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까지 이용... 카지노에서 돈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이준목 2024. 4. 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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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이준목 기자]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사막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라스베이거스(Las Vegas)는, 미국 서부 네바다 주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도시로 전 세계에게 손꼽히는 관광지이자 이른바 '환락의 도시'로 유명하다.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인의 욕망을 보여주는 가장 미국적인 도시이자, 자본주의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으로도 꼽힌다.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빠르게 성장했던 라스베이거스의 발전 뒤에는, 곧 현대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고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4월 2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145회에서는 '금욕의 땅, 라스베이거스는 어떻게 환락의 도시가 되었나'편을 통하여 라스베이거스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조명했다. 미국사 전문가인 김봉중 전남대 사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라스베이거스의 어원은 오아시스를 의미하는 목초지(VAGAS)에서 비롯됐다. 라스베이거스 인근은 본래 척박한 사막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황무지였다. 이 지역에서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거주하던 원주민 타이우트 부족이 움막을 짓고 사냥과 농사를 하면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신대륙 발견과 미국의 영토확장 시대를 거쳐, 1855년부터 라스베이거스에 최초로 정착을 시도하는 미국인들이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모르몬교도(예수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들로 오늘날 라스베이거스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에 있는 금욕주의자들이었다.

모르몬 교도들은 당시 일부다처제 등 시대에 맞지 않는 교리를 주장하다가 미국 사회에서 배척 당했고 이 중 소수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황량한 라스베이거스까지 오게 된 것. 하지만 이들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경직되고 융통성 없는 교리를 강조하다가 원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쫓겨나고 만다. 결국 1900년까지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의 거주 인구는 고작 25명에 불과한 불모지로 남았다.

'사막의 도시'에서 환락의 도시로...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라스베이거스는 '교통의 요지'로서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미국 서부의 대도시들이 발전하고 철도가 건설되면서, 무려 1200Km 거리나 떨어진 LA와 솔트레이크시티를 연결해주는 중간 기착지역으로서 라스베이거스의 가치가 높아진 것.

조용했던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와 유흥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도박과 매춘 산업 등으로 방탕하고 문란한 이미지가 형성된 라스베이거스를 지칭하는 표현이,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해진 씬시티(Sin city, 죄악의 도시)였다.

1920년대 철도대파업과 경제 대공황은 라스베이거스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됐다. 주 고객층인 노동자들의 실직과 파업으로 위기에 몰렸던 라스베이거스는, 미국 정부가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건설사업인 '후버 댐(Hoover Dam)' 공사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때 건설된 후버 댐은 지금까지도 미국 서부의 농업용수와 전력공급원으로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한편 라스베이거스가 속한 네바다주는 1923년에 이미 주법으로 주류 판매를 허용한 데 이어, 1931년에는 후버댐의 공사 시작 시기와 맞물려 도박까지 전면 허용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는 후버 댐 인근에 계획도시로 건설되었던 볼더시티가 연방법이 적용되며 주류와 도박이 금지된 것과 차별화를 노린 전략이었다.

자연히 노동자들은 고된 일을 마치고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로 몰리게 된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했던 후버댐과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도로는 술 취한 노동자들의 음주사고가 속출하며 '과부를 만드는 도로(Widow maker road)'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붙었다고 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의 시대'가 열리면서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루는 '유흥의 도시'로 차별화된 정체성을 다지게 된다.

벤자민 시겔(1906-1947)은 오늘날 사실상 라스베이거스를 '도박의 도시' 이미지로 만든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벅시(Bugsy, 벌레같은 망나니)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던 시겔은 1940년대 미국 암흑가를 주름잡은 악명 높은 마피아 출신으로, 영화 <벅시>의 주인공이 된 실존인물이기도 하다.

