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도시 개발 계획... 도심의 '역사'를 배제하다

안근철 2024. 4. 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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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유산 관점에서 도심기본계획 톺아보기

[안근철]

서울은 오랜 수도로서 역사도시이며, 그중 4대문의 안쪽 구역인 도심부는 다양한 시간의 역사적 켜가 촘촘히 쌓여있다. 다양하고 촘촘한 이것들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세밀한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심기본계획이 만들어졌다. 서울시의 공식적 계획명칭에 '도심'이 들어간 것은 2000년 '서울 도심부 관리계획'으로, 도심부에 대한 최초의 종합계획 성격을 갖고 있다.
 
 역사도심의 경계 (출처: 2015년 역사도심기본계획, p.9)
ⓒ 서울시
 
도심계획에서 '역사'를 배제한 서울시

현재까지 다섯 권의 기본계획 보고서가 작성됐는데, 보고서 명칭에 사용된 단어의 변화를 살펴보면 도심부에 대한 행정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0년에는 '관리'의 대상으로, 2004년에는 '발전'시킬 대상으로, 2007년에는 '재창조'할 대상으로, 2015년에는 '역사'적 대상으로, 그리고 2023년에는 '역사'란 단어가 빠졌다. 오늘날의 계획은 역사를 배제하고 창조를 내세우고 있다. '창조'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도심과 관련된 기본계획의 제목에 담을 수 있는 단어인가 반문해본다.

도심과 관련된 계획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의 명칭도 살펴보면, 도심활성화담당관(2007), 도심재정비담당관(2008), 역사도심관리과(2012), 역사도심재생과(2015), 도심권사업과/도심재창조과(2021) 등이다. 2007년 보고서 제목에 있던 '재창조'란 단어가, 2021년 도심계획의 주무부서 명칭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마치 15년 전으로 퇴보한 느낌마저 강하게 든다.  
 
 도심관련 계획의 흐름 (출처: 서울도심 기본계획(2023), p.7>
ⓒ 서울시
 
계획보고서와 주무부서 명칭으로 상징적인 단어로 살펴봤다면 기본계획 보고서의 구성을 살펴보자. 기본계획 보고서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크게 '개요→ 현황진단→ 방향성제시→ 주요이슈→ 세부실행계획'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2015년과 2023년을 비교해보면, 도심의 현황을 파악하고 진단하는 '현황진단' 부분이 2015년에서는 독립된 파트로 구성돼 있고, 2023년에는 '모니터링'이란 어휘로 별첨에 포함돼 있다.

보고서의 구성형식은 내용을 잘 보이게끔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2015년 방향성 제시 바로 이전 부분에서 별도의 장을 구성하여 일정량을 할애한 것과 2023년 '모니터링'이란 애매한 어휘로 '별첨'되는 것은 각각 '현황진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계획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가 명백히 읽힌다.

역사가 풍부한 지역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의 활동이 쌓여있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그 다양한 층위를 파악하는 것, 즉 현황진단이 상당히 주요한 부분이다. 2023년에는 그것의 중요성을 '별첨'정도로 본 것이다. 좋은 계획은 꼼꼼한 현황파악을 기초로 한다. 신도시가 아닌 역사도심에서 그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다.

모순적인 전략으로 고유의 장소성 파괴될 우려

2023년 계획의 주요전략 다섯 가지 중에서 '역사문화도심' 부분을 살펴보면 서로 모순적이고 충돌하는 용어와 계획이 뒤섞여 있다. "유도·활용 등 다양한 보존방안 마련" "역사문화자원 관리 중심에서 장소성 강화로 전환" "옛길 보존보다는 옛길 가꾸기로 전환" 등이 그런 내용들이다.

