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백서 ②] 원희룡, 계양을 소진은 전략적 미스였을까

고수정 2024. 4.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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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선거력 갖춘 보수 진영의 몇 안되는 '자원'인데
패배 가능성 높았던 험지 출마…의미 있는 결과물 못 내
"양천갑 등서 원내 진입해 역할 모색했더라면" 아쉬움
원희룡 국민의힘 인천 계양을 후보가 8일 오전 인천 계양구 까치말사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처음부터 잘못됐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잘 아는 인사들 사이에서 그의 인천 계양을 출마를 두고 공공연하게 나온 말이다. 인지도가 높고 '선거력'이 뛰어난 보수 진영의 몇 안 되는 '자원'인 원 전 장관이 '험지'에서 소진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사실 계양을 선거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이 지역은 최근 20년 사이에 치러진 총 8번의 국회의원 선거(재보궐선거 2회 포함)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7차례 승리한 '민주당 철옹성'이다. 17·18·20·21대 총선에서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연승하며 '계양을 불패신화'를 써내려갔고, 송 전 대표의 인천시장 출마로 치러진 2010년 재보선에서만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이상권 후보가 당선됐다.

더욱이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지역 현역이라는 점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었다. 다수의 계양을 여론조사가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했다. 원 전 장관과 이 대표는 접전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원 전 장관이 우세한 것으로 나온 결과는 아쉽게도 없었다. 원 전 장관도, 원 후보 측도 "어려운 선거"라고 말한 배경이다.

물론 원 전 장관의 '험지 도전'에 기대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보수 진영 대권주자 중 한 명인 원 전 장관이 이 대표를 상대로 승부수를 걸었다는 점에서 그간의 선거와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이번에는 계양을 분위기가 좀 좋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기자에게 수차례 할 정도였다.

원 전 장관은 '무패 신화'로 유명하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 5번의 선거를 치렀는데 모두 과반 이상의 득표로 상대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도, 보수 텃밭인 PK(부산·울산·경남)에서조차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할 정도로 보수 세력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던 2018년 지방선거 때도 원 전 장관은 험난한 선거판에서 탁월한 생존 능력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원 전 장관에게 이번 계양을 선거는 그야말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었다. 이 대표를 상대로 이긴다면 단숨에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주자로 등극할 수 있는 반면 진다면 무패 신화가 깨지는 건 물론이고 정치적 타격까지 입을 거란 우려가 있었다. 원 전 장관은 대권 도전 등 향후 정치 행보를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취재진에 "다른 지역 선거 유세 현장을 다녀보면, 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등 중앙당의 지원만 바라보는데 원 전 장관은 그렇지 않다"라며 "확실히 원 전 장관은 자신의 선거를 이끌어가는 '개인기'가 탁월하다. 정말 다르다"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후보, 원희룡 국민의힘 인천 계양을 후보가 1일 오후 경기 부천시 OBS 경인TV에서 진행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인천 계양을 후보자 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실제 원 전 장관은 지역 발전에 목말라있는 민심을 확인하고 깊게 파고들었다. 교통 인프라 구축은 물론 △노후주택 재개발·재건축 △사교육비 경감 시범지구 추진 △대규모 복합 문화공간 조성 △서울·인천·경기 무제한 교통정액권 '수도권 원패스' 등 자신이 내세운 '지역 일꾼론'에 걸맞은 공약들을 쏟아냈다.

그의 진가는 TV토론회에서 발휘됐다. 꼼꼼하고 세심한 원 전 장관은 이 지역에서 뛴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동별 특성부터 숙원 사항, 심지어 아파트명까지 계양을 지역 전체를 꿰뚫었다. 반면 이 대표는 아파트명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주민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명확한 언급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말로 TV토론은 '원희룡의 시간'이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여느 후보들과 달랐다. 원 전 장관의 유세 차량에서는 그 흔한 '선거송'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선거송을 틀지 않았으니 춤을 추는 선거운동원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원희룡입니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험으로 꼭 계양 발전을 이루겠습니다' '정직하게 하겠습니다' '꼭 도와주십시오. 10배로 갚겠습니다' 등의 호소만 있었다. 원 전 장관 측은 "장관님이 선거는 주민을 설득하는 것이지, 시끄럽게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공식선거운동 마지막날에는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을 정도로 소위 말해 영혼까지 갈아 넣었지만, 원 전 장관은 민주당 지지 성향이 우세한 선거구 특성, 전체 선거판을 지배한 '정권 심판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일각에선 원 전 장관이 이 대표를 상대로 '미니 대선급' 승부를 펼친 만큼 정치적 체급을 높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득표율과 국민의힘의 총선 전체 결과를 놓고 보면 원 전 장관이 계양을에서 소진된 건 아쉽다는 관측이 상당하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과 합쳐 108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반면 민주당은 175석을 차지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집권여당이 이렇게 큰 격차로 야당에 패한 건 처음 있는 일로,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킨 수준이다.

전체 선거판이 집권여당이 '정권심판론'의 역풍 속에서 치르는 수세 국면임을 고려해서 원 전 장관이 내리 3선을 지낸 서울 양천갑에 출마했다면, 국민의힘 입장에서 '소중한' 지역구 1석을 더 확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선거를 이끄는 능력이 탁월한 원 전 장관이 원내에 진입했다면 중진으로서도, 대권주자로서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따른다. 원내 진입에 실패한 그는 여권 재편 과정에서 정치적 역할을 새롭게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원희룡 국민의힘 인천 계양을 후보가 7일 오후 인천 계양구 계양서부천벚꽃길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런 상황에서 원 전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 비서실장에 유력하게 검토되는 모양새다. 여소야대 지형에서 정부의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해 정무적 감각이 풍부한 정치인을 기용해 국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주 중 인선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역대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가 그 이력을 바탕으로 더 큰 뜻을 이룬 경우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제외하곤 전무하다. 그나마도 문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비서실장 경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로 뜻하지 않게 정치적 상주 역할을 하게 된 탓이 크다. 원 전 장관의 희생과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면, 향후 여권에서 더 이상 그를 '소진'하는 방향으로는 활용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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