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원비만 2백, 그런데도 '대학은 선택' 말한 이유

윤용정 2024. 4. 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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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대학등록금 내준다는 엄마 보며 깨달은 것... 사교육 줄이고 노후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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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정 기자]

"우리 손주가 벌써 고3이야? 대학 첫 등록금은 엄마가 내줄게."

지난 명절에 친정엄마가 말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집이 대학을 보내줄 형편이 되지 않으니 실업고등학교를 가라고 한 엄마였다.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했다. 우리보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대학을 가는데, 엄마는 왜 대학을 보내줄 수 없다고 하는 걸까, 어렸던 나는 엄마를 원망했었다. 

3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야간 대학에 입학했는데, 정말 열심히 했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을 입학했으면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는 데 성공했고, 남들보다 늦은 만큼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다. 지금은 엄마를 원망하기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엄마가 만약 나, 언니, 남동생 모두를 대학에 보내고자 노력했다면 엄마는 지금 많이 가난할지도 모른다. 현재 70대인 엄마는 병원비 걱정이 없을 만큼의 재산이 있고, 가끔 해외여행을 다니며, 가끔 우리 아이들 학비도 보태주겠다고 하신다. 

이제 50대에 들어선 나는, 엄마와 주변 어르신들을 보면서 노후 준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노후가 여유로운 부모가 얼마나 든든한지 느끼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노후 준비보다는 사교육에 가장 큰돈을 쓰고 있다.

"상태가 심각해요"... 선행한 아이들과 벌어진 격차
 
 우리 동네 큰 건물에는 대부분 학원이 들어서 있다.
ⓒ 윤용정
 
2012년 첫 아이가 일곱 살 때, 태권도 학원비 10만 원으로 사교육을 시작했다. 나는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태권도, 피아노, 수영, 발레 같은 예체능 학원을 보냈다. 아이들의 공부는 집에서 문제집을 푸는 정도만 했으나, 고학년이 되자 학습 난이도가 올라가 내가 봐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첫째가 5학년, 둘째가 3학년 때인 2017년 아이들을 공부방에 보냈다. 공부방에 다닌 이후로 아이들은 학교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받았다. 공부방에서는 시험을 위한 공부를 시켰다. 문제에서 원하는 답을 빨리 파악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연습시키는 듯했고,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믿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학원비가 조금씩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두 아이를 예체능 활동에 공부방까지 보내자니 한 달 학원비가 백만 원이 넘게 들었다. 얼마 전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뉴스에서 본 어느 주부의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 학원을 하나라도 더 보내기 위해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이었다. 

아이를 키워보기 전에는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사교육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늪에서 잠시 빠져나온 건 코로나 때문이었다. 학교 비대면 수업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전자에 속했다. 나는 공부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학교도 못 가는 마당에 학원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 학원을 모두 끊었다.

그러다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2022년 고등학생이 된 큰아이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기를 좋아했고 수업 태도도 좋았지만 성적은 중간을 넘지 못했다.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고 들어온 아이들과의 격차를 따라잡기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자면 등급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건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공부법이었다. 대학을 가려면 학원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째는 첫째보다 조금 일찍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약 2년 전인 중2 초에 수학 학원 상담을 갔다. 그때 들은 말.

"어머니, 아이 상태가 심각해요. 지금 중2 아이들은 중3 과정을 한번 끝낸 상태예요. 아이를 저희 학원에 보내시려면 특강을 따로 들으며 보충을 하던가, 아니면 중1 아이들과 수업을 받아야 해요."

학원 선생은 아주 큰일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아이가 1~2등을 하길 바라고 학원 상담을 받은 건 아닌데, 만약 잘하지 못하면 아주 큰일이 날 것처럼 그는 심각하게 말했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떼고,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을 떼면서 그렇게 남들보다 빨리 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내 아이의 속도는 무시한 채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걸까? 빨리 가는 아이들은 과연 괜찮은 상태인가?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23년 11월 16일 한 고등학교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는 수험생들 모습(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당시 그 수학 학원에 아이를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수학학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댄스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아이는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한다. 토요일마다 학교 배구교실을 가는데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곤 했다.

춤추고 싶어하는 아이를 수학학원에 보내야 할까 싶었다. 내 고민의 방향이 달라졌다. 어차피 늦은 거, 나는 아이를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 댄스학원에 보냈다. 아이는 댄스 동아리에 가입하고 학교 축제 때 무대에서 춤을 췄다. 축제 전날, 내 앞에서도 춤을 췄는데 내 눈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이돌보다도 잘 추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내가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봤고, 아이의 밝은 웃음을 봤다. 수학학원 대신 댄스학원에 보낸 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이야 천천히 걸어라. 빨리 가는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꽃도 보고 별도 보면서, 천천히 가라. 

진짜 아이를 위한 일이 뭘까

이랬는데도 월말이면 내게 무서운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 학원비 결제 안내 문자이다.

2024년 3월 기준, 고3 첫째가 다니는 국·영·수 학원, 고1 둘째가 다니는 영어학원, 초등학생 막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까지 결제를 마치면 한 달 학원비가 2백만 원 정도 된다. 물론 이 정도 비용이 많은 건 아니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기준은 각 가정마다 다른 것이니까. 

아이들을 키우는 십 수년간 교육 문제로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주변에 아프다는 아이가 있으면 그래 아이들이 건강하면 됐지 뭘 바라나 싶다가도, 소위 '스펙'이 좋지 않아 취업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아이가 하루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솔직히 내 아이들이 명문대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뒤늦게 야간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던 것은, 내 자부심이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내 콤플렉스의 발현이기도 했다.

내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 사교육은 그런 내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노후 준비는 놓치고 있었다. 

부모인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은 과도한 입시 경쟁이 교육의 중심이 되어 있고, 사교육 시장은 그 경쟁을 더욱 부추기며 부모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이들이 원치 않는 학원은 보내지 않기로 했다. 대학은 가지 않아도 좋고, 원하는 게 생겼을 때 가도 된다고 아이들에게도 말해뒀다.

지금 당장 사교육에 힘쓰는 것보다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게 생겼을 때 도움을 주고, 내 노후를 든든하게 준비해 두는 게 더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내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끝까지 든든한 부모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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