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투 비 유연석

전혜진 2024. 4.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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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이 가장 고요해지는 순간, 무대는 비로소 시작된다.

Q : 늘 하이힐을 신었어요. 몇 센티미터쯤 되나요

A : 20cm 정도 되는 것 같던데요? 이렇게 높은 건 처음 신어봐요.

재킷과 슬리브리스는 모두 Versace.

Q : 어떤가요? 그 위에 올라가보니

A : 놀이공원에서 이벤트해주시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이더군요(웃음).

Q : 방금 요염하게 귀 뒤로 머리를 넘긴 거 아나요? 혹시 3월 22일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을 앞둔 뮤지컬 〈헤드윅〉 연습의 후유증일까요

A : 어엇, 제가 그랬나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도 모르게 손이….

Q : 7년 전 ‘연드윅’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어요. 그렇게 예쁠 것까지는(웃음)…. 메이크업은 익숙하겠지만 〈헤드윅〉의 경우 화장보다 분장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분장이 최면 효과를 주기도 하는지

A : 걸음걸이부터 확실히 달라지는 게 있죠. 말투도 자연스럽게 헤드윅화되고요. 매니큐어나 헤어스타일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 보이는 건 이 공연의 큰 매력이죠. 더블 캐스팅된 배우끼리도 분장의 차이가 확실하잖아요? 분장할 때마다 재미를 느껴요.

셔츠와 팬츠는 모두 Amiri. 부츠는 Rick Owens.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7년 만의 귀환을 앞둔 마음은

A : 아무리 경험 있는 공연이라고 해도 개막이 가까워지면 불안하고, 걱정되고, 뭔가 다 부족한 것 같아요. 지금 제가 그래요.

Q : 아는 맛이 무섭다고 ‘헤드윅’을 잘 알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A : 물론 두려움도 있었죠. 두 시간 반 가까이 공연을 이끌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걱정도 많았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다시 해보고 싶더군요. 당시 〈헤드윅〉 공연할 때 좋았던 것도 자꾸 떠오르면서 이건 또 해야겠다 싶었어요. 〈헤드윅〉은 확실히 연기했던 배우들이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 공연인 것 같아요.

Q : 심지어 네 번, 다섯 번 돌아온 배우도 있죠. 왜 그럴까요

A : 콘서트 형식이다 보니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부분이 큰 공연이잖아요. 거기서 오는 희열이나 짜릿함? 제 경우엔 그게 엄청 크게 다가와요. 가수가 아닌 이상 이런 경험은 흔치 않거든요.

레이어드 니트 톱은 Ferragam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관객과의 소통을 언급했는데, 〈헤드윅〉의 마지막 퍼즐은 관객이 아닐까 싶어요. 상대 배우가 아니라 관객을 향해 감정을 쏟아야 하죠. 어떤 반응이 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에요. 관객 자체가 공연의 ‘변수’로 작용하는 셈인데, 그날의 관객 성향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A : 아무래도 그렇죠. 다른 뮤지컬처럼 제4의 벽을 쳐놓고 하지는 않잖아요?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반응해 주면 저도 더 신나게 몰입하게 돼요. 우리 공연 문화에는 일종의 매너가 존재하는데, 〈헤드윅〉 공연에 올 때는 그런 것들을 좀 내려놓고 놀러 온다는 마음으로 오셨으면 좋겠어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즐겨줬으면 하는 거죠.

Q : 배우의 성향과 해석에 따라 대사는 물론 노래와 공연 시간도 달라지는 것이 〈헤드윅〉의 큰 특징인데요. ‘연드윅’만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A : 뭐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농염한 쪽은 아닌 것 같고요. 제 경우엔 새초롬하고 발랄한 느낌을 많이 가져가려는 편이에요. 7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초연 때와 다를 거예요.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달라졌고, 그사이 제 작품 경험치도 달라졌으니까요.

코트는 Rick Owens.

Q : 헤드윅의 남편 이츠학은 물론 밴드도 무대에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해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보니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요구되는 게 많은 뮤지컬이에요. 체력이나 연기력, 가창력 중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혹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는지

A :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헤드윅의 감정선이에요.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사랑에 대한 가치관, 정체성의 혼란과 집착, 불안…. 그런 감정선이 이 공연을 하게 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애드리브도 중요하고 극을 끌고 나가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헤드윅의 감정을 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Q : 그래서 초연 때 유연석의 헤드윅은 섬세하다는 평가가 나왔나 봐요. 〈헤드윅〉 원작자 존 캐머런 미첼을 실제로 만난 적 있는 것으로 알아요

A : 제가 공연한 시즌에 〈헤드윅〉을 실제로 보셨어요. 제가 출연하는 날은 아니었고요. 누구 공연을 봤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뒤풀이 자리에 가서 대화도 나누고 사인도 받았죠. 존이 사인해 준 대본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

Q : 헤드윅이 헤드윅을 만난 셈이니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A : 영광이었죠. 너무 ‘스위트’한 분이었어요. 그리고 한국 〈헤드윅〉을 굉장히 좋아하더군요. 다른 나라에서도 〈헤드윅〉 공연을 올리지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이어온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 해외보다 국내 공연 규모가 더 클 거예요.

