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전락한 지식산업센터… 속 끓는 투자자들

김진욱 2024. 4. 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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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 이상 공실에… 경매로도 안팔려
게티이미지뱅크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신줏단지 모시듯 앞다퉈 유치하던 ‘지식산업센터’가 투자자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식산업센터는 여러 중소·벤처기업의 사무실이나 소규모 공장이 입주할 수 있도록 3층 이상으로 지어진 집합 건축물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던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규제 완화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 생겼는데 현재 절반 이상 공실인 곳이 수두룩하다. 공실인 지식산업센터는 경·공매로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해 고금리 대출의 이자를 물어야 하는 수분양자는 속을 끓이고 있다.

3일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전국에 공급된 지식산업센터는 1529곳이다. 지식산업센터를 짓고 지자체장에게 신고한 등록 건수는 2000~2009년 연평균 22건에 그쳤지만 2010~2018년 평균 36건, 2019년부터 연 91건으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당분간 더 커질 예정이다. 현재 지어지고 있는 지식산업센터가 전국에 100곳 더 있기 때문이다. 건축 승인을 받은 뒤 아직 착공하지 않은 사업장도 276곳이다.

지식산업센터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정부·지자체의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지원 탓이다. 애초 지식산업센터는 도시 인근 공장 용지가 부족해 규모가 작거나 무등록 불법 공장이 난립하는 일을 막기 위해 1988년 ‘아파트형 공장’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됐다. 처음에는 공공기관만 지을 수 있도록 했지만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95년 민간에도 빗장이 풀렸다. 같은 해 정부는 아파트형 공장을 수도권의 공장 설치를 제한하는 총량제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이후 서울 구로동과 가산동 등지에 민간 주도 공급이 본격화했다.

문제는 2010년대 들어 생겼다. 2010년 이름을 지식산업센터로 바꾼 정부가 이 시설을 중소기업 육성의 산실로 규정해 택지 개발 지구에 적극적으로 짓도록 유도했다. 당시 정부와 지자체, 여러 공공기관은 신도시 등 택지 지구의 베드타운화를 막고 자족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지식산업센터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지식산업센터 인허가 건수는 2010~2017년 연평균 56건에서 2018~2023년 평균 108건으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수도권에서는 공장 총량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규제 공백을 파고들어, 비수도권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건립 예산 지원(공공 임대형 지식산업센터 한정) 혜택을 등에 업고 불티나게 지어졌다.


지식산업센터는 부동산 광풍기 유망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았다. 당시 시행사는 분양 대행사를 통해 ‘2000만원만 투자하면 노후가 대비된다’는 문구로 투자자를 유혹했다. 지식산업센터 수분양자는 부동산 관련 금융 규제가 가장 강력했던 2021년에도 주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분양가의 90%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은 뒤 직접 입주하지 않고 세를 놓는 임대 사업자의 대출 한도는 80%였는데 ‘사업자 등록증만 만들어오면 실입주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90%까지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겠다’며 투자자를 꾀고, 심사 문턱이 낮은 MG새마을금고 지점을 연결해주는 현장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열기가 식은 지금 전국의 지식산업센터는 공실 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20~30대의 명소로 떠올라 스타트업 입주 수요가 큰 서울 성동구 성수동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전체 호실의 4분의 3 이상이 불 꺼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2010년대 택지가 조성되면서 지식산업센터 시행사가 몰려들었던 경기도 고양시와 하남시, 평택시 등지에는 90%가 공실인 곳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공실 속출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다. 고금리 대출 이자까지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를 견디다 못한 투자자는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돈을 못 버는 수익형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동산 실거래가 정보 플랫폼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식산업센터는 3395건 매매돼 투자 열풍이 불었던 2021년(8287건) 대비 거래량이 절반 이상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거래 금액도 3조4288억원에서 1조429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일부 투자자는 경매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경매 전문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경매에 부쳐진 지식산업센터는 688호실로 전년(403호실) 대비 71% 증가했다. 반면 낙찰률은 29%로 전년(45%) 대비 16% 포인트 하락했다. 이 기간 감정가 대비 낙찰가율은 89%에서 71%로 18% 포인트 하락했다. 비주택 부동산 가격이 쉽사리 회복세를 찾지 못하면서 이 지표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신용 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불법에 손을 대는 투자자도 있다. 투자자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임대업을 포기하고 사업자로 등록해 직접 입주하는 방법이 공실 해소의 돌파구 중 하나로 거론되는데 이때는 은행에서 대출 연장 거절이나 원금 일부 상환 통지를 받을 우려가 있다. 임대업 폐업 시 과세 당국에서 환급받았던 부가가치세도 토해내야 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식산업센터 인근 영업점 고객 중에는 투자에 실패해 부가가치세를 체납 중인 사람이 많다”면서 “돌려줘야 하는 세금이나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제2 금융권을 돌다 신용 불량자가 되는 투자자, 정보기술(IT) 업종으로 사업자를 등록해 입주한 뒤 불법 마사지 업장을 운영하는 투자자도 봤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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