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법 PDF 판매했습니다”… 출판사, 교재 불법 유통 단속

천양우 2024. 4. 1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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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거래 적발된 학생들, 사과문 게시
출판사 “작년 47명 단속, 무관용 원칙”
대학 교재를 불법 PDF 파일로 거래하다 적발된 학생이 작성한 게시글. A대학 에브리타임 캡처


“본인 김XX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맨큐의 경제학 9판 번역서의 불법 PDF를 판매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적발되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 되었습니다.”

3월 개강과 함께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위와 같은 내용의 게시글이 수차례 올라왔다. 요지는 “본인이 불법 PDF 교재를 거래하다 출판업체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으며, 합의에 따라 교재를 불법으로 사고팔지 말라는 경고문을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작성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단국대 등 각 대학 게시판에는 위와 동일한 내용에 작성자 이름, 적발 시기, 교재명이 상이한 게시글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게재되었다.

각 게시글에는 교재를 불법으로 사고판 학생들을 비난하는 댓글부터 “책값이 너무 비싸니까 PDF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설마 진짜 형사고발을 했겠냐” “한 명이 같은 글을 여러 번 올리면서 장난치는 것 아니냐”며 게시글의 진위 여부까지 의심하는 댓글 등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위 게시글은 불법 PDF 교재를 판매한 학생이 출판사와의 합의에 따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맨큐의 경제학’, ‘스튜어트 미분적분학’, ‘일반물리학’ 등 대학 교재의 대표격인 도서 다수를 번역 출판하는 센게이지러닝코리아㈜는 최근 “대학 익명 커뮤니티 내에서의 불법 PDF 교재 거래를 직접 단속하고 적발된 학생들을 형사고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불법 PDF 교재를 거래한 일부 학생을 형사처벌하는 대신 위 내용의 글을 올려 근절 캠페인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선처했다.

다음은 송성헌 센게이지러닝코리아㈜ 대표이사와의 일문일답.

‘불법 PDF 대학 교재 주의 당부의 글’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온라인 대학 커뮤니티에 반복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실제 적발된 학생들이 작성한 글인가
“2023년 한 해 동안 단속에 적발된 학생들을 형사 고소했다. 이들 중 정상참작 여지가 있는 일부 학생들만 불법 PDF 거래 근절 캠페인에 기여하는 조건으로 선처했다. 해당 게시글은 모두 관련 형사 합의에 따라 작성되고 게시된 것임을 밝힌다.”

업체 측은 불법 PDF 거래를 어떻게 단속했나
“현재 불법 PDF 거래가 가장 성행하는 곳이 폐쇄형 온라인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다. 지난해 출판사 단체가 에브리타임 측에 관련 간담회를 요청하고 강력한 예방 조치를 촉구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당사는 불법 PDF 교재 유통을 감시할 인력을 자체적으로 모집해 에브리타임 내 전국 주요 대학 게시판에서 지난 한 해 총 47명을 단속 적발했고, 이 중 37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불법 PDF 거래를 직접 단속하는 업체는 현재까지 센게이지러닝코리아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에브리타임 측은 “공지사항을 통해 불법적인 PDF 거래 금지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고, 장터게시판에서도 저작물 복사본 거래를 금지한다는 추가 설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PDF 거래에 대해 사용자들에 대한 제재도 하고 있고 아직 불법 행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계도까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적발된 학생들에는 어떤 조치를 취하나
“이제까지는 학생 신분임을 감안해 위의 경우처럼 선처하기도 했다. 현재는 사안이 중대하므로 (앞으로는) 무관용 원칙에 따라 형사고소하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실제 형사처벌을 받은 학생도 있나
“일부 학생에 대해 검찰이 저작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경우가 있다. 나머지 학생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주로 어떤 대학에서 불법 거래가 만연한가
“전국 주요 65개 대학에서 상대적으로 더 성행하고 있다. 해당 대학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대학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출판업체가 적발한 불법 대학교재 PDF 거래 예시.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제공㈜

단속 중 애로사항이 있다면
“저작권 의식이 결여돼 불법 PDF 거래를 일삼는 학생들이 일차적으로 문제다. 다만 이를 인지하고도 적극적으로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출판사 단체의 호소에도 안이하게 대응하는 정부 당국, 사법기관의 온정주의 법 집행 등 기성세대가 풀어야 할 과제가 훨씬 크고 중요하다. 어른들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뿐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때그때 학생들만 단속하고 적발해 처벌하는 것이 능사이고 옳은 일인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대학생들 사이의 불법 PDF 교재 거래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수업이 일반화되면서 종이책 대신 노트북과 태블릿만을 활용해 강의를 듣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교재를 무단으로 스캔해 PDF 파일로 공유하는 행위가 더욱 빈번해졌다.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측은 “출판 업계는 죽을 맛인데 정부 당국의 대응은 전무한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대학 교재 불법 복제로 인한 피해 규모는
“불법 PDF 거래는 수많은 대학 교재 출판사 및 협력업체 종사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PDF 파일은 폐쇄된 온라인 공간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빈도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집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만 관련 대학 교재 출판사의 최근 교재 판매량이 매년 5~10% 꾸준히 감소하는 주원인이 불법 PDF 거래라는 인식에는 업계 이견이 없다.”

정부 당국 대처는
“음원이나 영상물 등 상업적 콘텐츠에 대해서는 비교적 저작권 보호 제도가 잘 정비돼 있고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반면 교육 콘텐츠에 대해서는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의식이 남아 있다. 법제도 보완이나 관련 입법은 고사하고 기존에 이미 마련된 저작권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조차 수사당국이나 사법기관이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일쑤다. 작년 한국출판인회 회원사가 모여 불법 PDF 교재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고, 올해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요 일간지에 공익광고를 게재하는 등 일련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재까지 정부의 대응은 전무한 상황이다.”

일부에선 교재가 너무 비싼 것이 불법 거래 원인이라 주장하는데
“대학 교재 가격이 한국보다 4~5배 비싼 미국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찍이 중고 교재 거래가 활성화됐다. 최근에는 출판사가 저렴한 e-book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학생들의 교재구입 비용을 줄이면서 출판 생태계도 보호하는 상생의 길을 찾고 있다. 반면 한국은 소득수준 대비 교재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째 불법 복사본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교재가격보다는 저작권에 대한 대중의 의식이나 평가가 낮은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끝으로 “불법 교재 거래로 인해 출판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면 결국 모든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학생들이 불법 PDF 교재를 사고팔면서 손 쉽게 용돈을 버는 사이, 출판사는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교재를 판매하지 못해 비용 회수는커녕 막대한 재고만 떠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회사는 당분간 불법 PDF 근절 캠페인을 지속할 예정이며, 불법행위에는 법적 수단을 동원해 단호히 대처할 방침이다.”

천양우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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