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수사검사가 고소인 뇌물 받았다고 무조건 공소제기 무효 아냐"

최석진 2024. 4. 1. 10: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건 별로 구체적인 기소 정당성 따져서 판단해야"

수사 담당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한 뒤 고소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고 해도 기소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기 어렵다면 공소제기가 위법하거나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검사가 기소 후 사건관계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언제나 기소가 위법하거나 무효라고 봐 공소기각을 할 경우 피고인이 범행 이후 우연한 사정에 의해 형사책임을 면하게 될 수 있는 만큼 기소가 정당했는지, 아니면 기소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따져 살펴본 뒤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받았던 A씨의 재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소권남용,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에 관한 법리오해, 이유모순 등의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2008년 5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업무상 횡령,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는 2010년 5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그런데 자신을 수사해 기소한 담당 검사 B씨가 자신을 기소한 뒤 고소인으로부터 금품과 접대 등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A씨는 2021년 재심을 청구했다.

B씨의 형사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A씨를 기소한 바로 다음날인 2008년 5월 8일 자신의 검사실에서 고소인 회사의 실제 대표자 C씨로부터 A씨 등을 구속기소해 준 것에 대한 사례금 명목으로 수표 500만원을 받았고, 이후에도 사례금, 추석 선물, 전별금 등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수표 300만원 내지 500만원을 받았다.

또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만원(n분의 1을 한 본인 취득 부분 57만원~121만원)의 술접대를 받기도 했다.

재심 개시를 결정한 서울고법은 지난해 7월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 측은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 수사한 다음 대부분을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했는데, 수사 검사가 고소인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기로 하고 고소인에 유리하고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편향적인 수사를 한 다음 악의적으로 공소를 제기해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했다"라며 "따라서 이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327조 2호(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따라 유·무죄에 대한 실체적 판단 없이 공소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A씨 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 검사가 기소하지 말아야 할 사건을 기소했거나, 차별기소, 누락기소 등을 한 경우에는 뇌물을 받은 검사에게 부정한 의도가 있다고 봐 실체 판단에 나아가지 않고 공소기각 판결을 해야겠지만, 사건의 내용과 증거에 비춰 기소하는 것이 정당한 사안이었다고 판단되는 경우까지 공소제기가 위법하거나 무효라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검사가 사건관계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예외 없이 공소기각을 할 경우 피고인이 범행 이후 우연한 사정에 의해 면책되는 결과가 돼 실체적 진실규명을 통한 형벌권의 적정한 행사라는 형사사법의 목표와 이념에 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A씨의 사건을 살펴본 결과에 대해 재판부는 "당시까지 수집된 증거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검사가 A씨를 기소한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A씨의 형을 1년 낮췄다.

재판부는 ▲A씨가 편취금의 대부분을 결제자금으로 사용했고 개인적으로 소비한 돈은 거의 없는 점 ▲법원의 강제조정으로 상당한 피해 회복이 이뤄진 점 ▲피해 회사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고소인 회사가 거래 상대방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피고인 등 관련자를 고소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형사사건을 통해 피고인 등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피해회복을 받기 위해 수사검사에게 뇌물을 공여한 점도 양형에 있어 참작할 필요가 있는 점 ▲재심대상판결에서 유죄 내용 중 47억원의 게임기 편취가 28억5000만원의 게임기판매대금 횡령으로 바뀐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한편 A씨는 김형준 전 부장검사(53·사법연수원 25기)의 중·고교 동창이자 '스폰서'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