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앞두고 연이은 사고, 준비 안 된 선주들 ‘전전긍긍’ [요동치는 바다④]

장정욱 2024. 4.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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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5인 이상 사업장 5100개 추정
기후변화·어획량 고갈에 먼바다 나가
‘바다’라는 작업 환경 특수성에 위험↑
어업계 “법 시행 최소 1년 유예 필요”
인천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어선이 출어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 변화로 어족 자원이 고갈하고 해상 사고가 늘어나는 등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어촌계가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번의 사고로 사실상 회복 불능의 상황에 놓일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올해부터 중대재해법은 5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경우 업종에 상관없이 적용한다. 법에 따르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피고용인의 안전·보건을 확보하지 않아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 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손해액의 5배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중대 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해양수산부가 출입항 신고서를 토대로 추정한 바에 의하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사업장은 5095개 정도다.

올해는 이미 봄철 성어기에 어선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지난달 1일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서쪽 해상에서 33t급 근해연승어선이 전복,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같은 달 9일에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해상에서 20t급 근해연승어선이 전복돼 선장을 비롯한 선원 4명이 사망하고 5명은 실종됐다.

14일에도 경남 통영시 욕지도 남쪽 해상에서 139t급 대형쌍끌이저인망어선이 침몰,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이 지난 4일 해양교통안전정보시스템(MTIS)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899건의 안전사고에서 330명이 사망·실종됐다.

전체 안전사고 사망·실종자 가운데 조업 등 ‘작업 중 안전사고’로 사고를 당한 경우는 203명에 달했다. 조업 등 작업 중 안전사고에 따른 사망·실종자는 전체 해양 사고 사망·실종자 537명의 37.8%에 달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조업 등 작업 중 안전사고로 인한 치사율도 22.6%로 다른 사고와 비교해 높았다. 조업 환경이 열악한 어선에서 작업 중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많았다. 전체 사망·실종자(203명)의 83.2%(169명)가 어선에서 발생했다.

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상황에 올해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자 어업계에서는 준비 부족을 호소한다. 어업계는 조업 환경이 육상보다 열악하고, 특히 사고가 발생하면 큰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니 어업계는 제도 적용 자체를 우려하고 있다.

어업계는 실효적인 사고 예방책 마련과 함께 법 적용을 최소 2~3년 이상 유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중재재해법 적용에 대해 “해상에서 작업하는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법과 현장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경기 수원시 수원메쎄에서 열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에서 중소기업단체협의회, 중소건설단체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뉴시스

제주연구원 “안전 장비 개발·보급, 착용도 의무화”

노 회장은 “바다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별도의 규정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법 적용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우리 어업계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제도 적용을 최소 1~2년이라도 늦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인력 부족으로 외국인 선원을 많이 고용하는 데, 이들이 중대재해법을 이해하고 안전대책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 때까지 학습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외국에서 온 선원들, 특히 동남아에서 온 인력들은 추운 바다 날씨 때문에 옷을 두껍게 입고, 그래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며 “파도에 익숙하지도 않은 상황인데 언어가 뒷받침되지 않다 보니 안전 요령을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법 적용 유예보다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양망기 등에 안전장치를 부착하거나 추락 방지용 벨트 착용 의무화 등이다.

제주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제주 어선원 조업환경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어선원들의 안전한 조업 보장과 인명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 장비를 개발·보급하고 착용을 의무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수부 제1차 어선안전조업기본계획에 따르면 어선원들은 ‘업종 특화 조업 안전 장비 개발·보급이 필요한 편이다’에 92%, ‘구명조끼 개발·보급을 위한 재원 마련과 착용 의무화가 필요한 편이다’에 90%가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정확한 연근해어업 실태 파악을 위해 관련 통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현재 선원법 적용을 받는 20t 이상 어선은 해수부 산하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에서 전국 어선원 수를 통계로 발표하고 있지만 지역별 어선원 수는 발표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20t 미만 어선원은 아예 고용 실태가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여기에 바다 위 다양한 위험 때문에 젊은 세대의 기피가 심해지고 있어 어선원 소득 보전과 복지 강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법 시행과 관련해 해수부는 지난해부터 현장 교육 등으로 안전사고 예방에 집중하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에 대비 연근해어업 업종별 안전·보건 표준 지침을 만들어 단위수협에 약 4500부를 배부했다.

총 44회에 걸친 어선소유자 대상 교육과 상담으로 68개 조합에서 1199명이 교육을 받았다. 이 외에도 교육 영상과 안전보건표지 등을 제작·배부하기도 했다.

올해도 수협별 수요조사를 통해 업종별 표준 지침 교육과 상담을 이어갈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관련 예산을 확보해 개별 어선을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와 안전·보건 상담을 지원할 계획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모든 산업에 일괄 적용되는 법으로 어선어업만 완화하는 것은 타 산업과의 형평성 문제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다만, 국회와 경영계를 중심으로 법 적용을 2년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해 국회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만큼 해수부도 수산업 현장 의견을 지속해서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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