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빌 해변을 거니는 여인

김지회 2024. 4.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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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도빌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진 버지니 비아르의 낭만.

연인이 서로 마주 보고 눈을 깜박일 때 ‘다바다바답 다바다바답’ 하고 BGM이 깔리던 로맨스 장면을 기억하는지. 수많은 패러디 장면을 낳은 영화 〈남과 여〉를 이번엔 이네즈 & 비누드가 감각적으로 재해석해 샤넬 2024 F/W 쇼가 진행되기 전 프롤로그처럼 상영했다. 해변에서 나부끼는 바람을 만끽하며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펼치는 브래드 피트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모습을 흑백필름으로 담은 것. 쇼가 시작되자 흑백에서 컬러로 장면이 전환하듯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모델 리앤 반 롬페이가 커다란 핑크 브림 햇을 쓰고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우아한 실루엣으로 해변을 거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바다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버지니 비아르가 컬렉션을 준비하며 떠올린 곳은 도빌 해변이었다. “도빌은 샤넬 하우스가 시작된 곳이에요. 1912년 가브리엘 샤넬이 모자 매장을 열었고, 뒤이어 선구적이고 혁신적인 첫 의상을 선보였죠. 가브리엘 샤넬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어요.” 버지니의 말을 듣고 보니 1966년 작인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의 영화 〈남과 여〉도 도빌 해변을 배경으로 촬영한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영화와의 관계성은 런웨이에도 이어졌다.
제니는 미니드레스에 펑키한 메이크업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옐로 트위드 수트에 보 핀으로 포인트를 준 마거릿 퀄리.
영화 속 아누크 에메의 룩을 연상시키는 시프스킨 소재의 재킷과 부츠를 직접적으로 연출하는가 하면, 겨울 바다의 오묘한 하늘빛을 닮은 파스텔컬러 룩이 널빤지로 만든 산책로 레 플랑슈(Les Planches) 위에 펼쳐지기도 했다. 해가 지고 푸른 밤바다의 기운이 돌 땐 블랙 & 화이트 룩이 이어지며 겨울 휴양지의 차분함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한 발 더 다가가 룩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브리엘 샤넬이 도빌의 경마장과 해변, 레스토랑 등에서 남성 룩을 보고 영감을 얻었던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깨가 넓은 피코트, 보트넥 재킷, 세일러 스웨터, 퀼로트와 크롭트 팬츠까지 모델들이 런웨이를 산책하듯 여유롭고 우아하게 거닐 수 있었던 이유는 편안한 소재와 실루엣 덕분이었던 것. 머리를 자르고 옷에서 여성의 몸을 해방시킨 가브리엘 샤넬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룩들 말이다.
실제로 1920년대와 1970년대를 교차시키는 것을 의도한 버지니 비아르는 앤드로지너스 룩의 선구자였던 데이비드 보위의 룩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그런가 하면 이전에 패션 필름과 런웨이에 직접 서서 샤넬의 아이덴티티를 깊이 경험한 마거릿 퀄리는 쇼가 끝난 뒤 프런트로에서 쇼를 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저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룩을 즐겨 입는데, 종종 드레스업해야 할 땐 버지니의 룩에서 영감을 얻곤 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쇼는 나부끼는 바람과 흩날리는 옷 등 쇼의 모든 것이 해변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했어요.”

15분 남짓한 쇼가 끝난 후 영화가 끝난 것처럼 아련한 기분이 남은 건 단지 35mm 필름과 몽환적인 하늘,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의 여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브리엘 샤넬과 그의 연인 보이 카펠의 인연이 깊게 남아 있는 곳, 도빌의 스토리를 많은 이가 알고 있었기 때문. 피날레를 따라 이어진 브림 햇의 행렬과 코트 자락을 보고 있으니 때로는 바닷가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때로는 옷깃을 여미며 처연하게 걸었을 한 여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거닐었을 그 겨울 바다에서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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