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간을 활용하는 취업 도전기

권민지 2024. 4. 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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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라는 말 뒤의 고충... 등원과 하원 사이 틈새시간 활용해 취업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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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지 기자]

 
 ▲ 최근 아이가 첫 기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시간이 생겼다
ⓒ 픽사베이
 
40개월의 가정보육을 끝내고 24년 3월부터 아이가 5세 반 유치원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내 시간이 생겼다. 난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아이를 재우고 몇 달간 고민을 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일까'를 수없이 뱉었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찍이 탄탄한 직장이 있는 워킹맘과 남편의 벌이가 충분해서 아내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전업주부들이 부럽다고 느낀 적도 잠시 있다.

하지만 부러우면 뭣하겠는가. 현실적으로 나는 탄탄한 직장을 바로 구할 수 없는 소위 '경단녀'이고, 가정주부가 되기에는 너무 불량주부다. 더욱이 마흔이 되어서 가장 후회한다는 것 중에 하나가 나를 위해서 도전해보지 못한 것들이라는데, 언젠가 나중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직장 없는 엄마에게 아이가 기관에서 돌아오기 전까지의 시간들을 잘 쓰기만 하면 나도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다고 믿는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기 2주 전, "엄마는 직업이 뭐예요?"하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지금은 OO 엄마야" 하고 얘기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되물었다. "OO는 엄마가 어떤 직업이면 좋겠어?" 아이의 답은 1초도 안 걸리고 바로 나왔다. "티처요!" 요즘 영어말하기에 재미 붙인 이 아이는 영어 단어를 자주 쓴다.

사실 예전에 아이에게 "엄마는 OO이를 낳기 전에는 학원에서 형, 누나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이었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당혹스럽게도 갑자기 울먹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나를 낳으면서 일을 못하게 된 거예요?"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에 당황스러웠다. 아이는 울먹이면서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요"라고 얘기했다. 감정선이 다양한 내 아이의 묘한 이 말에 나는 정말 더욱 선생님이라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날 바로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무작정 구인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 다행히도 학점은 괜찮았던 터라서 생각보다 연락이 계속 왔다. 하지만 나는 운동을 매일 해야 하고, 책을 쓰겠다고 뛰어들었으니 책을 쓸 시간도 필요하고, 5시에는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서 시간 맞춰서 아파트 정문에 서 있어야 하는 임무를 가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1시 30분에서 4시 30분까지의 아르바이트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에게 연락이 온 곳은 딱 그 시간 때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먼저 수학 학원에서 전화가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그 수학학원은 외곽에 위치해서 선생님의 모집이 쉽지 않다며 나의 지원을 아주 반가워했다. 차로는 20분 내외였으나 거리로 계산하면 꽤 멀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근무를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 근무시간 외에도 연장 근무가 가능한지 원장은 묻기도 하였으나 애초에 내 아이가 하원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할애해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구한 경우라서 부득이 퇴근시간만큼은 양해 부탁드린다고 당부드렸다.

하지만 단 3일째 되던 날 탈이 났다. 일을 하면서 학원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다 보니 퇴근시간의 알람을 듣지 못하고 계속 근무를 했던 것이다. 이곳은 한 학생이 질문을 하면 나는 아이가 이해될 때까지 함께 해결해 주어야 했고 이어서 다른 학생도 질문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을 해주어야 했다.

질문이 길어지면 시간 안에 딱 끊고 나오기가 어려웠다. 평소에도 맺고 끊음이 익숙하지 않은데 이 아이들과도 그랬다. 나의 불찰로 시간을 늦게 확인했다. 퇴근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는 당혹스러움에 마음이 바빠졌다. 유치원 하원 시간을 기다리며 엄마를 보러 간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향해 오고 있을 내 아이가 걱정되었다.

시간을 보니 분명 늦을 것 같아서 유치원으로 전화를 했다. 유치원 선생님의 부드럽고 느긋한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나의 바빠진 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그날 조금 늦게 집에 돌아온 저녁 무렵부터 나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앞으로도 늦는 날이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다른 직장이 있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하원 시간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고 싶었다.

다른 엄마들은 다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날부터 아이의 마중을 나오는 엄마들을 유심히 보았다. 대뜸 그분들에게 다가가 '혹시 일을 하고 계신가요? 하원시간을 맞추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하고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그저 내 생각에는 그분들이 프리랜서이거나 아예 일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조부모의 도움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나오시는 경우로 추려졌다.

많은 고민 끝에 거리가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수학학원에는 감사하는 말을 전달하며 죄송한 마음에 급여는 받지 않고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다시 일을 구해야 했다. 이번에는 아주 신중하게 고민한 후에 현재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 문을 두드렸다. 여기는 근무시간을 명백하게 알 수 있도록 종이를 기계에 넣으면 기록되는 시스템이었다. 거리, 시간, 주차 등 모든 것이 나에게 충족되는 만족스러운 직장이다.

다시 일을 시작하다 보니 금전적인 계획을 생각해 보게 된다. 결혼 전이었다면 나의 엄마, 아이들의 할머니와 함께 두 번째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짰을 텐데, 난 이제 어쩔 수 없는 내리사랑을 하는 엄마가 되었나 보다.

뭔가를 생각해도 그저 내 아이와 함께 할 것들만 잔뜩 머리에 그리게 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엄마'라는 직업과 함께, 동시에 내 이름으로 살고 싶은 '나'의 인생이 함께 출발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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