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선들의 하모니, 촉수처럼 춤추는 감동… 눈보다 피부가 즐겁다

손영옥 2024. 4. 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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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주의 드로잉-성곡미술관
원로 작가 김홍주 개인전 ‘김홍주의 드로잉’이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위 작품 ‘무제’(한지에 탁본, 펜과 아크릴릭, 67×124㎝, 2010년대)는 창문틀을 탁본하고 잔디를 그린 것이다. 성곡미술관 제공


종이 위에 창틀이 있다. 그런데 붓으로 그린 게 아니라 창틀을 판화처럼 탁본했다. 그러곤 탁본한 창틀 안에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잔디밭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원경도 중경도 없다. 풍경에는 으레 있기 마련인 나무나 사람도 없다. 잔디밭만 가득 그려 넣었다. 작가는 그 잔디밭에 세필을 써서 무수히 선을 그어 표현했다. 그래선지 잔디의 풀이 한 포기 한 포기 일어나 나의 마음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판화와 회화의 중간 같은 이 묘한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시작된 원로 김홍주(79) 작가 개인전을 최근 다녀왔다. 전시 제목은 ‘김홍주의 드로잉’이다. 그간 미발표된 60여점을 선보이며 화가로서 김홍주의 삶을 조명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수균 부관장은 ‘화가’ 김홍주를 유독 강조한다. 이유가 있다. 전시장 초입의 저 창틀 탁본 회화가 증거하듯이 김홍주는 시대의 유행에서 비켜나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한 미술인이기 때문이다.


김홍주가 홍익대를 졸업하고 미술계에 뛰어든 1970년대 중반은 청년 미술가를 중심으로 기성 미술에 반기를 들고, 회화도 조각도 아닌 새로운 미술을 하자는 움직임이 크게 일었다. 홍익대 출신이 주축이 된 ‘ST(공간과 시간을 뜻하는 영어 Space &Time의 약어) 그룹’도 그중 하나였다. 이건용, 성능경 등 ST 회원들은 미국 개념미술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달팽이 걸음을 걷는 이벤트(퍼포먼스)와 잔디를 불태우는 대지미술 등 생경한 미술을 선보였다. 이들의 활동은 훗날 ‘실험미술’로 명명되었다. 지난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순회 기획전이 열릴 정도로 한국의 1970년대 미술을 수놓은 주요한 흐름으로 평가받는다.

30대 시절 김홍주도 처음에 ST에 가입했다. 4회 정도 전시에 참여했지만 제 발로 걸어 나왔다. 그리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는 기질적으로 개념미술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개념미술 작가는 언어로 다 해버리지요. 그림 그리는 걸 우습게 봅니다. ST 회원들도 회화가 죽었다고 봤어요. 하지만 제가 볼 때 개념미술도 이미 끝나있었어요. 한국 미술계도 강가에서 돌 줍고, 잔디를 태우고…. 해볼 것은 다 해봤더라고요. 개념미술에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당시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김홍주는 홀로 회화로 돌아왔지만, 기성세대처럼 그리지 않았다. 당시 서울 동대문 대광고에서 미술교사로 있던 그는 청계천 고물상에서 헌 창문틀과 거울, 차 유리창 같은 버려진 물건을 사 와 ‘오브제(사물)’로 사용했다. 창문틀을 캔버스 액자 대신에 사용하고 그 안에 자신의 얼굴 등 극사실적인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사물 회화’로 불리는 그림들이다. 개념미술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은 1917년 남성 소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이라고 이름 붙인 ‘오브제 미술’을 했지만, 김홍주는 거기에 회화를 더한 것이다.

그러다 1981년부터 목원대 교수로 임용이 돼 제법 넓은 연구실을 갖게 된 뒤부터는 스케일이 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젤에 캔버스를 올려두는 통상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종이나 천 자체를 벽에 걸어두고 마치 원시인이 바위에 그리듯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실제 창문틀 대신에 창문틀을 탁본한 뒤 그 안에 그림을 그리는 탁본 회화도 이즈음 탄생했다. 벽에 천을 걸어두고 그리는 것은 캔버스라는 서양적 회화 전통의 ‘그리기 틀’을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무제’(위·부분 컷, 캔버스천에 아크릴릭, 159.6×340㎝, 2013). 성곡미술관 제공


르네상스 이래 회화는 사각의 캔버스 틀 안에 풍경이든 인물이든 현실의 이미지를 입체감을 살려 리얼하게 재현한다. 즉 주인공과 배경으로 이미지를 구분하고 근경·중경·원경 등 투시도법을 쓴다. 그런데 김홍주의 그림에서는 어떤 배경도 없이 여인의 누드만 그려져 있거나 버드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만 달랑 있다. 꽃병도 없이 꽃 한 송이만 그린 걸 ‘꽃 그림’이라며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김홍주는 “내 그림은 중심과 주변을 함께 그리는 서구적 회화 전통을 부순다”고 담담히 말할 뿐이다.

‘무제’(종이에 연필, 아크릴릭, 109.1×78.6㎝, 1990년대). 성곡미술관 제공


벽에 천이나 종이를 걸어두고 그리는 이유는 몸을 벽에 밀착시킨 채 ‘그리는 손맛’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여인과 나무 등 소략한 이미지 안에 세필을 써서 무수히 짧은 선을 그어 형상을 완성한다.

“내 그림은 넓은 유화 물감 붓으로 하면 그리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동양화에서 쓰는 아주 끝이 가는 세필을 썼는데, 천에 세필이 닿으면서 오는 묘한 감각이 있더라고.”

드로잉하듯이 이미지 안에, 혹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그은 짧은 선은 형상의 기초가 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촉수처럼 살아나 촉각적인 감흥을 일으킨다. 그림을 보는데도 눈이 즐겁다기보다는 피부에 닿는 감각이 더 즐거운, 낯선 경험을 하게 되는 전시다. 5월 1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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