 당연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편견을 깨뜨리려고 하는 거 같아요." - 서울여대 김진아씨

"저는 퇴행어나 'ㅠㅠ'를 쓰지 말자는 규칙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덕분에 좀 더 예의 있고 전문성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서울여대 강지은씨

한편 규칙을 강요하는 것에 부정적인 학생들도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은 커뮤니티 사용이 제한되는데, 이러한 압박이 불쾌하고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규칙을 어겼다고 기분 나쁘게 댓글을 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러면 서로 기분만 나빠지고 신입생들이 학교를 싫어하게 된다고 봐요." - 성신여대 A씨

"제 상식선에선 과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규칙도 많아요. 애초에 투표 등의 과정을 거쳐 정당하게 제정된 규칙도 아닐뿐더러 가입할 때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전 동의 등도 없었어요. 규칙을 지켜야 할 공식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데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에서부터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 서울여대 B씨

"여성주의와 능력주의가 결합된 결과"

이러한 규칙과 제재가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민가영 서울여대 여성학 교수는 "페미니즘 대중화 흐름과 함께 성장한 여성주의 의식과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가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이므로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자격조건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해요. 남성에게 요구되지 않는 화장, 외모에 대한 시간, 에너지, 자원의 사용이 여성들을 남성들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을 방해할 뿐더러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기게 되죠.

퇴행어의 경우, 언어는 사용자의 정체성인데 퇴행어의 사용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여성을 다른 화자와의 관계에서 동등한 존재가 아닌 권력의 위계 속에 묶어 두게 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금기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이성애 관련해서는 연애 관계가 여성을 한 인간이 아니라 여자로 호명하는 문화와 분리되기 어렵기 때문에 연애 관계 내에서의 성별 권력관계를 문제시하는 흐름에서 등장한 것 같고요."

여성들이 화장하고 꾸미는 데에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 및 애교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적은 권력을 갖게 되는 원인이라 판단해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라는 해석이다. 또한 '나 애인 생겼어'가 아닌 '나 여자 생겼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듯, 연애 과정에서 '여자'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여대생들이 아예 이성 연애 이야기를 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이러한 규제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가진다고 말했다.

"일단, 여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와 권리에 민감해지고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성장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수일 때 그 목소리를 보호하며 논의의 수준을 더 깊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잠정적으로 서로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의 내부적 연결망을 통해 고민과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비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더 나은 변화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이 논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목소리로 서로를 성찰하면서 더 넓은 접합의 맥락을 찾아 나가는 건강한 논쟁의 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가 비판적으로 여기는 것을 금지하게 될 때 더 나은 논쟁의 장이 형성될 가능성은 적어지죠. 이럴 경우 각자 소수의 고립된 '게토(소수의 고립된 집단을 의미)'로 남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죠."

한편 모든 여성주의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규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 레딧(Reddit)에는 약 28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페미니즘 커뮤니티가 있다. 그러나 퇴행어 금지, 화장·헤어스타일·이성 연애 관련 글 금지 등의 규칙은 없다.
 
 레딧의 페미니즘 게시판에 있는 6개의 규칙. 레딧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이 사용하는 대형 커뮤니티다.
ⓒ 레딧 캡처
 
레딧 페미니즘 게시판의 규칙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게시물은 여성 문제와 관련 있어야 한다.
2) 모든 게시물은 페미니즘에 대한 학문적 관점을 바탕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3) 혐오적인 주제는 허용되지 않는다.
4)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5) 모든 글은 선의로 작성되었다고 가정한다.
6) 여성의 차별과 피해에 대한 게시물에 "하지만 다른 조직도 차별을 받고 있어!" 하는 등의 탈선은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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