니트 톱은 We11done. 팬츠는 Dolce & Gabbana.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국내 〈헤드윅〉이 원작보다 재밌다는 해외 평도 있었죠. 일련의 행보를 보면 새삼 대단한 공연이구나 싶어요

A : 맞아요. 〈헤드윅〉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시기가 이런 소재를 다룬 뮤지컬이나 공연이 주류를 이루지 못했던 시대였잖아요. 그렇다 보니 관객이 더 열광했던 것 같은데 〈헤드윅〉의 생명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Q : 〈헤드윅〉 초연 이듬해에 국내에서 초연된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 출연했어요. 〈헤드윅〉처럼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으면서 이미지가 형성된 작품에 자신의 영역을 만드는 것과 〈젠틀맨스 가이드〉처럼 제로 베이스에서 뮤지컬 이미지를 구축해 내야 하는 작품을 하는 건 배우로서 완전히 다른 경험일 텐데, 어땠나요

A : (오)만석 형, (이)규형 형 등 경험 많은 배우들과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누며 공연을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초연 공연 참여는 처음이어서 겁도 났는데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해서 든든했죠. 초연은 첫선을 보이는 자리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더라고요. 애착이 커요, 그 공연에.

Q : 2015년 〈벽을 뚫는 남자〉를 통해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때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A : 뮤지컬을 하기로 한 건 잘한 선택 같아요.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도전을 즐기고 새로운 걸 찾아가는 배우란 이미지를 주기도 하죠. 실제로 저는 도전을 즐겨요. 2015년을 돌아보면 그런 생각은 들어요. 어떻게 겁 없이 ‘송스루’, 대사 없이 노래로 이뤄진 극 뮤지컬을 골랐을까(웃음). 모르니까 했던 것 같고,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베스트와 슬리브리스, 팬츠, 슈즈, 링은 모두 Dolce & Gabbana.

Q : 알고 돌아가도 송스루 뮤지컬을 선택할 것 같나요

A : 알면서 어떻게? 하하. 누군가에게 송스루를 데뷔 무대로 추천할 것 같진 않아요.

Q : 긴장해서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지

A : 있죠. 크고 작은 실수들은 항상 있으니까. 그리고 한번 틀린 부분은 왜 자꾸 생각이 나는지, 왜 다음 공연할 때도 생각나는지(웃음)…. 〈헤드윅〉은 실제로 백지장이 돼 노래를 통으로 넘긴 배우들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긴장하면서 무대에 오르죠.

Q : 실수했을 때 가장 필요한 건 임기응변일까요

A : 그보다 지나간 건 잊고 남은 분량에 집중하는 게 맞아요. 실수에 연연하면 또 다른 실수가 연차적으로 나올 수 있거든요. 실수를 인정하고 남은 신을 해나가는 자세, 그게 중요해요.

Q : 우리 인생과 같군요

A : 맞아요. 실수한 걸 계속 잡고 있으면 그로 인해 흐름이 망가지니까요.

셔츠와 팬츠는 모두 Amiri.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헤드윅〉은 불완전한 자신을 완성해 줄 반쪽을 찾아 끝없이 헤매는 인간의 보편적 갈망을 그린 뮤지컬이라고 생각해요. 유연석을 완성해 줄 반쪽이 세상에 있다고 믿나요

A :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데…. 〈헤드윅〉이 보여주지만 반쪽을 찾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 인연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거고요. 지금 떠오르는 건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반려견 리타. 제 소중한 인연이죠.

Q : ‘청룡영화상’ MC를 도맡으며 ‘청룡의 남자’로 6년간 활약했는데, 〈헤드윅〉으로 축하 공연을 하면 어떨까요

A : 저는 시상식에서 축하 무대를 펼치는 아티스트들을 존경합니다. 관객과 배우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죠. 저는 그렇게 잘해내지 못할 것 같아요. 일단 사회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요(웃음).

Q : 〈헤드윅〉이 그랬듯 당신의 인생을 풀어내는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면 첫 장면이 어땠으면 좋을까요

A : 개똥벌레 분장을 하고 연극하는 장면이요. 초등학교 학예회 때 개똥벌레 연극을 했거든요. 그때부터 배우의 꿈을 꿨기에 그 순간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싶어요.

Q : 만약 헤드윅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무슨 이야길 해주고 싶나요

A : 그냥 조용히 안아주고 싶어요. 그 어떤 말보다 따스한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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