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SK온 살리려…자회사 줄줄이 파나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4. 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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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SK이노베이션

SK그룹 핵심 계열사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 SK온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SK온이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앞장서서 지원했지만 SK온은 수년째 적자에 시달려 고민이 커지는 중이다.

SK온 자금 조달 안간힘

올해 설비 투자금만 7조5000억원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을 공동 주관사로 선임하고 투자 유치에 나섰다. 목표 금액은 1조~2조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또한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주관사로 신디케이트론(여러 금융사가 구성하는 집단대출)을 통해 7억달러(약 9400억원) 조달에 나서는 등 전방위 자금 조달을 진행 중이다.

SK온은 2021년 말부터 수차례 유상증자와 차입, 지분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수조원 자금을 마련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국투자증권프라이빗에쿼티(한투PE) 컨소시엄과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으로부터 2조3000억원 규모 지분 투자를 받았다. 현대차그룹에선 2조원을 장기 차입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창사 후 첫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대규모 자금을 끌어모았다.

SK온이 자금 조달에 힘쓰는 것은 그만큼 글로벌 공장 신설, 배터리 제품군 확대 등 투자할 곳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로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SK온은 공격적 투자를 통해 외형 성장에 집중해왔다. 일례로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와 배터리 합작법인(JV)을 통해 미국 켄터키, 테네시 공장 완공을 눈앞에 뒀다. 무려 15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현대차그룹과도 미국 조지아주에 7조8000억원을 들여 35GWh급 배터리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중국 옌청시에 위치한 2공장 증설에도 3조4000억원이 소요된다. 미국 공장을 포함해 충남 서산, 중국, 헝가리 공장 신설 등 2027년까지 추가로 투입해야 할 자금 규모는 약 19조원으로 추산된다.

유안타증권 분석에 따르면 당장 올해 SK온의 설비 투자금만 7조5000억원으로 지난해(6조7869억원)보다 한참 늘었다. 하지만 보유 현금은 3조6000억원에 그쳐 4조원 이상 외부 자금이 필요한 실정이다. SK온 관계자는 “올해 7조5000억원 설비 투자와 관련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의 최대 92억달러 한도 첨단기술차량제조(ATVM) 자금 지원,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등 자금 조달 방안에 대해 모든 계획이 수립됐다”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쟁력 높은 제품 개발도 절실하다. SK온은 그동안 고성능 하이니켈 기반 파우치형 배터리가 주력이었는데 지난해부터 각형,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하는 등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주도해온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을 마무리해 2026년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웠다. LFP 배터리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주력해온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 거리는 짧지만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글로벌 전기차 회사들이 저가형 모델에 잇따라 LFP 배터리를 채택하면서 SK온도 뒤늦게 LFP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다.

실적 악화에 골머리

지난해 영업손실만 5800억원

SK온이 숨 가쁜 자금 조달,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지만 정작 뚜렷한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SK온은 전기차 수요 부진 영향으로 수년째 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영업손실은 2021년 3137억원에서 2022년 1조727억원으로 3배 넘게 커졌다. 지난해에도 5818억원 영업손실을 내며 흑자전환에 실패했다.

국내 배터리 경쟁사들이 줄줄이 흑자를 거두는 것과 대비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2월 출범 이후 줄곧 흑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만 2조163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SDI도 같은 해 1조633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문제는 올 들어서도 SK온 실적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 한화투자증권은 올 1분기 SK온 적자 규모가 111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4분기(186억원 적자)보다 손실 규모가 5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올 상반기에만 7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미국 시장이 불안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32년까지 미국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56%로 높이는 규정을 제시했다. 당초 2030년 판매 차량의 66%가량을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초안보다 한참 후퇴한 조치다. 미국 대선 정국에서 ‘전기차 속도 조절론’이 부각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SK온은 올 상반기까지 흑자전환이 어려워 보인다. 포드, 폭스바겐 등 주요 고객사들이 수요 둔화를 겪는 데다 헝가리 3공장 가동으로 고정비 부담도 가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훈 SK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하반기 영업이익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지만 실상은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그나마 지난해 수주잔고는 2022년(290조원)보다 110조원가량 늘어난 400조원을 기록했지만 차입금이 매년 치솟는 중이다. SK온의 총 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4조5614억원으로 2021년 말(4조5242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190%에 달한다.