시겔은 술과 도박 등 모든 것이 허용된 라스베이거스를 보고 영감을 얻었고, 마피아의 자본을 빌려 사막 한복판에 카지노 호텔을 짓는 공사를 추진한다. 시겔의 호텔은 다른 호텔들과 달리 입구부터 이용객들의 눈에 띄게 카지노를 배치한 것이 특징이었다. 시겔에 의하여 모든 환락시설이 한곳에 모인 초대형 카지노 호텔이 등장하게 된다. 카지노에서 창문, 시계, 거울을 제거하여 이용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직 도박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도 바로 시겔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시겔은 자신이 구상한 호텔이 성공한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 했다. 호텔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겔은 이권다툼을 벌이던 마피아의 총격으로 처참하게 살해 당한다. 전설의 명작으로 남은  영화 <대부1>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마피아가 보낸 히트맨에게 살해 당하는 호텔사업가 모 그린의 실존인물도 바로 이 시겔이었다.

시겔이 지은 호텔은 당시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최초로 현대적인 카지노 호텔이 건설되면서 훗날 라스베이거스의 랜드마크가 된 스트립 거리의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다. 이후 마피아의 자본을 등에 업고 라스베이거스에는 수많은 대형 카지노들이 연이어 오픈하며 번성기를 맞게 된다. 당시 마피아들이 카지노에서 하루에 벌어들이는 수익만 100만 달러(현 한화 170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냄새까지 이용하는 카지노의 비밀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심리학자와 수학자까지 동원될 정도로 철저한 기획의 산물로 유명하다. 호텔에서 나온 이용객들은 번화가나 쇼핑몰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지노 구간을 거쳐야만 했다. 가는 길의 대부분은 슬롯머신이 미로처럼 있어서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고, 곳곳에서 현란한 소음과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시청각을 자극한다.

또한 카지노는 실내 온도까지 철저하게 조절하여 내부를 춥게하여 도박을 하는 이용객들의 음주를 유도한 뒤, 다시 온도를 높여 더 빨리 취하게 만들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상황을 반복했다. 결국 사람들은 카지노의 달콤한 집단 최면술에 알면서도 점점 빠져들고 헤어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카지노에서 1회 배팅액이 1000만 원 이상되는 고객은 하이 롤러(High roller)로 불린다. 이들은 전체 이용객의 5%에 불과하지만 카지노 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카지노들은 이들을 영업하기 위하여 무료 항공권과 고급 리무진을 제공하며 전담 집사까지 제공할 만큼 공을 들인다. 호주 최대의 거부이자 미디어 재빌 케리 패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단 3일 만에 2600만 달러(260억 원)를 썼을 만큼 대표적인 하이 롤러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이용객이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고 한다. 한 일화에 따르면 일본인 이용객이 카지노에서 큰 돈을 연이어 획득하자, 해당 카지노는 일본인 남성이 게임하는 모습을 전부 영상으로 찍어 네바다대학교에 위치한 게임연구소로 보내어 그의 게임방법, 성격, 습관 등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한다.

연구소는 남성이 카지노 직원의 몸에서 나는 체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포착했다. 이에 연구소는 남성이 게임을 할 때마다 겨드랑이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방향제를 특수제작하여 주변에 뿌리라는 대책을 고안했다.

결국 남성은 페이스를 잃고 그동안 땄던 돈을 모두 잃었다고 한다. 그만큼 철두철미하고 집요한 카지노 도박 시스템의 이면을 보여주는 일화다. '라스베이거스의 제왕'으로 불리던 호텔 사업가 스티브 윈(Steve Wyn) 윈리조트 전 회장은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방법? 카지노를 하나 차리라"고 우문현답을 날리며 카지노에서 돈을 딸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인증하기도 했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도박과 함께 오늘날 라스베이거스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쇼비즈니스'다. 1960년대 이후 라스베이거스의 가능성에 주목한 미국의 자본가들을 통하여 마피아의 검은 돈 대신 합법적인 기업자금들이 투입되면서 또다른 전환기를 맞이한다.

