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 토요일 면접 강요 위법"… 첫 명시적 판결

최석진 2024. 4. 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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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로스쿨 불합격처분 취소 2심판결 확정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종교적 안식일로 섬기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의 '토요일 일과시간 중으로 잡힌 면접시간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면접 불응을 이유로 불합격처분을 한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의 조치는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대법원이 의학전문대학원 시험일자 변경 신청과 관련해 학교의 처분을 위법하다고 본 2심판결을 심리불속행 기각한 사례는 있었지만, 본안 심리를 거처 명시적으로 재림교 신자의 시험일정 변경 청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재림교 신도인 임모씨가 전남대학교 총장을 상대로 낸 입학전형이의신청거부처분 및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심판결 중 입학전형이의신청거부처분을 취소한 부분을 파기하고 각하 판결했다.

재판부는 입학전형이의신청거부처분에 대해 "피고가 전남대 법전원 입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면접일정을 지정하고, 그 면접일정에 대한 변경 신청을 거부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전남대 법전원 입학생 선발이라는 종국적 처분에 이르기 위한 단계적인 행위"라며 "전남대 법전원 입학시험에 대한 불합격처분이 이뤄졌다면, 피고가 이를 위해 앞서 했던 단계적 행위는 그 종국적인 불합격처분에 흡수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이 사건에서도 이 사건 불합격처분만이 쟁송의 대상이 되고, 이 사건 거부행위는 이 사건 불합격처분에 흡수됐으므로, 이 사건 거부행위를 별도로 다툴 소의 이익이 없다"고 각하 판결한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전남대 법전원의 임씨에 대한 불합격처분에 대해 "입시 과정에서 재림교 신자들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을 다소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제한의 정도가 재림교 신자들이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인정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의무와 책무를 부담하는 국립대학교 총장인 피고로서는 재림교 신자들의 신청에 따라 그들이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고가 원고의 면접일시 변경을 거부한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해 위법하고, 이 사건 불합격처분은 위법하게 지정된 면접일정에 원고가 응시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한 것이므로 마찬가지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피고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임씨는 2020년 10월 전남대 법전원 입학시험에 지원해 서류 평가에 합격했다.

전남대는 임씨의 면접 일정을 토요일 오전으로 지정해 통보했다.

임씨는 자신이 재림교 신도이기 때문에 면접에 응시할 수 없다며 토요일 일몰 후에 면접에 응시할 수 있도록 면접 순번을 토요일 오후 마지막으로 지정해줄 것을 구하는 이의신청을 냈다.

재림교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종교적 안식일로 정해 직장·사업·학교 활동, 시험 응시 등의 세속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씨는 자신도 다른 지원자들과 마찬가지로 면접 당일 오후 12시30분까지 대기실에 입실해 기도를 하며 대기하다가, 일몰 시각(당시 기준 오후 5시23분) 이후에 자신에 대한 면접을 실시해달라는 '격리 후 면접' 방식을 학교 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전남대는 이를 거부했고, 임씨가 면접에 응시하지 않자 불합격처분을 내렸다. 당시 임씨의 학사·공인영어·법학적성시험 점수는 최종합격자 중 상위권에 해당했다. 이에 임씨는 면접 일정을 변경해달라는 이의신청을 거부한 학교 측 처분과 불합격처분 등 2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임씨는 "종교적 양심을 제한하지 않는 방법이 있는데도 이의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비례의 원칙,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임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심 법원은 1심판결을 뒤집고 임씨의 두 가지 청구를 전부 인용했다.

2심 재판부는 먼저 전남대 법전원의 이의신청 거부처분이 비례의 원칙, 평등의 원칙을 위배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례의 원칙과 관련 "원고(임씨)의 종교적 양심의 자유,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가치와 피고가 갖는 대학의 자율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국립대학교 총장인 피고로서는 원고가 그 양심에 따르면서 면접에 응시할 수 있고, 학생선발절차의 형평성, 공정성을 해하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가 토요일 일몰 전에 세속적인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양심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 즉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는 내면적 양심의 자유와 밀접하게 관련되므로 그에 대한 제한에는 더욱 세심한 배려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전남대 법전원이 공익·인권법 특성화 법전원이라는 점을 더해 보면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격리 후 면접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학생선발절차의 형평성,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이 사건 거부행위를 통해 피고가 추구하는 공익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원고가 주장하는 격리 후 면접 방식을 취하더라도 위와 같은 공익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반면, 이 사건 거부행위로 인해 원고가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은 심대하다는 점에서 이 사건 거부행위는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 사건 거부행위는 비례의 원칙에 위배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서울중앙교회.

한편 재판부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국내 주류 종교가 아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를 소수자로서 포용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민주주의가 다수결을 기본으로 한다고 해 다수가 허용하지 않으면 소수자의 양심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서는 안 된다"라며 "소수자의 문제는 다수결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다수결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남은 것이 바로 소수자의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국력과 국제적인 위상, 국민들의 수준에 비춰 보면, 적어도 이 사건의 사실관계 아래에서는 소수자인 원고를 포용하고 관용하기에 충분한 여건이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거부행위는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한 간접차별에 해당하고 그러한 차별취급이 정당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배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다"라며 "이처럼 피고의 이 사건 거부행위는 비례의 원칙, 평등의 원칙을 위배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임씨에 대한 불합격처분과 관련해서는 "이 사건 불합격처분은 원고가 면접에 응시하지 않았음을 그 처분사유로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러나 피고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이 사건 이의신청을 거부함으로써 원고에게 면접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 사건 불합격처분의 처분사유는 인정되지 않는다"라며 "따라서 이 사건 불합격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남대가 불복했지만 대법원 역시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는 게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국립대학교 총장은 공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이자 기본권 수범자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차별 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된다"라며 "재림교 신자들의 신청에 따라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불이익 해소 조치가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을 제한하는 정도가 재림교 신자의 불이익보다 현저히 적다고 인정돼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임씨의 사례에서는 지필 시험과 면접시험의 차이에 주목했다. 지필 시험은 모든 응시자가 동시에 치러야 하지만 면접은 개별적으로 순서대로 진행되므로 임씨의 면접 시간을 변경하는 게 어렵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면접 시간을 변경하더라도 그로 인해 제한되는 공익이나 제3자의 이익은 원고가 받는 불이익에 비해 현저히 적다"라며 "면접일시 변경을 거부한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해 위법하고,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불합격처분도 마찬가지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이의신청 거부 행위는 불합격처분에 흡수된 행위로 봐야 한다며 그 부분만 판결을 파기하고 청구를 각하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통틀어 재림교 신자의 시험 일정 변경 청구를 명시적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판결"이라며 "시험 일정 변경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위법할 수 있는지에 관한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재림교 신자들은 토요일로 정해진 시험 일정을 변경하지 않는 것이 위헌이라며 2009년 법학적성시험, 2010년 사법시험, 지난해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일정에 대해 각각 헌법소원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대법원 판결 중에는 2019년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학사과정 중 토요일로 지정된 해부학 시험일자 변경 신청을 거부한 처분이 위법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수긍한 사례가 있었지만, 본안판단을 거쳐 판결이유를 밝히지 않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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