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기업 단체급식 외부 개방 3년… 여전히 ‘그들만의 잔치’

김혜원,황민혁 2024. 4. 1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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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간 나눠갖기·친족 몰아주기 등
구내식당 위탁운영 사업 독식 여전
서울 중구청 中企 일감 LIG측에 넘겨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이 계열사와 친족이 독식하던 단체급식 시장을 외부에 개방하겠다고 선언한 지 만 3년이 됐다. 그러나 개방 취지와 달리 대기업 구내식당 위탁운영 사업권의 대다수가 다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돌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에는 여전히 높은 벽이 존재했다. 일부 관공서에서는 오히려 중소기업 사업권을 대기업 계열사가 가져가는 일까지 발생했다.

17일 국민일보가 공정거래위원회 주관으로 지난 2021년 4월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가졌던 8개 대기업집단(삼성·현대자동차·LG·HD현대중공업·신세계·CJ·LS·현대백화점)이 당시 밝힌 계획안을 토대로 개방 실적을 조사한 결과 단체급식 일감 나누기는 ‘용두사미’에 그쳤다. 특히 범LG·현대가에서는 대기업 간 돌려막기나 친족 몰아주기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계열사 간 손바뀜이 뚜렷했고, 단체급식 시장 점유율 10위권 내 중견기업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기존의 삼성웰스토리 물량을 CJ프레시웨이나 아워홈, 신세계푸드, 풀무원푸드앤컬처, 본푸드서비스 등이 나눠 갖는 식이다.

LG는 2021년 선포식 당시 그룹 단체급식 일감을 2022년부터 전면 개방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곳이다. 소규모 지방 사업장은 중소·중견기업을 먼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아워홈과 풀무원푸드 등 대기업 계열사와 중견기업 위주로 계약을 맺고 있다. LG화학 김천공장만 미주당이라는 중소기업이 운영 중이다.

LS는 8개 기업 가운데 성적표가 가장 초라하다. 기존 계약이 끝나는 사업장부터 경쟁 입찰을 도입하고 계열사에 일감 개방을 독려하겠다는 선언은 구호에 그쳤다. 그룹 전 사업장을 통틀어 중소 위탁업체는 없다. LSMnM에 CJ프레시웨이가, LS미래원에는 범LG가인 LIG그룹의 단체급식 계열사 호박패밀리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친족 기업인 아워홈이 전담한다. 아워홈은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3남인 고 구자학 회장이 설립한 회사로 그동안 LS의 일감을 수의 계약 형태로 오랜 기간 받아왔다.

현대차·HD현대중공업·현대백화점 등 범현대가는 일부 중소·중견기업에 일감을 나눴지만 지난 3년의 기간에도 현대그린푸드 독식 비중을 줄이지 못했다. 현대차 측은 “경쟁 입찰을 진행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운영 역량이 부족해 선정이 쉽지 않다”면서 “향후 입찰 시에도 중견기업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CJ는 공개 입찰이 가능한 사업장의 절반(20개) 물량을 개방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15곳을 그룹 계열사인 CJ프레시웨이가 수주했고 다른 4곳은 삼성웰스토리가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1곳에 그쳤다.

가장 적극적으로 일감을 개방한 곳은 신세계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 등 150여개 사업장의 단체급식을 중소·중견기업에 모두 개방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계획한 최소 2개 식당 개방 약속은 지켰다. 중소기업 아이비푸드가 구미 사업장, 현송이 수원 사업장을 맡고 있다. 브라운F&B도 수원과 서울 사업장 단체급식을 제공 중이다. 하지만 다른 사업장은 신세계푸드, CJ프레시웨이, 아워홈 등 대기업 계열사와 동원홈푸드 등 규모가 큰 중견기업에 돌아갔다. 에버랜드와 골프장 등 일부 구내식당은 삼성물산과 삼성웰스토리가 수의 계약을 맺고 운영 중이다.

대기업 일감 개방의 반사이익을 얻은 중견기업들 실적은 고공비행했다. CJ프레시웨이 푸드서비스사업부 매출은 2019년 4679억원에서 지난해 7161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단체급식 6위권인 중견기업 풀무원푸드는 2019년 단체급식 매출이 2179억원이었는데 지난해 6809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이 맡고 있던 구내식당 사업권이 범LG가인 LIG그룹에 넘어간 사례가 나왔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 3월부터 구내식당 및 커피전문점 위탁운영 사업자로 LIG그룹 계열의 호박패밀리를 선정했다. 기존에는 중소기업이 9년 동안 단체급식을 제공했던 곳이다.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중 직영을 제외하고 대기업 계열사가 단체급식을 맡은 곳은 성동구청과 중구청 두 곳뿐이다. 호박패밀리는 단체급식 경험이 없으며 관공서 입찰에도 처음 참여했다.

단체급식 경험이 전무한 호박패밀리가 서울 중구청이 위탁운영 사업의 조건으로 제시한 600명 이상 집단급식 운영 실적 등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LIG그룹 단체급식사업부인 휴세코와 지난 연말 합병한 덕분이다. 호박패밀리는 휴세코의 사업 이력을 기반으로 단숨에 단체급식 시장에 진입했고 입찰까지 따냈다. 이번 입찰에는 중소기업 4곳과 중견기업 1곳, 대기업 계열사 1곳 등 총 6곳이 뛰어들었다. 호박패밀리를 뺀 나머지 5개 회사는 관공서 입찰에 자주 참여했던 곳이다. 3개 업체는 현재 다른 구청에서도 단체급식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단체급식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위주로 형성돼 있는 연간 10억원 안팎의 작은 시장에까지 대기업이 침투한 경우”라며 “정부의 단체급식 일감 개방 기조에 역행한다”고 했다. 김길성 서울 중구청장이 2009년 2월부터 8월까지 LIG그룹의 또 다른 계열인 LIG넥스원 임원으로 재직한 이력이 있는 점은 특정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관련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중구청 측은 “입찰 공고를 내고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김 구청장의 이력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혜원 황민혁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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