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에피파네스와 에피마네스

2024. 4.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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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는 야누스의 얼굴 같다. 전반부는 감동과 도전을 선사하는 내러티브의 연속이지만 후반부는 ‘묵시’라는 낯선 장르가 반복된다. 고대 근동 제국들의 흥망성쇠와 그 가운데 살게 될 유대인의 처지에 대한 예언이라는 큰 틀은 유추할 수 있지만 내포한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상징의 향연은 그 구체적 의미를 분간하기 어렵게 한다.

이 묵시들 가운데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고난에 빠뜨리는 존재로 예언된 악한 왕의 정체에 대해서는 모두 한목소리로 이 인물일 것으로 추측한다. ‘에피파네스’라는 칭호로 불린 인물, 안티고노스 4세다. 그는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실제 역사에서도 유대인과 유대 신앙에 크나큰 고난을 안겼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제국 내 백성들에게도 악마처럼 보였던 인물이었나보다. 그래서인지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신의 현신’이라는 뜻의 ‘에피파네스’가 아니라 ‘미친 자’를 뜻하는 ‘에피마네스’라고 불렀다고 전승된다. 우리말에서 ‘신’이라는 단어 앞에 ‘병’을 붙이면 험한 욕이 되는 것처럼 에피파네스의 ‘파’에서 ‘마’로의 음소 변화 역시 비슷한 언어유희다.

실제로 그의 왕위 등극 과정부터 심상치 않았다. 차자였던 그는 왕위에 오른 형이 일찍 죽자 왕위에 오른 어린 조카의 섭정을 하다가 그를 독살한 뒤 왕위를 찬탈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의 됨됨이를 추정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인생 목적마저도 유추할 수 있다. 왕이 되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에서 이런 자들이 실제로 권력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윤리나 명분을, 또한 타인의 안위를 생각하는 이들이 오직 왕위에 오르는 게 삶의 목적인 자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처럼 협잡으로 왕위에 올라 정통성이 부재한 자들은 한결같은 특징을 내비친다. 우선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민생에 아무 도움 안 되는 무리한 치적 쌓기를 감행한다. 반면 왕위를 뺏길까 겁나서 경쟁자들, 혹은 약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공포정치를 구현한다.

에피파네스는 이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우선 업적 쌓기에 돌입하는데, 셀레우코스 왕조가 100년 넘게 이루지 못했던 숙원인 남부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정복이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 무리하게 그리고 그답게 야비하게 침공했다. 물론 소기의 성과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실패한다. 그러자 그는 백성들을 더 옥죄며 공포통치로 전환하는데 주 타깃이 유대인이었다.

자신의 통치령에서 가장 미개해 보이는 자들을 희생양 삼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예언하는 다니엘서에 재미있는 문장이 나온다. 정복 실패 후 그가 유대인을 괴롭힐 것을 예언하며 그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분풀이’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의 삶의 태도를 보면 이는 진실인 듯하다.

그런데 이처럼 어이없는 행실의 근본 이유를 뜻밖에도 그의 이름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다. ‘신의 현신’이란 뜻의 에피파네스. 그는 자기 이름 뜻처럼 자신을 신처럼 여겼고 그 자의식이 그의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조장했다. 그래서 왕위에 올라야 했고 모두 자신에게 굴복해야 했으며 신에게 있어 실패감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이기에 분풀이를 통해 전능감을 보전하려 했다. 그리고 이는 역사에 반복된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어서 그 자리에 어떻게든 오른 뒤 치적을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혹은 경쟁자와 약자들을 찍어 누르는 권력자들 말이다. 그렇게 에피파네스를 지향하나 결국은 에피마네스가 돼버리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기에 이게 특정 정치 권력자에 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치만이 아니라 종교 권력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는 스스로 왕좌에 올라 자기를 신처럼 여기는 죄성으로 가득 찬 모든 인간의 실존이다. 에피파네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고 싶으나 실제로는 에피마네스로 귀결돼 버리는 모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나와 너는 신이 아니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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