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순직 경찰... 온 동네 걸린 깃발, 주민들의 놀라운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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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기자]
지난 토요일(3월 30일), 미국 한 경찰관의 장례식이 가까운 곳에서 있었다. 그런데 장례식 준비 과정, 온 전체 마을의 애도 분위기를 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
숨진 경찰은 조나단 딜러. 그는 한 살 아들을 둔 31세 젊은 경찰이었다. 동료와 함께 불법 정차된 차량을 검문하다가 총을 맞았단다.
차에서 내리라는 명령에 불복하며 방탄조끼 아래로 총을 쏜 범인은, 알고 보니 21차례나 체포된 적이 있는 전과자였다. 그는 총을 쏜 뒤 현장에서 체포돼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딜러는 총을 맞고도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범인의 총을 강탈하고 무장해제 시켰다고 한다. 이후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숨지고 말았다.
온 마을이 함께 하는 애도의 방법들
▲ 파란 줄 흑백 성조기 파란 줄이 있는 흑백 성조기는 나라와 사회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제복 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군인 등을 위한 깃발이다. 특히 경찰 공무원과 관련된 일에 자주 사용된다. 파란줄은 사회 질서를 위해 범죄와 위험을 방어하는 그들의 헌신을 의미한다. 이번 조나단 딜러 경관의 순직 애도기간에 가까운 이웃도 파란 줄 성조기를 걸어 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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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명 '제복의 공무 수행자' 깃발이지만 경찰관과 관련된 일에 자주 사용되다 보니 흔히 경찰 깃발이라고 알고 있다. 순직한 경찰 장례 기간엔 관공서에 조기가 게양되지만, 마을 곳곳에서 성조기를 걸거나 이 파란 줄의 깃발을 걸어 조의를 표하는 집들을 보게 된다.
▲ 추모의 파란 리본 집이나 가로수, 울타리에 파란 리본을 달아 순직 경관에 대한 애도에 참여한 이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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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묘지로 가는 길 대형 성조기 이른 아침부터 소방차가 고속 도로와 교차하는 교량위에서 성조기를 준비 중이었다. 사다리차를 이용해 장례식장에서 묘지로 행하는 길에 있는 세개의 교량에 모두 대형 성조기가 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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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경찰의 장례식엔 뉴욕시장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에는 뉴욕 주지사와 트럼프 전 대통령도 참석을 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참석보다 더 뭉클한 광경은 장례식장에 모여든 수천 명의 전현직 경찰분들이었다.
수년 전에 이웃 학교 졸업생이 순직한 적이 있어 가까이에서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파란 제복을 말끔히 입은 수천 명의 경찰이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골목마다 슬픔의 바다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다.
딜러 경관의 장례식이 있는 교회에서 공원묘지로 이동하는 고속도로에는 3개의 교량이 교차한다. 이른 시간, 일부러 그 교량 근처를 지나가 보았다. 역시 소방차가 벌써부터 와 준비 중이었다. 사다리 차를 이용해 대형 성조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딜러 경관은 마지막으로 동료들이 준비한 세 개의 대형 성조기를 지나게 될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도 소방차에 걸린 성조기를 보며 순직한 이를 다시금 떠올릴 것이고.
경찰관의 장례식은 백파이프 연주로 시작이 된다. 구슬프면서도 단단한 악기의 소리가 슬픔과 다짐이 오가는 장례 분위기에 잘 맞는다.
앵글로-색슨계에 비해 뒤늦게 미국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대부분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온 농부들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대부분 거친 노동판에 뛰어들어야 했다. 아일랜드계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심했단다. 그들 중 일부가 위험한 직업군인 소방관과 경찰관에 뛰어들면서 아일랜드계의 제복 공무직 비율이 늘어가 1900년대에는 경찰 공무원의 80% 이상이 아일랜드계라는 통계 조사도 있었다.
지금도 소방, 경찰 공무원 가운데에선 아일랜드계 가족의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래서 소방관과 경찰관의 장례식이 백파이프 연주로 시작된 계기라고도 하고, 점차 사회 국가적인 추모 행사에서도 백파이프 연주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 사회에서 영웅을 대하는 법
▲ 유가족 후원을 위한 레모네이드 스탠드 집에서 만든 레모네이드를 자녀가 직접 팔아 기부금을 모금하게 한다. SNS에 미리 가판대를 여는 시간을 공지하기도 하고 골목 어귀에 광고를 붙여두기도 한다. 순직 경관 유가족을 위해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연 가족이 지역 방송에 소개되었다. 방송화면 캡쳐(https://longisland.news12.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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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한 명을 기르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했던가. 온 마을이 한 분의 순직 경찰을 어떻게 보내고 어떻게 애도하는지 아이들은 보며 자랄 것이다. 하루 종일 레모네이드를 팔며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웃을 위한 마음도 키울 것이다. 미국의 순직 경찰이나 소방관에 대한 예우, 유가족을 돌보기 위한 기관과 지원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키워진 마음이 제도로 세워진 것은 아닐지.
과거 2022년 '미스 어스'라는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 최미나수 씨가 대회 인터뷰 심사 중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 능력'이라 답한 것이다. 기후 변화 대응도, 세상의 다른 문제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공감에서 해법이 나온다는 현명한 답이었다.
뉴스로만 전해 듣는 소식이 아니라 한 순직 경관을 떠나보내며 아이들이 겪고 눈여겨보는 '사회적 공감과 애도'가 귀하게 여겨지는 기간이었다. '영웅'의 장례식은 그런 공감과 애도 속에 잘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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