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년 최장수 브랜드…자자손손 ‘부채표’ 명성 [장수 브랜드의 비밀]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4. 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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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화약품 활명수

매경이코노미가 ‘장수 브랜드의 비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국내 브랜드들의 장수 비법과 생존 전략을 하나하나 파헤칩니다. 치열한 경쟁과 세월의 변화를 견뎌낸 브랜드의 저력, 그리고 그들의 남모를 고민까지 생생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를 아시는지. 바로 동화약품이 내놓은 ‘까스활명수’다. 역사만 해도 127년이 넘는다. 국내 브랜드 중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활명수’가 유일하다. 단순히 역사만 오래되지 않았다. 인기가 여전하다. 현재까지도 동화약품의 최고 효자 상품 중 하나다. 의학이 발달하고, 각종 신약이 쏟아지는 와중에 ‘활명수’ 인기가 굳건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화약품 활명수는 127년의 긴 역사를 자랑한다. 오래됐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79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동화약품 제공)
1897년 조선 말기 첫 등장

2024년 현재도 인기 여전

활명수는 1897년 조선 말기에 처음 등장했다.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한 것으로 시작됐다. 민병호 선생은 이후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활명수가 최초로 개발된 시기에는 민중들이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양약 성분이 가미된 소화제인 활명수는 당시 많은 민중의 생명을 구했다. 이름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살릴 활(活), 생명 명(命), 물 수(水))’이라고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활명수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도 잘나갔다. 문제는 활명수가 워낙 잘나가는 탓에 ‘유사 상품’이 쏟아졌다는 것. 가짜 활명수가 범람하자 동화약품은 브랜드 차별화를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활명수를 상장하는 로고 ‘부채표’다. 동화약품은 1910년 ‘부채표’와 ‘활명수’의 상표 등록을 진행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상표 등록 사례다. 부채표 등장과 함께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했다. 덕분에 다른 유사 상품을 누른 채 소화액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37년에는 해외로 진출했다. 만주 시장에 나가기 위해 활명수를 특허 출원했다. 그렇게 해외에 상표를 등록한 최초의 국내 제품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해방 이후 위기가 찾아왔다. 소련의 남하로 만주 지역 생산시설을 모두 잃었다. 국가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북한 거래처와의 거래도 끊겼다. 당시 만주 지역은 활명수 상품의 주요 생산 거점이었고, 북한은 활명수 브랜드 최대 판매 시장이었다. 생산시설과 소비 시장이 한 번에 사라졌다. 설상가상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서울에 있던 생산시설까지 모두 파괴됐다.

동화약품은 근거지를 마산으로 옮기고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경상도와 전라도 남부 지역에서 판로를 확보하며 재기에 나섰다. 오랜 기간 각인된 ‘활명수’의 저력이 발휘된 시기였다. 사세를 빠르게 회복한 뒤 1955년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1967년 활명수는 변화를 시도한다. 탄산을 넣은 ‘까스활명수’를 내놓은 것.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하면서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삼성제약이 탄산을 넣어 청량감을 극도로 높인 ‘까스명수’를 선보였다. 소화제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동화약품 측도 ‘까스활명수’를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까스명수와의 치열한 대결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30년간 이어진 경쟁은 ‘까스활명수’의 승리로 끝이 났다. 1990년대 들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다. 활명수의 ‘정통성’을 강조한 광고 전략이 먹혀들었다. 액제 소화제 시장점유율 1위를 굳히며 격차를 벌렸다.

2020년대 들어서도 활명수 브랜드 인기는 여전하다. 활명수 브랜드의 액제 소화제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한다. 100년이 넘은 브랜드지만 여전히 동화약품의 주력 상품이다. 2023년 기준 활명수 브랜드 연간 매출액은 792억7000만원이다. 동화약품 전체 연간 매출의 22%를 활명수가 책임지고 있다.

100년 넘어 생존하는 비결

선점 효과, 피벗, 스토리텔링

127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시장점유율 1위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례는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기간 고꾸라지지 않고 버틴 활명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제약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선점 전략이다. 시장이나 기술 분야에 먼저 진입한 기업이나 브랜드가 후발 주자에 비해 얻는 경쟁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경영학에서 시장을 선점한 기업은 초기 시장 확보, 브랜드 인지도 증진, 고객 충성도 구축 등의 이점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활명수 브랜드는 해당 이점을 제대로 챙긴 사례다. 1910년대는 ‘부채표’라는 로고를 만들어 ‘오리지널 상품’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후발 주자인 다른 제품과의 차이점을 뒀다. 1990년대는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로 진정한 정통 제품임을 강조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해당 광고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활명수와 부채표는 곧 오리지널’이라는 인식을 높일 수 있었다. 시대를 넘어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활명수의 대표 카피로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유연한 피벗 전략이다. 피벗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 상황에 맞게 빠르게 수정, 새로운 모델로 갈아타는 방법을 말한다. 시장을 먼저 선점하더라도,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활명수는 소비 시장이 급변할 때마다 변화를 주며 살아남았다. 1960년대, 탄산을 넣은 소화제가 대세로 떠오르자 바로 ‘까스활명수’를 내놓은 게 대표적인 예다. 이후에도 꾸준히 변화를 시도했다. 의약외품 시장 성장에 맞춰 2012년 편의점 상비약 ‘까스활(活)’을 내놨다. 기존 활명수는 일반의약품이라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다른 제품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편의점에서도 구매 가능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어 2016년 어린이가 먹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오자 ‘꼬마활명수’를 내놨다. 복용 편의성을 높여달라는 요구에 맞춰 2020년 9월 스틱형 파우치 소화제 ‘활명수-유’를 선보였다. 동화약품 측은 “활명수 브랜드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꾸준히 진화를 추구해왔다”고 밝혔다.

셋째,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오래된 브랜드에는 늘 ‘고루하다’는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동화약품은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해왔다. 신문, TV, 유튜브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광고를 낸다. 최근에는 유행에 맞춰 팝업스토어, SNS 채널 운영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을 지속해서 펼치는 중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해외 진출이 과제

잘나가는 활명수지만, 고민도 상당하다. 바로 부진한 해외 매출이다. 일부 국가에 진출해 있지만 전체 매출에 비하면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2023년 활명수류 연간 매출액 792억7000만원 중 수출 금액은 12억4300만원에 그친다. 780억원가량이 국내 매출이다. 해외 매출 비중이 2%도 넘기지 못하는 셈이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비단 활명수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동화약품 회사 자체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화약품은 지난해 베트남 약국 체인 ‘중선파마’를 391억원에 인수했다. 동남아 제약·뷰티 시장을 공략해 수출 비중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동화약품은 활명수를 비롯해 ‘잇치(잇몸약)’ ‘판콜(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의 베트남 시장 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4호 (2024.04.10~2024.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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