하워드 휴즈(Howard Robard Hughes Jr. 1905-1976)는 도박의 도시 정도로만 알려졌던 라스이거스를 '사업가 중심의 도시'로 바꿔놓은 인물로 꼽힌다. 휴즈는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의 총수익 중 약 1/3을 장악했다. '괴짜'로도 유명한 휴즈는 라스베이거스에 체류하는 4년 동안 한 번도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금욕적인 교리를 따르는 모르몬교도를 자신의 집사로 고용하여 일을 대신 처리하게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자본가들의 진출과 함께 라스베이가스의 중요한 변화는 공연문화의 발전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4주만 공연하면 나라를 살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화려한 공연은 큰 인기를 누렸다. 호텔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프랭크 시내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의 슈퍼스타들은 독점 유치하기 위하여 공을 들였다.

1976년 동부의 뉴저지에서도 도박이 합법화되고 애틀랜틱시티에 새로운 대형 카지노타운이 건설되면서 라스베이거스는 처음으로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1980년대 들어 애틀랜틱시티의 급성장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도박 수입이 무려 10% 가까이 감소하며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라스베이거스의 사업가들은 도박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하여 고민하게 된다.

호텔사업가 스티브 윈은 자신이 개장한 새 호텔에서 초대형 화산쇼와 분수쇼 등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호텔 내부에서 소수의 유료 이용객들만 관람할 수 있었던 쇼를 외부에서 모든 이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 이후로 많은 호텔들이 윈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며 동참하기 시작했다.

또한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대형 놀이기구와 아쿠아리움, 서커스 공연 등이 신설되었고 호텔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차별화된 고유의 콘셉트와 마케팅 경쟁을 펼치게 된다. 또다른 도박 중심에서 건전한 '레저 이벤트 타운'으로서의 이미지 만들기를 위한 라스베이거스의 변신이었다.

한편으로는 남성이나 여성들만을 위한 성인 대상 스트립 공연도 활성화되어 라스베이가스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비록 선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30~4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자랑하며 전 세계 100개국에서 1억 명 이상의 관객들이 쇼를 관람했다고 할 만큼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세상 어떤 일도 모두가 쇼비즈니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라스베이가스만의 철칙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50년대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인근에 핵실험장이 있었고,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핵실험을 관광산업으로 이용하거나 '미스원자폭탄 대회'를 개최하는 아이디어로 관광객을 유치하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일생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결혼과 이혼도 마케팅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혼이 금기시되던 1930년대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법은 이미 1931년부터 불과 6주만 체류하면 속전속결로 이혼을 허가해주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이혼을 원하는 남녀들은 이혼도 하고 겸사겸사 관광과 유흥도 즐길 겸 라스베이거스로 몰리게 되면서 호텔과 식당의 매출이 급상승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혼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두자 네바다주는 이번엔 결혼법까지 제정했다.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결혼사무국'을 운영하고 초간단 웨딩과 초고속 혼인신고 등을 통하여 결혼 절차와 비용을 간소화했다. 통상적으로 미국 다른 지역에서 24시간 이상 걸리는 혼인신고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단 15분이면 가능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유명인들도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에는 단돈 25달러(한화 3만 원)에 달리는 차량 안에서 이루어지는 '드라이브 스루' 결혼식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웨딩 관광산업으로 라스베이거스가 올린 매출만 약 20억 달러(약 2조 6900억 원)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눈부신 성공과 화려만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라스베이거스는 급격히 늘어나는 노숙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노숙자 단속법'까지 제정해야 했다. 도박과 유흥에 빠져 몰락하고 거처를 잃은 노숙자들은, 법망을 피하여 지하 배수구로 내려왔고 이들을 칭하는 '두더지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현재 두더지족은 약 1400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라스베이거스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자살수도'라는 오명으로 불릴 만큼 높은 자살률도 라스베이거스의 고질적인 오점으로 꼽힌다. 도박과 유흥의 도시이다보니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하여 라스베이거스로 몰려오거나, 혹은 거금을 잃고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추락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하여 대부분이 창문 개방을 못 하도록 막아놓았다.

"라스베이거스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돈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자는 곳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황금기를 직접 체험했던 명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남긴 감상평이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격언처럼,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꿈과 희망의 도시로 꼽히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어두운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미래의 라스베이거스가 과연 그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고 앞으로 또다른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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