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제 손을 붙잡아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주도해 주시옵소서” 의료 취약지서 20년간 인술… 그 뒤엔 기도노트 있었다

김동규 2024. 4.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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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7시 강원도 강릉아산병원 7층 교수실.

"하나님, 오늘은 이현조(가명) 환자의 수술 날입니다. 제 손을 붙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주도해 주시옵소서. 같이 수술하는 팀원에게도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급작스레 수술 부위 인근에서 붉은 피가 솟아 새파란 수술복에 묻기도 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석션(흡입장치)으로 혈액을 정리하며 다시 집도를 이어갔다.

그는 "수술을 잘 마치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기도 노트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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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아산병원 수술 현장 동행기
최건무 외과 교수 수술·회진 등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일정에도
기도 노트를 적으며 감사의 고백
최건무 강릉아산병원 외과 교수가 2일 강원도 강릉의 병원에서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2일 오전 7시 강원도 강릉아산병원 7층 교수실. 최건무(64·여) 외과 교수가 들어섰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주변에 놓인 서류들은 그가 걸어온 관록을 대변하는 듯했다. 최 교수가 가장 먼저 찾은 건 ‘기도 노트’였다. 곰곰이 고민하던 그는 기도문을 써 내려갔다.

“하나님, 오늘은 이현조(가명) 환자의 수술 날입니다. 제 손을 붙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주도해 주시옵소서. 같이 수술하는 팀원에게도 평안함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 교수는 모든 환자에게 이렇게 기도 노트를 쓴다. 그는 “하나님이 없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면서 “이렇게 노트에 기도를 적으면 마음이 편해질뿐더러 실제 기도의 응답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환자들의 건강이 빠르게 나아질 수 있도록,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적는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의 기도 노트에 적힌 기도문들.


오전 8시40분 최 교수가 환자 마취 시간에 맞춰 4층 수술실에 들어섰다. 첫 수술은 간암 환자의 간 부분절제술. 고난도 수술에 속한다.

“환자 등록번호 ○○○○○○번. 간 부분절개수술 예정으로 영상자료와 의무기록 확인했습니다.” 최 교수가 수술 시작을 알렸다.

최 교수는 메스로 환자의 오른쪽 복부를 절개한 뒤 고정했다. 활짝 열린 복부를 헤집으며 간을 적출하기 시작했다. 의료진 3명이 달라붙어 수술하는 모습은 의료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적막이었다. 수술에 방해되는 어떠한 소음도 없이 차분한 가운데 메스 소리만 들렸다.

최 교수는 눈을 수술용 현미경에 고정한 채 간호사에게서 가위와 칼을 받아 천천히 간으로 가져갔다. 급작스레 수술 부위 인근에서 붉은 피가 솟아 새파란 수술복에 묻기도 했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석션(흡입장치)으로 혈액을 정리하며 다시 집도를 이어갔다. 숨 한 번 돌릴 틈조차 없었던 수술은 12시가 넘어서 끝났다.

대수술이 끝났다고 일과가 마무리된 건 아니다. 이날 간 부분절개 외에도 수술 3건이 잇따랐다. 기존에는 일주일에 2~3일 정도 수술 일정이 잡히지만 전공의들 사직 이후엔 닷새 내내 차고 있다는 것이 최 교수 설명이다. 그는 “파견된 군의관들이 현재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커버하기엔 역부족”이라면서 “지난주 외래진료에선 하루에만 환자 50여명을 봤다”고 말했다.

오후 4시30분. 회진을 돌며 6명의 환자를 만났다. 강릉아산병원은 영동지역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다. 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의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최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하나하나 짚으면서 치료 내용과 계획을 알렸다. 보호자들과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긴장감을 풀어주기도 했다.

수술을 마친 뒤 기도 노트를 작성하고 있는 최 교수.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임에도 최 교수의 입술에선 감사의 고백이 나왔다. 그는 “수술을 잘 마치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기도 노트에 적었다. 회진을 돌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의 이름도 최 교수의 기도 노트에 담긴다. 그렇게 감사와 환자를 위한 기도들이 적힌 노트는 셀 수 없이 쌓여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최 교수는 1996년 병원이 개원할 때 개원 멤버로 이곳에 왔다. 환자를 섬기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과거 영동 지역민들은 아파도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대관령을 넘지 못해 사망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며 “사는 지역 때문에 환자들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의대 증원 문제와 전공의 반발에 관한 생각도 조심스레 건넸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루속히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 의료 정상화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한국교회에서도 많은 기도 바랍니다.”

강릉=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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