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드라마 & 영화 속 여성 빌런 캐릭터!

천일홍 2024. 4. 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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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에게는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 했던가. 그러나 누구보다 뜨거운 욕망과 야욕으로 점철된 강렬한 삶을 살았을, 우리가 사랑한 여성 빌런 7인.
「 나 욕심 많아. 더 올라가고 싶고, 더 출세하고 싶어. 가장 화려하고 가장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까지 서고 싶어. 」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 ― 허영미

배우 김소연에게 연기대상 트로피를 안겨준 드라마 〈펜트하우스〉 ‘천서진’의 뿌리엔 〈이브의 모든 것〉의 ‘허영미’가 있다. 천서진을 만나 배우 인생에 가장 큰 꽃 하나를 피워 내기 20년 전 김소연은 앳된 얼굴로, 그러나 맹렬하게 허영미를 연기했고 그 이름은 짙은 잔상을 남겼다.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와 가난함에 뒤엉켜 자란 나날, 아버지의 죽음은 빌런 허영미를 탄생시켰다. 아버지의 목숨과 맞바꾼 보험금을 손에 쥔 채, 지금까지의 삶은 아버지의 관 속에 넣어버리겠다 다짐한 그는 독과 악을 연료 삼아 폭주한다. 사랑도 커리어도, 욕망한 모든 것을 거침없이 손에 넣으며 7시 뉴스 앵커 자리를 꿰찬 순간에도 허영미는 방송국의 간판이 되겠다는 다음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움직이며 파멸한다. 결국 파국에 닿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건 단순히 그가 희대의 악인이기에 가능했던 걸까? 하지만 연인과의 결혼과 내조를 종용하는 예비 시어머니에게 “제겐 결혼보다 성공이 중요해요. 여자가 결혼하는 건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더 많아요”라 말하는 기세를 보라. 이 드라마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에 방영됐다는 걸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전형성을 부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허영미로부터 배운 건 그런 거다. 누군가의 아내나 딸이 아니라, 내 이름 위에 꼿꼿이 서 있고 싶다는 욕망. 그런 욕망을 품은 여성이란 영악하지도, 되바라진 것도 아니며 지극히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그 시절 모든 것이 되고 싶었던 어린 소녀를 가슴 뛰게 했던 그 이름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천일홍(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야? 」
영화 〈박쥐〉 ― 태주

모두가 잠든 한밤중, 홀로 맨발로 뛰쳐나와 내달리던 여자. 자신의 허벅지를 찍어 누르던 여자. 가부장적인 남편과 시어머니에 짓눌리던 ‘태주’는 신부를 유혹하고 남편을 죽이며, 마침내 뱀파이어가 된다.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 가장 어둡고 축축한 아래에서 단숨에 상위 포식자가 된 태주가 그 쾌감을 천진하고 순순하게 만끽하는 순간을 보라. 그 얼마나 충만한지, 이것에 ‘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맞는 것인가 의구심마저 든다. 태주는 뱀파이어임에도 인간을 해치지 않으려는 신부 ‘상현’을 조롱하며 묻는다.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야?” 닭에서 여우가 된 태주에겐 잡아먹혔던 것도 당연하고 잡아먹는 일 또한 당연하다. 그런 그에게 약자에게 내미는 손길 따위를 기대해선 곤란하다. 태주는 폭주의 순간, 남편 친구의 필리핀인 아내이자 자신의 동지이기도 했던 ‘이블린’에게도 이를 드러낸다. 약자는 정의로워야 하나? 태주는 답한다. “왜 그래야 하지?” 자기반성 끝에 동반 자살을 강요하는 상현에게도 태주는 맞선다. 나는 죽지 않겠노라, 이 포식자의 삶을 누리겠노라…. 태양이 떠오르고, 상현은 “우리 지옥에서 만나요”라고 끝까지 낭만적으로 말한다. 태주의 답은?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신실한 신부여, 지옥에서 만나자고? 태주가 겪은 모든 세상은 이미 지옥이었다. 선과 악을 저울질해 보답 혹은 벌을 줄 신 따위 있을 리 없다. 세상에 태어나 태주는 닭이거나 여우였다. 늘 잡아먹히는 것이었고, 잠깐은 잡아먹는 것이었다. 생동하는 태주의 발그레한 뺨과 희번득한 눈과 핏물 번진 입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2가지 답이 있다면, 태주는 늘 내 귀의 왼편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다. 이예지(〈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 닥쳐. 네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 」
드라마 〈태양의 여자〉 ― 신도영

