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편지로 만나는 그 누군가에게 한 번 더 일어설 힘 주고싶어”

신은정 2024. 4. 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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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우편함으로 위로 전하는
온기 조현식 대표
조현식 ㈔온기 대표가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 놓인 온기우편함 옆에서 단체 운영 방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서울 여의도 등 전국 10곳의 CGV 영화관에는 노란색 우편함이 놓여 있다. 고민을 써서 넣으면 손편지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온기 우편함’이다. 지난 7년간 이 우편함을 통해 전해진 따스한 위로는 2만4000통이 넘는다. ㈔온기의 조현식(34) 대표가 대학 졸업반 시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라며 시작한 일이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조 대표는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줄 몰랐다”면서도 “편지로 만나는 그 누군가에게 한 번 더 일어설 힘을 주고 싶다는 초심은 잃지 않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다”고 말했다.

600명 봉사자의 손글씨 위로

온기우편함은 온기우체부로 불리는 봉사자 없이 운영할 수 없는 구조다. 한 달 1000통이 넘는 고민 편지에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은 손편지 답장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자원봉사자 600여명이 온기 사무실과 집에서 활동한다. 특히 200여명은 6~8명씩 조를 이뤄 한날 모여 함께 답장을 쓴다.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온기 사무실은 이들로 북적인다. 봉사자 1명이 한 달 감당하는 편지는 2~3통 정도. 답장을 쓰는 데 5시간이 걸리기도 한다고 조 대표는 귀띔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이지만 대부분 봉사자가 스스로 위로받는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어 “4달 전부터 봉사를 시작한 한 청각장애인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큰 의미’라고 말해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봉사자는 첫 한 달간 답장 감수 등 교육을 받는다. 누군가의 고민에 의도하지 않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조 대표는 “온기우편함 최고의 팬인 봉사자는 답장을 써주는 데 그치지 않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표도 사다주는 등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며 “마음을 써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가장 든든한 점”이라고 했다.

대학 시절 만든 우편함으로 시작

조 대표도 일주일에 한 통씩 누군가의 고민을 마주하고 손편지로 위로를 전한다. 그를 포함해 봉사자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답장이 올 때라고 했다. ‘세상에 혼자인 것 같아 힘들었는데 누군가 나를 응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거나 ‘손편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 보고 있다’는 식의 감사 인사가 주를 이룬다. 조 대표는 “이런 ‘재답장’으로 지금껏 버텨왔다”며 웃었다. CGV 등 기업이나 기관 협업 제안도 이런 손편지 위로 효과 덕이라고 강조했다.

운영 7년 차인 온기우편함은 우울감 지속 완화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조 대표 외 직원 5명이 함께 일한다. 그러나 목공소에서 제작한 우편함 하나를 들고 서울시에 무작정 찾아가는 패기로 시작한 초기엔 어려움이 상당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조 대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집한 봉사자 10여명과 카페를 전전하면서 손편지 답장을 썼다. 이후 IT기업에 취업해 2년 정도 월급과 시간을 부어가면서 온기우편함을 이어갔다. 조 대표는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고 확신했지만 현실적 운영이 힘에 부쳤다”며 “신앙인으로서 ‘부족한 제가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고민편지 ‘0통’ 될 때까지…

인천 남동구의 영화관 ‘CGV인천’에 설치된 온기우편함(위)과 누군가 온기우편함에 고민 편지를 넣는 장면. 온기 제공

온기우편함은 CGV영화관이나 추모공원, 대학병원, 거리 등 전국 61곳에 설치돼 있다. 최근 한 달 평균 1200~1500통 정도의 고민 편지가 우편함에 쌓인다. 올해에만 1만8000통의 고민 편지가 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엔 8000명이 넘는 이들에게 뉴스레터로 고민편지와 답장을 전했다.

봉사자 외에 온기우편함을 돕는 손길이 적지 않다. 우정사업본부는 2년째 답장에 붙일 우표를 지원하고 있다. 이외 개인과 기업 후원으로 편지지와 봉투, 봉사자가 모이는 사무실 등 운영비를 채운다.

조 대표는 “이 일을 시작하며 품었던 ‘진심을 전하자’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2021년 6월 인기 방송 ‘유퀴즈온더블럭’에 오랜 봉사자이자 그룹 SG워너비 김진호의 어머니가 출연해 온기우편함이 덩달아 큰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협업 제안이 갑자기 늘었지만 봉사자가 진심을 담아 답장을 쓸 수 있는 정도로 우편함을 늘리는 구조를 유지했다. 조 대표는 “외형적 성장에 집착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며 “한 사람에게 우리의 진심이 닿는 것이 유일한 운영 목표”라고 강조했다.

온기우편함은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등 이른바 고위험군으로부터 오는 고민에 실질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이들을 위해 현재 심리 상담 전공자가 답장을 써주고 있으며 추후 정신건강센터에 연결하는 등 방안을 모색 중이다.

조 대표는 “우리 주변에 놓인 우편함을 보면서 사람들이 ‘언제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또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겠구나’ 하는 안정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온기우편함에 도착하는 고민 편지가 한 통도 없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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