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켄 프라이스

이경진 2024. 4. 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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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이 강조된 세라믹의 전통을 전복시킨 켄 프라이스의 세라믹 조각.
‘Inside Out’(2002).

KEN PRICE 켄 프라이스

켄 프라이스의 첫 개인전은 그가 25세였던 1960년 LA의 페루스 갤러리(Ferus Gallery)에서 열렸다. 비평가들은 첫눈에 프라이스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다.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프라이스는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세라믹 조각의 형태와 표면, 색상과 모양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키며 기능성이 강조된 세라믹의 전통을 전복시켰다.
‘Yellow Egg’(1963).
‘The Pair’(2009).
60~70년대에는 혁신적이고 때로는 기이한 형태를 통해 전통 도자기의 기능성을 뒤집는 작은 크기의 작품을 만들었고, 80~90년대에는 용기의 형태를 버리고, 유약을 아크릴 페인트로 대체했다. 구근 모양의 점토 형태를 층층이 쌓은 뒤 사포질로 독특하고 다양한 컬러 패턴을 완성하기도 했다. 2012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생의 말기에 훨씬 더 큰 규모로 작업을 이어갔다.
‘Pastel’(1995)
‘Vernon’(2009).
‘Siam’(1983)
추상적이고 만화적인 작품을 제작하면서 바이오모픽 아트, 네온 컬러, 날렵한 마감재를 적용한 그의 실험은 지질학과 전통 멕시코 도자기, 자연 속 곡선이나 틈에서 영감을 얻었다. 도자기에 광택을 내기보다 아크릴로 수많은 코팅을 시도한 다음, 각각의 조각을 사포로 갈아 얼룩진 색의 광택을 내도록 만든 표면도 그만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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