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 용어] 유대교 초정통파 ‘하레디’는 누구인가

신상목 2024. 4. 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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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디즘 유대인 순례자들이 지난달 31일 폴란드 남동부 수바르파티아 지방 레자스크 마을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서거 237주년을 맞은 18세기 정신적 지도자인 랍비 엘리멜렉 바이스블룸의 무덤 옆에서 기도하고 있다. 와이즈블룸은 18세기 유대교 부흥을 목표로 한 하시디즘 운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영혼과 육체를 치유하는 치료사로 명성을 얻었다. 주로 이스라엘, 유럽, 미국, 캐나다에서 레자스크를 찾는 사람들은 그의 기일에 와이즈블룸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의 소원을 신에게 가져간다고 믿는다. AFP연합뉴스


어제오늘, 국내 주요 국제 뉴스에는 이스라엘 유대교 초정통파인 ‘하레디(Haredi)’ 얘기가 등장했습니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인 이스라엘은행이 유대교 초정통파 신자들인 하레디가 군에 입대하지 않을 경우 전쟁 중인 이스라엘 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소식입니다.

지난달 31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행은 이날 발표한 ‘2023년 연례 보고서’에서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군의 인력 수요가 불어났고 군 복무 일수가 급증해 경제에 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이스라엘은행은 “군인의 범위를 하레디로 확대하면 증가하는 국방 수요에 대응하면서 군 인력 운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이스라엘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군 복무는 의무입니다. 만 18세 이상 이스라엘 국민은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합니다. 의무 복무 기간은 남성 32개월, 여성 24개월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하레디만 면제 대상이었습니다. 하레디의 군 면제는 이스라엘 건국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고토로 불러들이기 위해 당시 이스라엘은 전통 문화 보호와 함께 병역 면제 혜택을 약속했던 것이지요.

하레디는 세속주의 문명을 거부하고 유대교의 전통 문화를 지키는 폐쇄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유대교의 극보수, 근본주의 분파입니다. 하레디란 말은 ‘두려움’ ‘경외’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레드(hared)’에서 유래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고 대신 일상생활 대부분을 기도와 교리 연구를 하면서 보냅니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으로 살아갑니다. 하레디는 유년 시절 폐쇄적인 하레디 공동체 학교인 ‘예시바’에서 수학, 과학 대신 유대교 율법 교리와 경전인 ‘토라’를 배우고 주로 신학교로 진학합니다.


이들은 이색적인 옷차림으로 쉽게 눈에 띕니다. 남성은 검은 양복과 중절모를 쓰고 수염과 옆머리를 기릅니다. 여성은 팔과 목을 가릴 수 있는 상의와 긴 치마를 입습니다. 기혼여성의 경우 결혼과 동시에 머리를 깎고 가발과 두건을 쓴다고 합니다. 다산을 강조하는 교리 등으로 타 유대인 그룹보다 출산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이들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은 지난해까지 합계출산율이 3.09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 안식일(토요일)과 음식 율법 등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워낙 배타적이어서 성지순례객을 향해서도 공격적인 행위를 가할 때도 있습니다.

반면 보수파와 개혁파 등 다른 분파는 정통 유대교의 일부 문화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현재 하레디는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3.5%에 달합니다. 따라서 하마스와의 전쟁 중에 이들이 군 복무 대열에 합류할 경우 병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또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예비군들이 전쟁 대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

“하레디가 군대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다”는 논란이 점차 커지자 이스라엘 대법원은 2017년 하레디 군 면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하레디가 주축인 ‘샤스’ 등 보수 정당들의 거센 반발로 관련 법 개정은 지연됐습니다. 샤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자 연정 파트너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하레디 군 면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면서 2000명이 넘는 하레디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지난 2월 이스라엘 국방부가 남성 기준 군 의무 복무 기간을 32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리는 등 복무 기간 연장 방안을 제시하자 “하레디부터 군대 보내라”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이에 네타냐후 정부가 대법원 결정대로 하레디 병역 면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예루살렘 등지에서 하레디 남성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대법원 결정에 따른 정부의 관련 법안 정비 시한은 이스라엘은행의 연례 보고서가 나온 지난달 31일이었는데 네타냐후는 시한을 30일 연장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한 상태입니다.

미국 NYT는 최근 이전까지 징집에 반발해온 하레디 중 상당수가 가자전쟁 이후 병역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등 주류 이스라엘 사회와의 연대가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소재 연구단체인 ‘하레디 공공문제 연구소’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레디 대중의 약 30%가 군 징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전쟁 이전보다 20%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라고 합니다.

이른바 ‘현대적 하레디’들은 전체 초정통파 유대인의 약 10%로 추산됩니다. 대다수 하레디는 여전히 ‘총보다는 기도’가 필요하다며 세속 사회의 일에 관여하기보다는 토라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초정통파, 현대적 정통파, 보수파, 개혁파, 메시아닉, 그리고 세속인 등으로 구분합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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