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베진, 오타이산… ‘일본 약이 더 좋다’는 막연한 생각이 위험한 이유

이금숙 기자 2024. 4. 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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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많이 찾는 일본 약 ‘카베진’과 ‘오타이산’
60대 여성 A씨는 딸이 일본에서 천연 성분의 소화제 ‘오타이산’을 사다 줘 복용한 이후 다른 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약이 떨어질 때가 되면 오타이산을 추가로 사기 위해 서울 남대문시장을 찾는다. 가끔 딸에게 직구 사이트에서 ‘카베진’ ‘파브론골드A’ 등의 일본 약 구입을 추가로 부탁하기도 한다. A씨 처럼 해외 약, 특히 일본 약이 효과가 좋다는 이유로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약을 선호하는 데에 과연 문제는 없을까?

◇일본 약은 좋다는 막연한 생각은 문제
일본 약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크게 ▲필요한 약의 국내 부재 ▲저렴한 가격 ▲사대주의 사고방식 등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약이 국내에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가격 때문에 위험성을 무시하거나 ‘일본 약이 못해도 한국 약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은 위험하다. 특히 우리나라 약이 일본 약보다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엄격한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대한약사회 김성철 약사는 “한국 식약처의 GMP는 미국 FDA만큼 엄격하다”며 “일본 약이 무조건 한국 약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라고 말했다.

◇일본 약 장기간 직구, 법에도 저촉
일본 의약품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나뉜다.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살 수 없다. 일반의약품은 다시 한번 ▲제1류 ▲제2류 ▲제3류 약품으로 나뉜다. 제1류 약품은 약사만 판매할 수 있으며, 제2류와 제3류 약품은 약국이 아니더라도 일반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감기약이나 소화제는 대부분 일반의약품, 그중에서도 제2류 약품에 속한다. 때문에 누구나 잡화점이나 드럭스토어에 방문만 하면 편하게 해당 약품들을 살 수 있으며, 온라인 판매도 허용된다.

하지만 이는 일본 내에서만 가능할 뿐,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일본에서 일반의약품에 속하더라도, ‘카베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 약은 국내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약의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적절한 복용 지도 없이 오·남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식약처의 조치다. 그래서 일본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더라도, 국내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될 경우 이를 구매·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일례로 다이쇼제약의 감기약 ‘파브론골드A’의 경우 복용법을 지키면 안전하지만, 장기·과다 복용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디히드로코데인’이 소량 함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오·남용의 사전 차단을 위해 여러 일본 약품을 전문의약품으로 묶어 놓고 의사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에는 해외 약품의 반입이 허가되는 예외 조건이 있다. ‘수입통관 사무처리에 관한 고시’ 제67조에 따르면, 자가 사용을 목적으로 할 경우 해외 약을 최대 6병까지 반입할 수 있다. 만약 6병 이상일 경우 의약품 용법상 3개월 복용량까지 허용한다. 김성철 약사는 “우리나라 법에는 개인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소량의 약은 직구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며 “일본 약 구매 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이트들은 이 규정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더라도, 국내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지정될 경우 이를 구매·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식약처에서 적발한 일본 약 직구 사이트. /사진=헬스조선DB
◇부작용 생겨도 구제 어려울 수도
또 약품 복용 시 주의 사항을 간과하는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 소화제 ‘오타이산’의 경우 투석요법을 받는 사람은 절대 복용해선 안 되며, 신장질환이나 갑상선 기능장애가 있다면 복용 전 의사나 약사와 상의해야 한다. 또 ▲발진 ▲발적 ▲피부 가려움증 등이 나타나면 즉시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김성철 약사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약의 부작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 피로회복제만 해도 임산부나 당뇨병, 통풍 환자들은 복용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또 약으로 인해 부작용이 생길 경우 식약처 산하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운영하는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를 통해 구제가 가능하지만, 일본 약으로 인한 부작용은 구제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약사들은 일본 약 직구를 권장하지 않는다.

◇부형제·내성 문제 가능성… 체질에 맞는 약 복용해야
한편 일본 약을 복용하는 것이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장기 복용할 경우 서서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약의 주성분이 같더라도 부형제(약품에 적절한 형태를 주기 위해 더해지는 물질) 성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철 약사는 “약의 주성분은 같더라도, 부형제가 한국 기준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도 체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식약처를 믿고 한국 사람에 맞게 제조된 약을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확률은 높지 않지만, 약물 내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감기약을 예로 들 수 있다. 무카페인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 감기약에는 소량이라도 무수카페인이 들어간다. 각성 효과를 통해 약효를 높이고 졸음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여러 감기약은 액상 약제가 아닌 이상 카페인 함량이 20mg을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감기약도 여러 번 복용하면 카페인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약효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감기약은 카페인이 국내 감기약보다 카페인이 조금 더 들어 있다. 예를 들어 파브론골드A를 용법에 맞게 복용할 경우, 1회 복용할 때마다 무수카페인 25mg을 섭취하게 된다. 때문에 같은 감기약이더라도 각성 효과의 정도가 달라 약 효과가 훨씬 좋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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