뻔뻔하기도 하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겠단 생각에 어린 동생을 냅다 서울역에 버려놓고, 그 사실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살았으면서, 가해자 ‘신도영’은 피해자인 동생의 입을 막으려고만 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동생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딸을 잃은 엄마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관심 밖이었다. 그간 일궈낸 커리어와 명성이 무너질까, 약혼자가 등을 돌릴까, 미약하게 남아 있는 부모님과의 끈이 끊어질까… 신도영을 괴롭게 한 것은 이뿐이었다. 게다가 어찌나 비겁한지 동생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인생 로그아웃을 택한 여자였다. 이토록 이기적이고 나쁜 짓만 한 빌런인데 왜 꼭 안아주고 싶은 걸까? 아마 그가 ‘어른 아이’이기 때문일 테다. 입양아였던 도영은 친자인 동생이 태어나자 파양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실제 입양아가 아닐지라도,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모든 소녀들의 바람이고 성인이 돼서도 그런 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신도영은 어릴 적 상처를 소화해내지 못해 휘청거리면서도 누구보다 자기 삶에 욕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죄를 저질렀건만 여전히 사랑받는 딸이 되겠단 일념으로 효녀 노릇을 했고, 가정에서 충족 못 한 인정 욕구는 사회에서의 성공으로 대신 채웠다. 지독한 콤플렉스를 앓는 동시에 있는 힘껏 극복하려는 태도가 매력적인 여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실체는 단지 자신도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던 소녀. 신도영만큼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며 비호해주고 싶다. 박한나(〈코스모폴리탄〉 피처 어시스턴트)

「 그저 돌이 되는 거야.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조부 투파키

악당이란 주인공보다 매력적이어야 한다.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매혹적인 외모나 독특한 성격, 재치 있는 입담, 여유, 압도적인 힘은 물론이지만, 그중에서도 악당을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을 파괴하려는 근원의 서사, 그리하여 악당에게 몰입하게 되고 그의 말이 곧 진리인 것처럼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모든 걸 다 가진 매력적인 악당을 나는 알고 있다. ‘조부 투파키’. 심지어 그는 지구나 이 우주만을 멸망시키려 하지 않는다. 모든 차원의 우주를 베이글로 모두 소멸시키겠다는 압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걸 가능케 하는 힘을 가졌다. 심지어 다중 차원에서 조부 투파키가 매번 살해하는 것은 자신의 엄마다. 엄마를 그리워해서, 연인을 지키기 위해서 주인공을 죽이는 악당은 봤어도 제 엄마를 수십 번 살해하는 악당이라니! 이보다 더 독할 순 없다. 하지만 끝내 조부 투파키가 원했던 것은 멀티버스의 파괴가 아닌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악당의 가면을 벗고 세탁소 앞에서 엄마와 다시 조우한 그를 무찌른 건 어떤 무기도 아닌 말 한마디. “너와 함께하고 싶어.”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 우주를 방황하다 이곳까지 오게 된 조부 투파키는 그제서야 팔을 벌려 엄마의 포옹을 받는다. 압도적인 패션, 흉내 낼 수 없는 몸짓, 독특한 말투, 매력적인 표정, 그리고 힘과 사연까지. 이토록 완벽한 악당. 수백 개 우주의 안녕을 묻게 만드는 조부 투파키의 힘이다. 천선란(소설가)

「 슬픔엔 5단계가 있다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난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어. 복수! 」
영화 〈크루엘라〉 ― 크루엘라