엄밀히 말해 유도와 활용은 보존의 한 방법이라 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존과 대치되는 단어다. 보고서의 흐름상 '활용'하겠다는 말은 보존을 염두하기보다는 상당한 규모의 리모델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간 정비사업에서 진행되었던 리모델링 방식을 보면, 원형을 알기 어려울 만큼 변화되거나 형식적으로 건축물의 외피만 얄팍하게 활용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소유자와 협의를 통해 보존을 '유도'하겠다는 것은 공공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역사적 건축물은 도시경관의 중요한 요소가 되며 소유자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공공재이다. 이런 공공재의 보존에 있어서는 보다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보고서 내에서는'장소성 강화'의 예로 특성있는 신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역사도심의 경우, 이미 가지고 있는 장소성도 충분하고 그 장소성을 유지되게끔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새로운 장소성을 만들어내는 계획은 오히려 오래된 장소성을 훼손시킬 위험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부분뿐만 아니라 보고서 전체에 걸쳐 외국의 사례를 많이 보여주는데, 외국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은 다를 뿐더러 성급하게 따라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장소성은 모방할 수 없는 각 지역 고유의 특성이다. 옛길 '보존'을 '가꾸기'로 바꾼다고 제시한 51쪽의 부분은 말장난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원형적 특성을 보호하기보다는 경관적 특성을 바탕으로 보행과 연계하여 변화하는 도시 여건에 맞춰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가꾸기로 전환"한다고 하는데, 좀처럼 이해 안되는 단어들의 나열이다.

결국, '가꾸기'는 변화하는 도시 여건에 맞춰 보존방식을 완화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옛길 중심 관리, 원형가지길은 유연화'라는 문장 또한 주요길에서 갈라지는 원형가지길은 덜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파생된 가지길이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오래된 장소성과 휴먼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울도심 기본계획의 주요 전략
ⓒ 서울시
 
역사는 파괴하고, 개발사에게는 인센티브를

도심의 역사경관은 건축물의 높이와 많은 관련이 있다. 하나는 보행자가 길을 걸을 때 길에 접한 건물의 높이를 인지하는 휴먼스케일의 감각, 또 하나는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보이는 경관과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지는 느낌이다. 건축물의 높이가 높아지면 휴먼스케일로 느꼈던 길의 느낌이 나지 않고, 도심 내에서 쉽게 조망할 수 있었던 산을 볼 수가 없다.

2023년 계획에서는 2015년 계획보다 높이규제가 상당히 완화되고 최고 높이가 많이 올라갔다. 2015년에는 '최고 높이' 개념으로 그 이상을 금지하고 규제했던 반면, 2023년에는 이를 '기준 높이'란 단어로 변경하여 특정조건 충족시 그 이상의 높이까지 허용한다고 한다. 실제 도심에서 행해지는 정비사업의 허가높이를 보면 기존 90m였던 곳이 최근 계획안을 변경해서 두 배 이상인 200m까지 상향됐다. 

여기서 높이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용적률 인센티브' 개념이다. 인센티브를 통해서 아래 그림과 같이 더 높은 높이를 가져간다. 공공이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하면 개발하면서 더 높은 층수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높이완화 조건'을 살펴보면 서울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공의 가치를 알 수 있다. 2023년 계획에서는 ①녹지 등 공공공간 확보 ②역사 및 지역 특성 강화 ③경제기반 강화에 기여하는 용도 도입 ④저층부 활성화 계획을 주요 조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015년(좌)과 2023년(우)의 높이계획 변화 (출처: 서울도심기본계획(2023), p.72,73)
ⓒ 서울시
2015년에는 역사 및 지역특성을 1순위로 했던 것에 비해 2023년에는 녹지 등 공공공간이 더 중요하게 계획에 담겼다. 최근 정비사업 계획안을 공람해보면 높이완화 조건에 역사 관련 항목은 삭제되거나 비율이 줄어들고 녹지 관련 항목이 추가되고 비율이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녹지 및 공공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이 좋은 점도 있지만 녹지조성 이후, 젠트리피케이션, 지가상승 및 주변 개발로 이어지는 청계천 복원 사례를 보면, 앞으로 생겨날 위험성이 우려된다. 

