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에게 자유를 주니, 혁신적인 향이 태어났다”...프레데릭 말의 철학[더 하이엔드]

윤경희 2024. 4.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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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향수 창립자 프레데릭 말
자유와 자금, 아낌없이 지원해
조향사 창의성 끌어낸 브랜드
아크네스튜디오 협업작 내놔

" “향 없는 인생?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

서울 용산구 한남동 플래그십 매장에서 만난 프레데릭 말. 정성룡 사진가


지난 12일 한국을 찾은 향수 브랜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창립자 프레데릭 말의 이야기다. 2000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를 만들어 내놨을 때, 세상이 주목했다. 새로운 컨셉의 향수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향수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병과 디자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게 일반적인 향수 브랜드의 방식이다. 그런데 프레데릭 말은 달랐다. 각기 다른 조향사가 만든 향수를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병에 담았고, 병을 포장한 종이 패키지는 마치 두꺼운 책처럼 디자인했다. 브랜드명 또한 책처럼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Editions de Parfums Frédéric Malle)’로 지었다. 책 같은 향수 패키지 덕분에 그의 향수 매장은 마치 잘 정돈된 책방 같은 느낌이 났다.

프레데릭 말이 책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향수 컬렉션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정성룡 사진가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대표 향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게다가 다른 향수에선 뒤로 숨겨져 있던 조향사의 이름을 앞으로 내세워 큼지막하게 향수병에 새겼다. 자신의 이름보다 향을 창조한 조향사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를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접했다. 2013년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새로운 컨셉에 트렌드에 앞서가는 스타들이 그의 향수를 선택했다. 어느새 25년 차 향수 브랜드가 된 프레데릭 말은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아시아 최초로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한국의 둥지에서 그를 만났다.

Q : 이런 컨셉의 향수 브랜드를 어떻게 고안해냈나.
“현대미술처럼 향수도 현대, 즉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조향사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들이 마음껏 향을 만들 수 있다면, 혁신적인 향이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아름다운 36개의 컬렉션이 완성됐다.”

Q : 조향사의 능력을 끌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완벽한 자유를 준다. 우리 조향사는 시간에 대한 제약, 돈에 대한 제약이 없다. 자신의 향을 마음껏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Q : 패키지가 특이하다. 책처럼 만든 이유는.
“프랑스 유명 출판사 갈리마드의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폰트로만 차별점을 둔 단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다른 향수 패키지들보다 매력적이었고, 조향사의 이름을 저자명처럼 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패키지나 광고, 향수병에 쓰는 예산을 아껴 향수 자체를 만드는 데 쓰고 싶어 향수병과 패키지를 최소화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향에 좋은 원료를 쓰기 위해 간소화한 패키지들은 오히려 더 현대적인 매력을 풍긴다.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매장 내에 설치된 시향 기기.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향수와 친했다. 외할아버지 세르쥬 애틀러-루이체는 크리스찬 디올 향수의 설립자였고, 어머니 역시 회사 경영에 참여해 디올 향수의 제품 개발 디렉터로 세르주 루텐을 영입해 ‘소바쥬’ ‘쟈도르’ 등 향수 개발에 기여했다. 그는 미술사를 전공하고 광고·사진업계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결국 다시 프랑스 유명 향수원료 제조사인 루르 베르트랑 뒤퐁(Roure Bertrand Dupont)에 들어가 향수 세계로 돌아왔다.

Q : 향수 가문이다. 향에 대한 남다른 가르침이 있었나.
“할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난 적이 없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늘 ‘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떤 창작이든 타협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Q : 당신이 생각하는 ‘향수’란 무엇인가.
“나 자신을 확장하는 방법.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도 전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좋은 향수는 자신의 일부와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향이 아니라 ‘냄새’다.”

Q : 여러 조향사가 작업하는 만큼,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제품을 관통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 같다.
“두 가지 중요한 철학이 있다. 첫째는 새로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향수만의 독특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오는 5월 출시하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아크네 스튜디오의 콜라보 향수(왼쪽). 오른쪽은 올봄 한국에 잘 어울리는 향으로 프레데릭 말이 직접 꼽아준 향수 '엉 빠썽'. 사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Q : 36개 컬렉션 중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수는.
“우리 대표 제품인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Portrait of a Lady)’다. 향이 너무 정교해서 대중적이진 않겠다 싶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해줘 놀랐다.”

Q : 봄이 왔다. 요즘 한국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향수는.
“두 가지다. 화이트 라일락 향을 이용한 ‘엉 빠썽(En passant)’과 오는 5월에 출시하는 ‘아크네 스튜디오 파 프레데릭 말’이다. 엉 빠썽은 바람을 타고 흐르는 라일락 향을 느낄 수 있다. 아크네는 신선하고 우아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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