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더이상 폐지 줍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꾸다
유튜브 더미션 채널 콘텐츠 ‘안녕하쎄오(CEO)’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고민을 갖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의 현장을 라이트하우스서울숲 임형규(44) 목사, 소울브릿지교회 반승환 목사(41)와 함께 방문, 체험하는 콘셉트입니다.
첫 번째 기업으로 러블리페이퍼의 기우진(41)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우리는 종종 도시에서 리어커를 끌며 폐지 줍는 노인들을 목격합니다. ‘왜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보도가 아닌 위험한 도로로 다니는 걸까’ ‘저 폐지를 팔면 얼마나 버는 걸까’ 이런 궁금증 한 번쯤 가져보셨을 텐데요.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수거 어르신들의 폐박스를 6배 고가로 매입해 친환경 페이퍼 캔버스를 제작하는 곳입니다.
캔버스뿐 아니라 쌀 포대 종이 가죽 원단으로 패션 가방을 제작 판매해 얻은 수익으로 다시 어르신들을 고용하는 데 사용하며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해 오고 있습니다.
임 목사와 반 목사는 최근 인천 부평구의 한 고물상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무게 55㎏의 리어카를 끌고 부평구 갈산동 인근 주택가를 돌며 폐지 수집에 나섰습니다. 시작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카센터와 약국 등에서 버려진 배송 박스 폐지 등을 주운 임 목사는 “상자를 주웠을 뿐인데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손수레가 지나가기엔 턱없이 좁은 도로 앞에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보도 양 옆에 주차된 차량에 긁힘 사고가 벌어질 것이 우려된 두 사람은 결국 차도로 향했습니다. 리어커 옆을 지나는 차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렸습니다.
반 목사는 “노인들이 왜 위험한 차도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것 같다”며 “주로 어르신들은 어두운 한밤이나 새벽에 일을 하느라 위험에 쉽게 노출 될수 밖에 없는데 너무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리어카를 끌던 임 목사는 “팔과 허리가 아파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허리를 펼 수도 없었습니다. 허리를 폈다가 자칫 리어카라도 기울어지면 애써 쌓아 올린 폐지들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길 한가운데 그 어느 곳에도 잠시 지친 몸을 쉬어갈 공간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박스를 줍던 찰나 한 노인이 두 사람을 향해 “그거 가져가면 어떡해! 내 박스 줍지 마!”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시는 어르신들에게 피해를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고물상으로 향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날 1시간 30여분 동안 폐지 40㎏을 줍고 총 2000원을 벌었습니다.
2000원을 들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러블리페이퍼’ 공장이었습니다. 기우진 대표는 “기독교 대안학교에 재직할 때 폐지 줍는 어르신이 경사로를 올라가는데 출근을 해야 해서 못 도와드리고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폐지 수집하는 어르신을 만나고 자료도 찾기 시작한 것이 러블리페이퍼 설립까지 이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공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반 목사는 “1시간 동안 40㎏ 폐지를 주워 2000원을 벌었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넋두리를 하자 “젊은 장정이 고작 40㎏ 같고 힘들다면 어떡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왔습니다. 어르신들은 “러블리페이퍼에 오기 전 하루 평균 11시간 동안 13㎞를 이동하며 100㎏~200㎏의 폐지를 주웠다”며 “그래도 폐지 40㎏에 2000원이면 꽤 잘 받은 가격”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임 목사와 반 목사는 캔버스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주워온 폐박스를 일정한 크기로 재단 후 3겹씩 겹쳐 헝겊으로 덧씌우면 꽤 근사한 업사이클링 캔버스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캔버스는 전국 350여명의 작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그림이나 캘리그라피 작품이 돼 온라인에서 판매됩니다.
러블리페이퍼에서는 폐지 수거 노인들을 ‘자원재생활동가’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폐지 줍는 노인은 전국에 약 1만5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한 사람당 1년에 9t 정도의 폐지를 수집하는데 이는 30년 된 소나무 80그루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이들을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자원순환의 환경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자원재생활동가’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 대표는 “노인이 된다는 건 상실을 겪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인들이 겪는 상실에는 사람, 물질, 건강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관계의 상실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배고픔이 아니라 ‘정고픔’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폐지를 줍다 6년 전부터 러블리페이퍼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정순자(85) 할머니는 “매일 내가 일할 곳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며 “아침 출근길이 소풍 오는 것처럼 설렌다”고 말했습니다. 임 목사는 “노인들도 할 일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함께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일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중요한 것 같다.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목회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한다”고 전했습니다.
러블리페이퍼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멋지게 망하는 것’입니다. 기 대표는 “멋있게 망한다는 것은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더 이상 폐지를 줍지 않아도 돼 러블리페이퍼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며 “노인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임 목사는 퇴근길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관심을 갖고 쳐다보지 않으면 풍경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길거리와 박스와 버려진 종이들 그리고 그것들을 수거하는 노인들, 그들의 자리에 갔더니 수고와 땀, 위험이 있었고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내 인생의 가장 값진 2000원.”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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