또한, '높이완화 조건'의 적적성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계획 이후 공사가 이뤄지고 준공될 때까지 잘 적용되는지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미 준공된 세운6구역 을지트윈타워의 옛길 흔적남기기 사례를 보면, 옛길의 형태에 맞춰 바닥보도블럭을 조성하였는데, 이것에서 옛길의 정취를 얼마나 느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길은 길의 폭과 길변의 건축물의 높이로 인해 느껴지는 공간감 그리고 건축입면의 다양한 표정에 의해 그 장소성을 느껴지는데, 단순히 바닥페이빙만으로는 아무것도 느낄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

세운3구역 정비사업의 완공사례를 보면, 옛길이 재현된 곳이 길을 따라가다보면 중간이 끊겨서 보행이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인센티브 조건에는 분명 옛길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이런 계획들이 실제 준공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들과 공공의 관심과 감독이 필요하다.
 
 세운 구역 흔적남기기 사례
ⓒ 안근철
세계유산 종묘에 대한 위협

종묘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 상에서 '사적'이며, 내부의 건물들은 '국보' '보물'로 지정돼 있고, 전 세계의 교육·과학·문화 보급과 교류를 위해 설립된 유엔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세계유산으로 국가 뿐만아니라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주요한 유산이다. 

유네스코 홈페이지에서 종묘가 등재된 이유를 살펴보면, '모든 건물과 시설물은 조선시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심과 분리되어 있다' '죽은 자들을 위한 혼령의 세계를 조영한 건축답게 건물의 배치, 공간구성, 건축 형식과 재료에서 절제, 단아함, 신성함, 엄숙함, 영속성을 느낄 수 있다'라고 쓰여있다. '절제, 단아함, 신성함'과 같은 분위기는 건물 그 자체 외에도 '숲으로 둘러쌓여 있어 도심과 시각적으로 분리돼 있음'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현재의 계획대로 정비사업구역의 높이가 높아지게 된다면, 시뮬레이션에서 보듯이 종묘 내부에서도 현대식 마천루 빌딩이 보이게 돼 그 느낌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유지할 수 없다면 종묘도 세계가 인정하는 유산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더불어 세계유산에 지정될 시 심사항목 중 하나는 '해당국가·지자체의 보존 및 관리체계'인데, 세계유산 홈페이지에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도시교통과, 문화재과가 협력해 종묘 주변지역을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기적으로 기본 경관 계획, 지구 단위 계획을 수립하여 주변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방안 및 사업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의 주기적 기본계획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다뤘던 도심기본계획일 것이다. 기본계획이 이런 고층을 허용한다면 기존의 세계유산 등재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며 유네스코에서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수 년 전부터 시민단체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문화재청 및 유네스코, 이코모스에 민원을 제기했고, 최근 문화재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지난해 11월 문화재청에 정비사업으로 인한 훼손여부 검토 관련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에서 관련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네스코가 현황자료를 요청한 것은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의제를 다룰 때 종묘가 논의대상에 오를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세계유산 종묘에 대한 위협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KBS
 
허황된 구호 말고, 세심한 관리계획을

지금까지 도심기본계획 중 역사관련 부분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더불어 역사경관과 관련이 높은 높이문제도 함께 살펴봤다. 또한 그 높이문제는 다른 역사유산인 종묘의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도심 내에서 유산과 높이는 도심정체성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2023년의 도심기본계획에서는 공허하고 교묘한 단어로 유산의 보존과 높이를 완화하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 허황된 구호로만 외치지 말고 치밀한 현황진단과 함께 세심하고 엄격한 관리계획이 필요하다. 
 
연재 순서(안)
1화 멈추지 않는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2화 디자이너들이 경험한 청계천-을지로 산업생태계의 가치 
3화 도시역사와 근대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도시기본계획
4화 시민들이 바라는 청계천-을지로의 미래
5화 재개발로 쫓겨난 상인들의 이주 경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근철씨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이자 산업유산 아키비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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