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일군, ‘작은극장 돌체’의 빼앗긴 봄 [공간을 기억하다]

박정선 2024. 4. 1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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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극장으로②] 인천 미추홀구 작은극장 돌체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시민과 함께 일군, 작은극장 돌체

인천 최초의 소극장은 1974년 인천 경동 사거리 인근에 문을 연 카페 깐느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합 문화 공간이었던 서울 명동의 카페 떼아뜨르(1969년 개관)의 체인점 형태였던 다방 겸 소극장이었다. 카페 깐느의 등장 이후 1979년 기독병원 앞 얼음공장의 반지하 50평 공간을 개조해 소극장 돌체가 들어섰고 이후 1980년대 경동예술극장, 신포아트홀, 미추홀소극장, 배다리예술극장 등을 비롯해 무려 13곳 이상의 소극장이 생겨났다. 말 그대로 1980년대 인천은 연극과 소극장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영난으로 대부분의 소극장이 사라졌고,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극장이 소극장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소극장 돌체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 돌체는 명실상부한 인천의 대표 소극장이다. 개관 초창기 극장주인 유용호 씨는 돌체를 통기타 가수들이 공연하고 관객들이 싱어롱하는 공간으로 활용했고, 이후 돌체 소극장을 인수한 정준석 씨는 본격적인 연극 공연을 도입해 돌체를 연극 전용 극장으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1983년부터는 마이미스트인 최규호·박상숙 부부에게 운영권이 넘어갔다.

소극장 돌체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007년 소방 도로 확장 공사로 극장이 헐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위기 속에서 돌체의 더 단단해졌다. 그간 극장을 지지했던 인천 시민과 정치인, 예술인의 노력으로 미추홀구 문학동 현재의 위치에 작은극장 돌체로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총 4층 건물의 1층은 로비 및 매표소와 관객 대기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벽면 가득 돌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층 공연장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소극장 돌체 개관 당시 현판도 걸려 있다.

“공연장 운영은 계속 자비를 털어서 하는 수준이었어요. 내 주머니 털어서 공연을 올렸던 거죠. 돌이켜 보면 정말 기적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비록 수익은 되지 않더라도 제 모토는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동심을 찾아주는 거였거든요.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주제 하나만 있어도 한 가정의 온기가 정말 따뜻해지잖아요. 내가 살고있는 이 도시의 온기를 예술로서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연합니다”

우직하게 40여년을 이어왔지만, 작은극장 돌체는 이제 역사를 뒤로 하고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였다. 수탁기관인 극단 마임과 인천 미추홀구는 3년 기간으로 위탁 계약을 연장해왔는데, 미추홀구가 지난 2022년 말 위탁 종료를 선언하면서다. 극단 마임은 위탁 계약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구와 민간 극단의 위탁 계약 종료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사안이다. 작은극장 돌체와 극단 마임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극단 마임이 시설 운영을 못하면 작은극장 돌체의 정체성도 사라진다. 작은극장 돌체라는 이름에 대한 권리도 극단 마임에 있을뿐더러, 극단 마임이 이 공간을 운영하지 않으면 돌체라는 이름도 사용할 수 없다.

두 기관은 결국 법적 분쟁으로 맞서다가 최근 1심 결과들이 나왔고 다시 항소하는 등으로 진행되고 있어 최종 결론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과정에서 작은극장 돌체라는 이 독보적인 공연예술 공간으로써의 역할마저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곳의 가장 가치가 높은 시민연극이나 마임축제와 같은 콘텐츠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진 못했지만, 적어도 시민과 함께 공연하던 그때가 극단에겐 따뜻한 '봄'이었다.

“우리 극장은 시민과 함께 일궈온 극장이에요. 얼마 전에는 한 시민 분이 쌈짓돈을 들고 오셔서 ‘이런 극장은 절대 문을 닫으면 안 된다’며 건네더라고요. 힘든 건 사실입니다. 내가 소중히 생각하던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봐야하니까요. 사실 좋은 콘텐츠 하나로 운영되던 공연장인데, 미추홀구와 분쟁이 시작된 후에 공연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관객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죠.”

과거 만큼은 아니지만,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극단은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극장에 남아 지키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는 그저 “살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이후 극장 앞에는 구에서 보내온 시정통보 공문이 붙는 등 그들을 더욱 압박해 왔다. 사실상 행적적인 관점에서 볼 땐 이미 승부는 정해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마지막까지 공연을 올리는 것 뿐이었다.

“얼마 전, 학전소극장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학전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건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공간을 지켜왔던 ‘사람’에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요. 작은극장 돌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간을 쓰지 못하게 될 수 있지만 작은극장 돌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지켜온 극단 마임은 여전히 남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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