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식물집사의 친밀한 이야기 '처음 식물'<4>

조인경 2024. 4.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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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아피스토'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촬영용 아이폰 하나만 챙겨 들고 어디든 달려간다.

사람들이 떠난 재개발예정단지에서 유기식물을 구조하는 또 다른 식물집사와의 만남도 그렇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식물과 사람이 있다.

결국 식물을 키우는 일이란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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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아피스토'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촬영용 아이폰 하나만 챙겨 들고 어디든 달려간다. 사람들이 떠난 재개발예정단지에서 유기식물을 구조하는 또 다른 식물집사와의 만남도 그렇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식물과 사람이 있다. 결국 식물을 키우는 일이란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취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 년간 열 명의 식물집사와 함께 식물을 키워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식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편에서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글자 수 1033자.

그녀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의 한 재개발예정구역입니다. 그녀는 재개발 공사로 텅 빈 마을에서 식물을 구조한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활동 모습을 영상에 담고 싶어서 마을로 향했습니다. 마을은 이미 주민들이 모두 빠져나가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대문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뜻의 '공가' 표시가 되어 있었지요.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버스의 회차 정류장에 내리니, 몸빼바지에 헐렁한 라운드티를 입은 백수혜 작가가 저를 맞았습니다.

(중략)

마을의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구조한 식물들이 어느새 우유 박스 하나에 가득찼습니다. 박스 안에는 옥잠화, 바위취, 둥굴레, 우슬 등이 풍성하게 담겨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가져가서 키워보세요."

"고맙습니다. 요즘 무늬식물이 유행이니 저는 무늬둥굴레로 할게요."

마치 잎 끝에 붓질을 한 것처럼 무늬에서 생기가 넘칩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풀을 이렇게 차근차근 들여다본 적이 있나 싶었지요. 문득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창조하는 자에게는 가난이 없으며, 그냥 지나쳐버려도 될 만큼 빈약한 장소는 없다."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식물집사에게 손이 빈 적은 없으며, 그냥 지나쳐버려도 될 만큼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익명의 사용자가 식물의 종류를 묻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안 쓰던 화분에서 싹이 났길래, 신기하고 기특해서 볕이 잘 드는 장소로 옮겨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식물은 하루가 다르게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컸습니다. 급기야 꽃까지 피운 것이지요.

그는 이 식물의 이름을 알 길이 없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식물 사진과 함께 글을 남긴 것입니다. 식물의 이름은 잡초로 알려진 한해살이풀인 털별꽃아재비였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 글에 누군가가 달아놓은 댓글이 촌철살인이었습니다.

"기르기 시작한 이상 잡초가 아닙니다."

이 댓글은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릴 만큼 명문장이 되었지요. 비록 한 해만 살다 갈지언정 화분에 심긴 털별꽃아재비가 그에게 잡초일리 만무합니다.

-아피스토(신주현), <처음 식물>, 미디어샘, 1만7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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