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그 한 사람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sungirl@mk.co.kr) 2024. 4.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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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나라 아이티 기사를 봤다. 몇 년 전 대통령이 조폭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 이후 이번에는 총리가 내쫓겼다. 거대 폭력 조직 두목이 대통령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거친 식민 지배, 2010년 대지진 때 30만명 사망, 세계 최빈국…. 이 모습은 식민 지배를 거쳐 6·25 전쟁으로 300만명이 사망하고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의 70여년 전 모습과 오버랩된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티에선 살인 사건이 4789건 발생했다. 인종 갈등과 쿠데타를 반복하면서 수백 년간 처참함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폐허에서 OECD 가입국으로 성장해 전 세계의 본보기가 된 것을 ‘zero to hero’라고 표현한 외국 기자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린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했을까.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건 뭘까.

지금 2024년 대한민국과 1900년대의 조선을 곁가지 생략하고 직선으로 이어봤다.

직선의 시작점에 1948년 73세의 나이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보인다. 그는 잿더미인 나라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또렷하게 형상화하고 항로를 설정했다. 달구지 끌던 시절, 강대국들이 전횡하던 국제 정세를 시시각각 명확하게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미리 세상을 살아본 사람처럼 정밀했다.

이 통찰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조지워싱턴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그는 박사 학위를 받은 프린스턴대에서 총장이었던 우드로 윌슨과 가깝게 지냈다. 윌슨은 3·1 운동의 기반이 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고 미국 제28대 대통령이 됐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 최고사령관인 맥아더 원수는 소령 시절부터 이승만과 기독교 신앙, 반공에 대한 신념을 공유한 절친이었다.

오늘날 한국이 경제 강국이 됐다지만 이처럼 미국 파워맨들과 접점을 가진 인사는 드물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로 먼지 같던 ‘조선’의 한 개인이 쌓은 네트워크였다. 특히 6·25 전쟁 때 맥아더는 북의 침공 즉시 공군을 급파하고, 미군의 희생이 수반되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승만을 통해 얻게 된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쳤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미국은 한국전에 무려 178만명의 자국 젊은이를 파견해 5만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당시 중동과 중남미에선 현지인을 착취하는 ‘제국주의(美帝)’의 악명을 떨쳤다. 유독 한국에 대한 이 같은 초이성적 결단은 왜일까. 한국을 사랑했던 선교사들과 이승만 같은 선각자 역할을 빼면 설명할 수 없다.

영화 ‘건국전쟁’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미국이 정전 협정 후 미군 철수를 결정했을 때다. “당시 한국보다 경제력이 40배인 북한, 압록강만 건너면 한국보다 100배 큰 중국, 두만강을 건너면 한국보다 250배 큰 소련이 있었다. 미군이 철수하면 즉시 전쟁이 나고 한국은 공산화될 것이 분명했다(이호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대표).”

이승만은 결국 반공 포로 석방이라는 도박을 감행하고 초강대국을 겁박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뤄낸다. 백척간두서도 한 클릭의 양보 없이 직진했던 결정이다. 그는 상호조약 체결 후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3·15 부정선거 등 빛바랜 대목도 있지만 그의 빛나는 기여를 폄훼할 수는 없다.

결국 사람이다. 방향을 잡는 조타수,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

4월 10일이 총선이다. 믿음과 통찰의 인물이 보이는가.

김선걸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3호 (2024.04.03~2024.04.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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