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위에서 '땅따먹기' [D:쇼트 시네마(71)]

류지윤 2024. 4.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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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아버지의 시신 위에서 자식들의 땅따먹기 게임이 시작됐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 그어진 펜자국에 여성의 얼굴을 복잡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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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헌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영안실 안,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누워있고 가족들은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족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그치고 날이 선 얼굴로 바쒼다. 이제 영안실 공기는 긴장감이 감돈다.

시신 옆에는 돈다발과 현금 계산기에 놓여있다. 가족이 아닌 한 남성은 시신을 덮고 있는 흰 천을 걷고 동전 4개와 펜을 자식들에게 나눠준다.

자식들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 아버지의 시신 위에서 자식들의 땅따먹기 게임이 시작됐다. 땅을 많이 따먹은 자식이 더 많은 현금을 받게 된다.

11분의 러닝타임 동안 '땅따먹기'는 배우들의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된다. 게임에서 낙오한 자식은 숨 넘어갈 듯한 급박함과 절실한 표정을 보여주고, 돈을 많이 가져간 자식은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급기야 이성을 잃고 자신의 몫을 더 받기 위해 아버지의 몸으로 뛰어들어 난투극을 벌이며 펜으로 영역을 표시한다.

가장 뒤처졌던 딸이 몸싸움에서 펜을 놓쳤고, 펜은 손자의 손에 쥐어졌다. 어서 달라는 여성의 손짓에 손자는 볼펜을 주는 대신 손바닥을 그어버린다.

마치 펜촉은 칼끝 같다. 자식들의 난도질 아래 죽은 아버지는 말이 없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 그어진 펜자국에 여성의 얼굴을 복잡 미묘하다. 칼날 같은 날카로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까. 자신의 아들에 제게 행할 미래를 떠올렸을까. 아니면 재빨리 아버지의 몸에 뛰어들어 남은 유산이라도 받아내려는 급박함이 몰려왔을까. 블랙코미디로 시작했던 영화는 스릴러와 드라마 사이를 오간다.

가족들의 유산 상속을 둔 싸움과 분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뉴스면에서 보도되고 있는 문제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건을, 어릴 적 하던 '땅따먹기 게임'에 비유해 연결시킨 감독의 아이디어가 일품이다. 11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더 짧게 만드는 연출력도 군더더기 없다. 어디서 무엇을 극대화해야 하고, 어떤 점을 소거해야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 고민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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