대규모 자금 조달을 하려면 기업가치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이 과정조차 만만찮다. 한투PE 컨소시엄과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은 지난해 SK온의 기업가치를 22조원으로 평가해 투자했다. 향후 투자자를 유치하려면 22조원보다 높은 금액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SK온이 수년째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데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침체로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우려가 커져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투자 업계에서는 신규 투자자가 기존 투자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위험방지조항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온은 지난해 추진한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에 참여한 신규 투자사에 2026년까지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시점까지 일정 수익률 기준을 충족하는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은 ‘드래그얼롱’ 즉 동반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SK온은 글로벌 공장 증설, 배터리 제품 연구개발(R&D)에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데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이라 투자 유치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 배터리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SK온을 둘러싼 악재가 쏟아지자 지난해 말 구원 투수로 부임한 이석희 사장 고민도 커지는 모습이다. 이 사장은 흑자전환할 때까지 연봉 20%를 반납하는 등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고 강조하는 와중이다. 임원에게도 ‘오전 7시 출근’을 지시하고 비행기 출장 시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하자는 캠페인을 펼치며 사실상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자 주요 임원들도 줄줄이 회사를 떠나는 분위기다. SK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진교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비롯한 미등기 상근 임원 11명이 올 1월 퇴임했다.

재계 관계자는 “SK온 퇴임 임원 숫자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실적 부진이 지속되는 등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조직 슬림화를 통한 본격적인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고 귀띔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 SK온 실적이 악화되면서 모회사 SK이노베이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SK온 미국 조지아주 공장 전경과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석희 SK온 사장. (SK온 제공)
SK이노베이션 고민 커져

신용등급 투기등급으로 하향

SK온을 둘러싼 분위기가 악화되면서 모회사 SK이노베이션도 직격탄을 맞는 모습이다. 2022년 말 유상증자를 통해 SK온에 2조원을 수혈하는 등 ‘SK온 구하기’에 안간힘을 썼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S&P 신용등급은 기존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낮아졌다. SK이노베이션 투자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내려간 것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와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이 휘청였던 2003년 이후 처음이다. SK이노베이션은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정유, 화학, 배터리 등 주요 사업을 키워 국제신용등급 투자등급인 BBB- 이상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분위기가 악화됐다.

S&P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에 대한 막대한 투자 부담과 이로 인한 재무 구조 악화를 신용등급 강등 사유로 들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올해만 9조원 규모 설비 투자를 예고했는데 이 중 배터리 사업에 7조5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 19조원 수준이었던 SK이노베이션 조정 차입금 규모는 지난해 23조원까지 증가했다. 내년에는 28조원까지 늘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4.3배에 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S&P는 배터리 투자를 포함한 SK이노베이션의 총 투자금이 올해 9조원, 내년에도 6조원 이상이 소요돼 연간 영업현금흐름(올해 3조5000억원, 내년 4조원)을 크게 넘길 것으로 우려했다.

S&P는 “SK이노베이션 차입 부담이 예상보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둔화된 데다 올해 설비 투자가 급증해 SK이노베이션 상각 전 영업이익 대비 조정 차입금 비율은 내년 말까지 4배 이하로 개선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여파로 SK이노베이션 주가도 연일 하락세다. 한때 30만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최근 12만원 수준으로 급락했다(3월 27일 종가 12만700원). 김도현 SK증권 애널리스트는 “SK온 부진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우려가 크다. 그나마 정유 업황은 우호적이지만 SK이노베이션 주가 회복을 위해서는 SK온 수익성 개선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공격적인 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 감축에 돌입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나온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을 통해 인수한 프랑스 아르케마 폴리머사업부(현 SK펑셔널폴리머) 등 해외 자산 매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동안 검토했던 SK지오센트릭의 소수 지분 매각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SK지오센트릭 지분 최대 49% 매각을 추진했지만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SK지오센트릭의 경우 신사업인 친환경 사업을 제외한 납사분해설비(NCC) 사업 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편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분리막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 경영권이나 지분 매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논란이 커지자 SK이노베이션은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분간 매각설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SK온 구하기’에 나선 SK이노베이션이 더 큰 리스크에 내몰릴 경우 SK그룹 최고경영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최창원 의장이 직접 메스를 들이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SK그룹 2인자로 올라선 최창원 의장은 최근 ‘될 사업’과 ‘안 될 사업’을 가려내는 ‘리어레인지(rearrange)’에 나섰다. 올 초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취임 당시 “전기차는 가까운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천천히 오고 있고, 인공지능(AI)은 먼 미래라 생각했는데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리어레인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더 늦기 전에 사업별 투자 규모와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SK이노베이션이 핵심 자회사 SK온 리스크에 시달리면서 당분간 현금흐름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SK온을 살리는 과정에서 다른 자회사가 희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SK온이 그만한 역할을 해줄지는 의문이다. 최창원 의장이 직접 나서서 SK온을 비롯한 SK이노베이션 자회사 부실 사업,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할지 모른다.”

재계 관계자 촌평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3호 (2024.04.03~2024.04.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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