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의 민중 영웅의 흔적, 이렇게 남았다
[완도신문 정지승]
학계의 여러 논문과 옛 문헌을 검토한 일부학자들이 송징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기 시작했지만, 장보고성역화 사업이 확장되어 그는 역사 속으로 묻 혀버린 인물이 되었다. 청해진은 지난 1984년 사적 제 80호로 지정됐고, 그에 따라 지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7차례 학술조사가 이뤄졌다.
대략 3만8000평에 가까운 섬 곳곳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국가적인 차원의 제사를 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흔적들까지 발견된 상태다. 청해진 장보고를 연구한 학계의 발표가 그렇다는 얘기다.
근래 완도군에서는 장보고 유적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법화사지 옛터를 지목하여 발굴 조사를 시행했다. 법 화사지는 청해진의 장보고 대사가 가는 곳마다 불교를 전승한 기념비적인 유적이 확실시 된 상황이었다. 발굴 조사 결과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유적이 나왔다.
7기의 건물지와 5개소의 계단지, 석축, 유구, 수구 등이 확인되었고, 출토유물은 10~11세기대로 추정된 해 무리굽 청자와 17세기대로 여겨지는 백자대접과 옹기 편이 출토됐다. 유물은 12~13세기대의 청자가 주를 이뤘다. 특히, 진도의 용장산성에서 출토된 유사한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관련이 깊은 유적이 확실시 된 것. 삼별초 유적 발견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삼별초의 북진계획
10여년 전 인근의 해남군에서도 삼별초 관련 유적이 나왔다. 옛 성터 복원을 준비하던 해남군은 읍내의 금강산 산성을 조사 했는데, 그곳에서도 진도의 용장산성에서 나온 비슷한 유물이 발견됐고, 담양군의 금성산성에서도 같은 유적 이 발견됐다. 삼별초와 관련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학계에서 추측만 해 오던 것인데, 삼별초가 진도뿐만 아니라 인근의 완도와 남해까지 세력을 뻗어 북진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모두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삼별초는 몽골 침략기에 그에 대항하던 고려의 무장 세력이다. 원래는 하나의 단일한 단체가 아니었다. 뒤에 삼별초의 난을 일으킨다. 다른 반란군과는 달리 원래는 비정규군이었다가 정규군으로 재편된 군대였다. 진도에서 왕국을 형성한 후, 몽골군의 침략을 받아 제주도로 옮겨 체제를 유지하다가 궤멸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나, 일부 세력이 류큐 왕국인 오키나와 지역으로 향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1271년 5월 몽골에 의해 진압군이 조직되어 좌군, 중 군, 우군의 세 방향으로 나눠서 진도를 공격해왔다. 삼 별초는 진도의 관문이었던 벽파진에서 중군을 막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삼별초가 중군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는 데 주력하는 동안, 그 틈을 타서 진압군의 좌군과 우군이 배후와 측면에서 기습 공격했고, 성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삼별초를 지휘하던 장수 배중손과 국왕으로 추대한 왕온이 살해되고 혼란에 빠진 삼별초는 흩어져 각기 피신하였다. 살아남은 삼별초 병사들은 완도의 장도에 주둔한 송 징으로 여긴 김통정의 지휘 아래 혼란을 수습하고 제주도로 후퇴한다.
그 후 제주도에 상당한 규모의 외성을 건립하는 등 여몽 연합군에 항거하며 일진일퇴가 거듭됐다. 그러던 중 1273년 4월, 진압군 1만여 명이 제주도에 상륙하고, 삼별초는 힘없이 무너졌다. 김통정은 산 속에 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4년에 걸친 삼별초의 항 전은 막을 내렸다. 삼별초와 관련한 인물로 추정되는 송징장군. 조선시 대 문인으로 이름을 알린 석천 임억령이 가리포진을 순 회하며, 그에 대한 장문의 글 송대장군가를 남긴 것으로 일부 학계에서는 그 인물을 송징으로 유추한다.
조선 명종 때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 임억 령을 위해 지어준 식영정은 담양군의 명승지이다. 석천 이 이름 지은 식영정은 이곳에서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과 식영정 20영 등 한시와 가사, 단가를 남겨 가사문학의 산실이 되었을 정도로 한국 고전문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런 인물이 남긴, 당시 가리포진이었던 완도를 기행하며 써 놓은 그의 시문 속의 송대장군, 그는 정말로 송징이었을까? 세상을 고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담은 서사문학의 절창, 조선왕조 500년의 시경이 지난 2020년 다시 태어났다.
풍류와 유람의 문학, 서정시가 주류였던 우리 한시 전 통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한 이조시대 서사시에서는 500 년 조선사회의 민중들의 이야기가 리얼하다. 여기에서 송대장군가는 민중영웅의 형상을 부각시 켜서 찬미한 노래다. 내용을 읽어보면 가리포진의 산천이 수려함을 들어 영웅의 탄생을 예언한 다음, 걸출한 영웅의 실체를 드러낸다. 영웅의 비장한 최후와 그 영혼이 민중에 의해 신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소개 하며, 고루한 유생들이 영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음사(淫祠)로 취급해서 훼철한 일을 지적하고 다시 송대장군을 추모한다.
"도탄에 빠진 우리 백성 고통을 민망히 여겨 일부러 장군을 내려 보내 한번 청소하도록 한 것"이라며, 그 영웅을 찬미하는 내용이 의미 깊다. 문화는 한 시대를 넘어 장구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유한 우리의 정체성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 하고 어느 한곳에 중점을 두어 객관성 없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총선 결과에 충격 받은 정부부처... "다가올 가을이 두렵다"
- '4.10 대파혁명'의 본질... 이제 김건희 여사 차례다
-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 윤 대통령에게 희망이 있을까
- 12석 얻은 다음날 대검찰청에서 "김건희 소환" 외친 조국
- "국정쇄신" 윤 대통령이 가장 먼저 칼 대야 할 곳
- [이충재 칼럼] 윤석열-한동훈의 정치는 틀렸다
- "김태호 돕고 싶어도 누구 미워 못하겠다 해... 정권심판론 무서웠다"
- 나라살림 적자 87조?... "실제는 138조, 꼼수로 통계 착시"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윤석열차
- "왜 김건희 보도까지 심의하나?" 질의에 선방위 답변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