‘크루엘라’라는 이름의 원형처럼 어렸을 때부터 못된 짓을 일삼던 그는 본인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악녀이자 생모, ‘바로네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젠 크루엘라가 주류가 될 거야. ‘에스텔라’는 가끔씩 등장할 거고.” 가엾은 주인공 에스텔라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거나, 불행한 인생으로부터 자신을 구제해줄 선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대신, 크루엘라는 본체보다 더 악한 자아를 메인으로 내세우며 안티 히어로를 자처한다. 이 영화에 ‘권선’은 없다. 오직 ‘징악’만 있을 뿐. 이 이야기는 남자가 무더기로 등장하는 가운데 고명처럼 여자 한두 명을 섞어놓은 그저 그런 히어로물이 아니다. 크루엘라는 기존 사회의 관습과 통념에 반기를 들고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이고, 반항하고 호령하며 상류사회를 뒤집어놓은 빌런이다. 비범한 복수 전략, 천재적인 패션 능력에 황홀한 쇼맨십까지, 엠마 스톤의 크루엘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 안티 히어로물. 그것만으로 크루엘라를 인생 악녀로 손꼽을 이유는 충분하다. 김미나(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 By all means, move at a glacial pace. You know how that thrills me.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미란다 프리슬리

프라다를 입은 메릴 스트립이 시상 봉투를 굼뜨게 열자 옆에 선 에밀리 블런트가 결정적 펀치를 날린다. “아무렴, 빙하처럼 천천히 움직여봐. 얼마나 짜릿하겠어.” 매사 허둥대는 사회 초년생을 향한 상사의 일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미란다 프리슬리’의 이 대사는 한국에서 “그렇게 굼뜨기도 힘들 텐데 그것도 네 독특한 소신인가?”로 번역됐다. 앤 해서웨이도 앞서 메릴 스트립의 말을 가로챈 뒤 회심의 복수를 날린다. “아니, 아니. 그건 질문이 아니었는데.”(이 역시 미란다의 대사였다) 지난 제30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에서 세 배우가 벌인 콩트는 미란다 프리슬리가 여전히 아이콘임을 말해준다.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이제 사람들은 놀리려 드는 것이다. 어느덧 18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적지 않은 순간에 야심의 포로로 살아가며 때론 상처받지만, 적어도 좀 더 관조할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자신의 평범함을 질책하는 내면의 화신이 메릴 스트립의 초상이라면 “차라리 다행이 아니냐”고 웃어넘기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기대, 가혹한 요구, 그에 따르는 자기실현을 표상하는 이 냉랭한 능력주의자가 나는 지금처럼 영원히 악당의 판테온에 있기를 바란다. 그의 매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가끔 이렇게 놀려먹기라도 할 수 있게. 김소미(〈씨네21〉 기자)

「 난 운명 따위 두렵지 않아. 싸울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건 다 차지할 거야. 」
드라마 〈욕망의 불꽃〉 ― 윤나영

자신의 처지에 타협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겁한 것이라 여기는 ‘윤나영’은 일찌감치 천륜을 저버린 여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빚 많고 무능력한 아버지와 해안가의 허름한 집으로부터 탈출해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나영은 가장 먼저 가족부터 해치운다. 제 손으로 언니의 인생을 파괴하고, 아버지를 죽게 한 여자가 더 이상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원하던 대로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나영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거나, 자신이 세운 계획을 방해하는 사람은 모두 죽여 없애며 광기에 휩싸인 망나니로 살아간다. 남편, 시아버지, 남편의 첫사랑, 남편의 형제, 심지어 자신이 낳은 딸까지. 나영은 욕망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에 중독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모두 해치우고 끝내는 괴물이 된 자기 자신까지 죽여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수많은 악업을 쌓으며 만난 ‘최종 보스’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침내 윤나영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협을 선택한다. 자신이 만든 지옥에 홀로 남아 운명에 비겁하게 순응하기로. 어떠한 참회도 반성도 할 수 없는 불멸의 악인이 되기로. 세상은 늘 성의 없이 악녀를 만든 뒤에 그 악녀가 뉘우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극악무도한 악녀의 삶을 그리고도 회개라는 궤적을 벗어난 윤나영의 최후를 더욱 신기하게 바라보게 된다. 복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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