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덮친 인구소멸]곳간 비는 생보사…요양사업으로 반전 안간힘

최동현 2024. 4. 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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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감소로 생보사 신규계약액 감소
요양사업으로 돌파구…일본 대비 정책지원 열악
임차요양 허용 등 규제완화 나서야

금융권에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생명보험사다. 보험 가입인구 감소로 들어오는 보험료는 갈수록 주는데 기대수명 증가로 나갈 보험금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 해도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금융회사라는 이유로 타 업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탓이다.

곳간 줄어드는 생보사

2022년 기준 국내 생보사의 신규계약액은 266조4427억원으로 2014년(389조4890억원)에 비해 31.6% 줄었다. 신규계약이란 해당 사업연도 중 보험계약자의 청약으로 계약이 성립된 계약이다. 보험사의 영업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핵심지표다. 신규계약이 줄면 생보사의 수입보험료도 줄어 장기적으로는 보험료 수익에 의한 자산운용에도 부정적이다. 신규계약은 그동안 20년 넘게 월평균 20조~30조원대를 유지해왔다. 지난해엔 가까스로 월 20조원을 유지했으나 조만간 10조원대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보유계약액에서 신규계약액이 차지하는 비중인 신규계약률은 2014년 17.8%에서 지난해 10.1%로 줄었다.

인구감소로 신규계약이 줄다 보니 보험사가 고객에게 거둬들이는 수입보험료의 증가세도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2014년 110조5753억원이던 생보사 수입보험료는 2022년 132조6837억원으로 20%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사망·상해·보험만기 등으로 고객에게 나가는 지급보험금은 62조2511억원에서 134조3677억원으로 115.8% 늘었다. 지난 8년간 생보사 곳간에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5.8배 더 많았다는 얘기다.

지급보험금이 많아진 건 고령화와 관련이 깊다. 의료기술 등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면서 고객들의 사망시기가 늦춰지면 그만큼 연금 보험금을 계속 지급해야 한다. 이달부터 각 보험사에 적용된 제10회 경험생명표를 보면 남성 평균수명은 86.3세, 여성은 90.7세다. 35년 전인 1989년 1차 경험생명표에서 남성 평균수명은 65.65세, 여성은 75.65세였다. 고령층은 젊은층에 비해 질병·상해·사망 발생률이 높아 이에 따른 지급보험금도 늘어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 노후대비용으로 가입한 개인연금 수령이 최근 본격화되는 추세"라며 "젊은 세대 등 보험 무관심층의 가입 유도를 위해 고객에게 더 유리한 상품을 많이 설계한 것도 지급보험금이 늘어난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요양산업에서 돌파구 찾는다

경기 부천시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에서 가족이 입소자를 면회하고 있다.

수익성 해결을 고민하던 생보사들은 신사업 찾기에 나섰다. 고령화라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차원에서 실버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내 실버산업 시장 규모는 2030년 168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실버산업 중에서도 대형 생보사가 가장 주목하는 건 요양시설과 실버타운 사업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통계를 보면 국내 요양시장은 2012년 2조9000억원에서 2020년 10조원 규모로 연평균 16.6%씩 성장했다. 한국이 2025년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두면서 관련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생보사 중 선두업체는 KB라이프생명이다. KB라이프생명은 지난해 10월 계열사인 KB손해보험으로부터 KB골든라이프케어를 인수하면서 주요 생보사 중 가장 먼저 요양사업에 진출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요양시설(위례·서초 빌리지)과 주야간 보호센터(강동·위례 데이케어센터) 등을 운영 중이다. KB라이프생명은 지난해 말 미래혁신본부를 설치하고 그 아래 시니어 사업추진부를 신설하는 등 요양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노인복지주택 평창카운티를 분양하면서 실버타운 사업도 본격화했다.

신한라이프도 올해 요양사업을 활발히 전개 중이다. 지난 1월 헬스케어 자회사였던 신한큐브온의 사명을 신한라이프케어로 변경하고 시니어 사업 전담 자회사로 출범시켰다. 신한라이프는 지난해 말 신한큐브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400억원을 출자했다. 투자금을 확보한 신한라이프케어는 최근 첫 노인요양시설인 하남 미사 1호점 부지 매입 절차를 마무리했다. 내년도 오픈 예정인 1호점은 60~70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1~2인실 위주의 도심형 프리미엄 시설로 운영될 계획이다. 연내 데이케어센터 파일럿 점포도 운영하는 등 서울 도심형 요양시설 구축에 집중할 방침이다. 신한라이프는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서울 은평구에 있는 시니어 주거복합시설 건립부지도 매입했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 조직개편을 통해 기획실 내 시니어리빙 사업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요양사업 진출을 저울질하고 있다. 삼성그룹 내 요양시설인 삼성노블카운티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 돌봄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다. NH농협생명도 지난해 말 경영기획부 내 신사업추진단과 신사업추진파트를 신설하는 등 요양산업 진출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초고령화 先경험한 日 보험사…요양사업으로 반전

일본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9.1%로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령 사회다. 한국보다 20년 앞서 고령화와 보험업 포화상태를 경험한 일본 보험사들은 요양사업으로 활로를 열었다.

선두업체는 손해보험사 빅3인 솜포(SOMPO) 홀딩스다. 솜포그룹은 2015년 요양 자회사 솜포케어를 설립하고 요양업계 시장점유율 2위였던 메시지와 6위 와타미를 인수한 뒤 2018년 7월 솜포케어로 합병했다. 솜포케어는 일본 요양시설 규모 1위로 현재 일본 전국에서 약 3만실의 요양시설을 운영 중이다. 2016년 적자였던 솜포케어는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8년 1238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620억원으로 5년 만에 30.9% 성장했다. 매년 6~8%대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다.

일본은 2000년 공적개호보험 도입을 계기로 요양시장이 급성장했다. 개호보험은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비슷한 성격의 공적 건강보험으로 65세 이상 고령자가 가입 대상이다. 2022년 기준 일본의 요양시장 규모는 100조원으로 한국의 10배 수준이다. 시장이 커지니 일본 보험사들이 이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일본 최대 생보기업 닛폰생명은 지난해 11월 매출 1위 요양기업 니치이홀딩스를 인수하며 요양사업에 진출했다. 지난 1월 기준 요양산업에 진출한 일본 보험사는 7곳이다.

韓 요양사업은 아직 걸음마…"제도기반 마련해야"

일본 보험사들이 요양산업에 적극 뛰어들 수 있었던 배경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다. 일본은 토지·건물을 소유하지 않아도 민간 보험사가 임차 형태로 요양사업이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라 요양시설 사업자가 10인 이상의 요양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토지·건물을 소유하거나 공공부지를 임차해야 한다.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도심에서 마땅한 요양시설 부지 찾기도 어렵다.

정부는 특정 지역과 일정 규모의 비영리법인에 임차 요양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등 단계적으로 문을 여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내년이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요양시설 포화와 열악한 인프라 개선 등을 위해 정부가 민간기업에도 문을 적극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토지·건물 장기임대 방식과 더불어 세제혜택 등 다양한 방식의 사업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경쟁이 활성화되면 특정 요양시설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등의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누가 요양시설 운영을 잘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봐야지 보험사 특혜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건 국가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임차 허용 여부로만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고 그 안에서 실제 수익이 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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