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산을 물들인 우고 론디로네의 순수한 자연

차민주 2024. 4. 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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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해와 말, 그리고 춤으로 순환하는 자연을 노래하는 우고 론디노네. 그가 뮤지엄 산에 직접 찾아와 이야기를 전했다.

Q : 한국에서 개인전을 여러 번 했는데, 원주 ‘뮤지엄 산’에서 최대 규모의 전시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열게 되었다

안도 타다오의 압도적인 건축물 아래에서 전시를 준비하게 되어 꽤 고전했지만, 나온 결과물을 모두가 즐겨주기를 바란다.

Q : 이번 전시의 핵심은

영상 작품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이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이 영상은 ‘빛나기 위해서는 타올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불교에서도 내려오는 격언이다. 팬데믹 기간에 촬영했는데, 팬데믹 기간은 우리에게 다시 태어남(Reverse), 즉 순환의 의미를 일깨웠다. 이 순환을 3개의 원으로 표현했다. 첫 번째 원은 모닥불, 두 번째 원은 모닥불을 둘러싼 17명의 무용수, 세 번째 원은 겉을 둘러싼 12명의 드러머로 만들어진다. 약 10분의 영상은 일몰부터 일출까지 이어지며 삶의 순환을 보여준다. 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Q : 영상 작품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관람하다 보면 무용수들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 현장에서의 에피소드는

촬영은 2020년 여름이었을 거다.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인 페스 근처 사막에서 4일 동안 촬영했다. 우리가 간과했던 게 사막의 밤은 여름에도 대단히 춥다는 점이었다. 스태프들이 담요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다가, 컷이 잠깐 끊기면 그 댄서와 드러머들에게 덮어줬다. 댄서들이 모닥불을 둘러싸서 그걸로 몸을 데우면서 춤을 췄던 장면이 영상에 잡혀 있기도 하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매일 밤 45분씩 3회 정도, 자정에 시작해서 해가 뜰 때까지 찍었다. 주어진 시간이 단 4일이었는데 다행히도 마지막 날에 파란 하늘이 예쁘게 잡혀서 영상이 완성됐다.

Q : 이런 영상 작품을 또 계획하고 있는지

물론이다(Indeed, I will do). 앞으로도 계속 탐색해 보고 싶은 매체지만, 제작 계획이 당장 있지는 않다. 영상 작업을 5년에서 7년 주기로 하고 있는데, 질문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Q : 다른 작품도 짧게 설명해 준다면

전시 초입부의 레인보우 룸에 시계와 창문을 놓았다. 오직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만 시계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문은 바깥 풍경 대신 관객 스스로를 비춘다. 시간과 자아에 대해 명상해 볼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둥둥 떠 있는 2개의 큐브를 만날 수 있다. 원주의 아이들과 함께 낮과 밤을 표현한 작품이다.

다른 전시장에는 유리 말 11마리가 있다. 각 개체는 서로 다른 바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말을 반으로 잘라 상부에는 공기를, 하부에는 수평선(물)을 표현했다. 그럼 말은 지구(흙)이지 않겠나. 거기다 유리를 굽는 과정에서 불을 사용하니, 삶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가 다 들어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Q : 원주의 어린이들과 협업한 작품이 인상 깊었다.

5세에서 13세 사이의 원주 아이들과 협업해 2천 개가 넘는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을 예술의 일부로 같이 참여시킬 수 있어 기뻤다. 미술관은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공간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편안하게 와서 작품을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 작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Q : ‘삶의 순환’과 ‘명상’이라는 주제가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특히 해와 달을 매일 반복해서 그렸는데, 작업을 하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펜데믹 기간이었던 4년 전, 바다가 보이는 뉴욕 시티의 집에 머물렀다. 매일 저녁 아름답게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이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무엇일지 고민했다. 가능한 한 단순한 작업을 선호하는데, 때문에 이 수채화 시리즈의 각 작품 제목도 그린 날짜로 정했다. 이 시리즈는 작품인 동시에 일기다. 90년대부터 날짜와 공간의 개념을 삶의 순환과 연결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자아에 대한 성찰과 명상을 담았다.

Q : 작품이 전시된 공간 중 특히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백남준 관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돌 수도승 작품이 자연스럽게 돌벽으로 형성된 곳이다. 이 돌 작품은 몸체가 4m가 넘고, 석회석으로 만들어 굉장히 잘 깨진다. 이를 고려해 제작하면서 수도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공간에서 풀어내고자 했다. ‘명상을 하는 자’인 수도승은 내면적 성찰을 하는 동시에, 창을 통해 외부 자연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결국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무엇이고, 자연 속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삶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논하고 싶었다.

Q : 뮤지엄 산은 특히 자연과의 조화, 안도 타다오의 건축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뮤지엄 산과는 어떻게 협업하게 되었는지

처음 뮤지엄 산에 왔을 때 주변 환경에 굉장히 놀랐다. 도심의 소음 없이 전시를 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세팅이라고 느꼈다. 규모가 큰 박물관은 대부분 도시에 있는데, 뮤지엄 산처럼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장소에서 전시하게 되어 영광이다. 이 협업이 성사된 데에는 10년째 함께하는 국제 갤러리의 도움이 컸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활동에 내실 있는 도움을 주어 감사를 전하고 싶다.

Q : 작품 속 자연은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지는데, 우리가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자연은 오염되고 파괴된 상태다. 자연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내가 이야기하는 자연은 ‘호숫가에 앉아 멀리 있는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성찰을 할 때’ 보이는 자연이다. 모두가 열망하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지, 이 자연을 볼 수 있어 우리는 얼마나 행운인지를 생각한다. 앞선 성찰로 말미암아 자연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자는 게 내 논점이다. 그 때문에 내 작품은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 자연이 얼만큼 오염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현재의 자연에 대해서 어떤 우려 사항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내 작품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운 측면을 좀 더 보여주고 싶다.

Q : 사용하는 매체가 정말 다양하다. 다양한 매체를 찾는 비결은?

모든 매체에는 그만의 역사와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매체를 계속 확장하는 데 관심이 있다. 앉아서 생각하기보다 내 작업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체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긴다. 특히 양면성(Duality)을 극복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처음 연작을 꾸릴 때 화이트를 모티브를 잡았다면, 다음에는 블랙을 모티프로 잡아내며 양면성을 이겨내려고 하는 식이다. 어떤 판단이나 가치에 얽매이지 않도록 열린 세계관을 가지려고도 한다.

Q : 개인 인스타그램에 글귀를 자주 올리는데, 이유가 있는지

시인이었던 동반자가 죽은 이후부터, 개인 인스타그램에 좋아하는 시 구절을 적고 있다. 이런 과정들이 나만의 문장을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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