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20m 펜스 넘어 자동차에 '퍽'…73억 '파울볼 야구장' 정체 [르포]

김윤호 2024. 4. 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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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야구장. 타자석 위치가 애매해 파울볼이 야구장 밖으로 쉽게 넘어간다. 김윤호 기자
울산 중구야구장. 타자석 위치가 애매해 파울볼이 야구장 밖으로 쉽게 넘어간다. 김윤호 기자

전국체전과 고교대회 야구장으로 쓰이는 73억 원짜리 울산의 한 야구장이 '파울볼' 야구장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 타자가 친 파울볼이 경기장 밖으로 수시로 넘어가 주차한 차를 파손하는가 하면 인근 4차선 도로까지 공이 날아가고 있다.


파울볼 야구장 오명…어떤 곳?


지난 10일 찾은 울산시 중구 성안동 울산 중구야구장(2만281㎡). 2022년 4월 울산 중구가 지어 개장한 공인 규격 야구장이다. 이날 야구장엔 전국 고교야구대회가 한창이었다.

야구장 입구에는 ‘파울볼 주의’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야구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홈플레이트가 야구장 주차장과 높이 20m 그물 안전펜스를 사이에 두고 바짝 붙어있었다. 4차선 도로와도 2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타자가 친 파울볼이 그물 안전펜스만 넘어가면 곧바로 주차장이나 도로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야구장 주차장엔 ‘차량 파손이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부산 사직야구장 등 대형 야구장은 타자석이 주차장이나 도로와 상당히 떨어져 있다. 타자석보다 더 높은 위치에 관중석이 설치돼 있다. 관중석 뒤로 다시 그물 안전펜스가 있어 파울볼을 막는다.

울산 중구야구장 전경. 사진 울산중구도시관리공단 홈페이지 캡쳐

울산 중구의회와 본지 취재 등을 종합하면 해당 야구장에서 2022년 개장 후 지난해 12월까지 고교 야구대회 등 377차례 경기가 열렸다. 이때마다 파울볼이 타자석 주변 그물 안전펜스를 넘었다. 자동차 파손 등 사고도 발생했다. 야구장 관계자는 "타자석이 도로와 가까워 생긴 일"이라며 "자동차 파손에 배상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5m→20m 그물 안전펜스 무용지물


울산 중구야구장. 사진 울산 중구도시관리공단 홈페이지 캡쳐
파울볼 사고가 잇따르자, 울산 중구는 지난해 12월 2억7000만원을 새로 들여 타자석 주변 안전펜스를 기존 15m에서 20m로 높였다. 그러나 파울볼은 여전히 야구장 밖으로 날아간다.

지난 1월 한 고등학교 야구부가 전지훈련을 했는데, 파울볼 20여개가 주차장과 4차선 도로로 넘어갔다. 한 사회인 야구팀이 야구장을 빌려 쓴 2월에도 여러 차례 주차장과 도로로 날아갔다. 중구 관계자는 "지난 4일부터 고교 야구대회가 11일까지 이어졌는데, 야구장 밖으로 날아간 공만 154개다"고 귀띔했다.

울산 중구야구장. 타자석 위치가 애매해 파울볼이 야구장 밖으로 쉽게 넘어간다. 김윤호 기자

중구야구장은 홈플레이트에서 좌우 파울 기둥까지 99m, 중앙 안전펜스까지 122m 거리다. 야간 경기를 위한 조명탑도 6개가 설치돼 있다. 고교 야구대회, 전국체전 같은 전국 대회를 치를 수 있는 공인 규격이다.

하지만 울산 중구는 생활체육인 등 사회인 야구단이 주로 쓰는 야구장 정도로 사용하려 했다. 타자석 주변에 15m 높이 그물 안전펜스를 설치하면 파울볼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야구장 개장 후 전국체전 등 엘리트 선수 경기가 잇달아 열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파울볼 방지책 없나?


문제는 파울볼 방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구야구장은 4차선 도로와 황방산 입구 쪽에 있다. 주차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타자석을 반대편으로 수정해 다시 설치하는 게 어렵다. 건축허가 등 설계 자체를 새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펜스를 더 높이는 것도 힘들다. 그물을 지탱하는 안전펜스 기둥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더 굵고, 더 큰 기둥을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공사 규모와 금액이 커진다. 울산공항과 인접해 안전펜스 높이에 대한 고도제한도 걸림돌이다.

울산 중구야구장. 타자석 위치가 애매해 파울볼이 야구장 밖으로 쉽게 넘어간다. 김윤호 기자

이에 울산 중구는 타자석 위쪽 일정 부분을 그물로 덮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야구장 생김새가 공인 규격과 달라지기 때문에 전국체전이나 고교 야구대회 같은 대회를 열지 못한다. 울산 중구의회 문기호 의원은 "중구가 경기장을 만들면서 제대로 살피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예산만 낭비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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